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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대한민국 건국, 호남이 주도. 미군정 시기 집권 여당이 호남을 뿌리로 한 한국민주당
-초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국무총리 김성수. 이런 정부 구성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전체주의 제국주의 없는 세계질서 만들자는 이상이 전 세계 젊은이 마음에 흘러넘쳐
이 글은 10월 11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 301호에서 진행된 인촌 김성수 선생 탄신 130주년 기념 강연의 기조 발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7회에 걸쳐 나누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영광입니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서, 존경하는 이영일 의원님을 비롯한 여러 어른들과 오수열 교수님을 비롯한 석학들 앞에서 감히 자랑스런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씀드리게 되어 제 인생 일대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대한민국 건국과 호남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한민국 건국은 호남이 주도하였습니다. 미군정 시기 집권 여당이 한민당, 즉 한국민주당이었습니다. 한민당은 호남을 뿌리로 한 정당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건국은 호남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군정 3년 동안 장관, 기관장을 맡았던 한국 사람들은 거의 한민당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민당은 그 혼란한 시대에,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결국에는 대한민국을 탄생시키는 산파(産婆)로서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탄신 130주년을 맞이하신 인촌 김성수 선생이 한민당의 지도자였습니다.
건국 당시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국무총리 김성수, 이런 짝으로 정부가 구성되는 것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가미된 제헌헌법의 정신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만인의 예상을 깬 데서부터 이승만의 독재는 시작되고, 아슬아슬한 곡예 같은 한국 정치사의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던 이승만(왼쪽)과 김성수 등 근대사의 두 거인.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역사에서 지워졌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의 설계도를 그린 정도전은 조선이 망하기 직전까지 500년 동안 역적으로 남겨두고서,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다 죽은 정몽주를 그렇게 높이 받들었던 조선 선비들의 정신분열증을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남의 집 머슴도 살고, 이웃들에게 도움도 받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손발이 닳도록 일해서, 먹이고 입혀 키워놓았더니 가난한 지 애비가 부끄럽다고, 환부역조(換父易祖),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바꾸어서 남의 아버지, 남의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있는 꼴입니다.
저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의 탄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상한 풍조(風潮)가 건국의 이야기도 잊혀 지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대한민국의 건국이 자랑스럽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위대한 나라로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랑스런 나라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를 바꾸었습니다. 실은 후진국에 주는 혜택을 받으려고 우리가 뭉개고 있었지만, 후진국 벗어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작년 기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입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의 강국들,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 만약 서재필 선생이나 안창호 선생이 들으시면 믿을까요? 그런 어른들까지 가지 않더라도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민주정치도 발전하여, 인권과 언론 자유, 법치 등에서 세계 일류 나라입니다. 그러면 왜 그 많은 후진국들, 신생 독립국들 가운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이렇게 발전하였을까요? 만약 이 나라가 진정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이고,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와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였다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잘 만들어진 나라였습니다. 나라를 세울 때 주춧돌을 잘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발전한 것입니다. 잡석을 제거하고 밑거름을 충분히 준 밭이었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된 것입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하였습니까? 바로 UN이 하고 미군정이 하고,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태어난 때, 그 시대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의 사주팔자가 좋다고 항상 말씀을 드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인류가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른 만큼 이제는 전쟁이 없고, 전체주의와 제국주의가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자는 꿈과 이상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에 흘러넘칠 때였습니다.
코리아(Korea)라는 미지의 땅에 진주한 미군의 청년 장교들 중에도 그런 이상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른바 미국의 리버럴(Liberal) 진보파들이죠. 당시에는 ‘루스벨트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그 자리를 물러 받은 트루먼 대통령의 행정부 역시 이상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대한민국 탄생의 역사, 미군정 3년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부끄러워서 그 역사를 다 지우고, 전부 우리 힘으로 건국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속이고, 후손을 가르치면 안 됩니다. 서울(Seoul)이란 이름도 미군정이 결정하였습니다.
UN의 역할과 도움도 있었습니다. UN에는 파시즘과 나치즘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유럽 여러 나라의 자유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UN 한국임시위원단으로 들어와서 활동하였습니다. 그 분들이 선거법을 만들고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감독하였습니다.
제헌국회의원 선거에는 90%를 넘는 투표율을 보여서 UN 감시단이 깜짝 놀랐습니다. 전 국민이 참여하는 제헌국회 선거를 하고,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구성하고 마침내 UN이 승인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입니다. UN이 만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바로 UN이 군대를 보낸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은 UN의 이상에 따라 만들어진 나라라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습니다. UN에서 <세계 인권선언>이 채택되던 때에 대한민국도 승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이 좋은 때에 태어났다, 사주팔자가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