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리버테리언 실험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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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석

 

-한국에서 리버테리언 이념이 개화하려면 시장경제 수호자로서 기업들이 참여했어야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시장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의 결합에 대한 답 못 내놔

-한국서 자유주의가 국가, 정치, 역사, 국제관계를 만날 때 어때야 할지는 숙제로 남아

 

 

한국에서 하이에크, 미제스 모델의 자유주의 실험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을 시작하던 2012년 무렵, 나는 하이에크와 미제스를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자유기업원과 전경련의 앞잡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리버테리언적 체계가 한국에 착근하려면 이 이론의 담지자인 계층이 확실하게 존재해야 했다.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이념이기 때문이고, 근대 자유주의의 만개는 다름 아닌 부르주아가 산업 혁명을 이끌며 주류가 되어 귀족과 성직자들의 이념 체계를 대체해 나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리버테리언 이념이 미국처럼 개화하려면 다름 아닌 시장 경제의 수호자로서 기업들이 참여했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의 기업들, 특히 경영자들과 재벌 오너들의 마인드가 시장 지향적이기보다는 좋게 말해 정경 협력, 나쁘게 말하면 정경 유착의 지대 추구 유혹이 강하더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리버테리언의 이념 시장이 부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리버테리언 이념이 미국처럼 개화하려면 시장 경제의 수호자로서 기업들이 참여했어야 했지만, 한국 기업의 경영자와 재벌 오너의 마인드는 지대 추구 유혹이 강해 결과적으로 리버테리언의 이념 시장이 부재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당시 자유기업원은 자유경제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자유주의를 역사와 문화, 정치에 접목하는 활동들을 대안적으로 추구해 봤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컨텐츠와 번외 성과들이 있었고, 특히 맹목적 반일 민족주의에서 청년들이 벗어나는 긍정적인 현상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자유주의는 박정희 시대의 역사 해석에서 권위주의와 맞닥뜨렸고 이를 계기로 젊은 자유주의자들은 분열됐다. 국정 교과서 사태가 그것이었다.

 

순수한 시장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그리고 산업화를 영도한 권위주의와 이후 민주화의 민주주의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가 문제가 됐다. 이 문제에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시장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국가와 역사, 정치 체제론은 곳곳에서 모순적이었다. 게다가 로스바드류의 아나키적 저항에 직면했다. 극단적인 사례로 한국 자유주의의 이론의 거두라는 민경국 교수는 대표적인 하이에키언이었지만, 그는 박정희 숭배자였다. 그렇다고 그의 이론적 주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 자유주의자의 실천적 운동가, 공병호 박사는 부정 선거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계층적 각성이 자유주의와 연결되지 못하는 학생들은 정치적 아나키로 경도되는 경향도 있었다. 이 분절과 파편화는 아직까지 수습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이제 시장 경제에 국한해서는 설득력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지만, 이 자유주의가 한국에서 국가와 정치, 역사와 국제 관계를 만날 때 어떠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민경국 교수님은 화를 내신다. 이미 자유주의에는 그 답들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고. 

 

맞는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씀이다. 그런 자유주의를 자신의 계층적 이해로 수용하는 주류가 한국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업이어야 함에도…

 

한국에서 자유주의 실험의 실패는 기뻐할 것이 못 된다. 자유주의 비난자들이 결국은 변형된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 매혹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인을 지워 낸 세대주의 그리고 젠더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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