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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Lee
-‘대리 수술’ 자꾸 터지는 건 의료 서비스가 상대적 저난도이며 대체 가능하기 때문
-윤리와 정책 차원에서 공급 억제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의사들 미래 밝지 않아
-무경험자가 주행하는 것보다는 테슬라 빈 운전석의 생존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대리 수술 문제가 자꾸 터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의료 서비스’가 상대적 저난도이며 대체 가능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어렵고 숭고하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의료는 국가가 적당히 대충 때우도록 유도하는 분야다.
한 명의 의사가 무릎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손 기술과 전혀 상관없는 국영수부터 시작해서 생화학, 약학,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심지어 정신과까지도 간략하게 공부해야 한다. 심지어 정형외과의 인기를 고려해 봤을 때 그걸 아주 잘 하기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인턴 들어와서 관장 12개월 하고 나서 정형외과에 들어가서 온갖 잡일을 다 하고서 전문의가 되고 나서야 건드리기 시작할 수 있는게 집도다. 의대 들어 온 지 10년째라도 아직 무릎 수술은 시작조차 못한 상태다. 여기에 ‘쓸데없는’ 의료 윤리나 의료법도 공부해야 하는 것은 덤이다. 국가는 가르쳤으니까 이제부터 잘못은 개인의 일탈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아무 영업 사원(주로 문과 출신)이나 뽑아서 무릎 수술만 죽어라 반복시키면 그따위 국영수, 생화학, 정신과, 의료 윤리 같은 ‘페어링 분리 기술’들은 다 무시하고 우주 엘리베이터를 통해 곧바로 우주에 나가서 하고 싶은 걸 다 하면 된다. 우주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다단 로켓 기술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한 가지 작업만 반복한 평범한 영업 사원이, 모든 정신과 의사보다 수술을 잘 할 수도 있다. 이 영업 사원은 의료 윤리도 모르고 수학은 백지였고 간이 왼쪽에 달렸는지 오른쪽에 달렸는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무릎 수술에는 필요 없다.
자율 주행하는 테슬라 자동차는 사람 없이도 거뜬히 운전할 수 있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자리가 비어도 된다.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운전석에는 ‘운전 면허가 있는 성인이 핸들에 손을 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차는 바깥에서 내부가 잘 보이기 때문에 자리를 비워두거나 잠들면 단속이 쉽다. 수술실과는 다르게.
면허 있는 누구나 택시를 손쉽게 몰 수 있지만, 택시 면허는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으로 아주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라도 택시 면허를 늘리느냐 안 늘리느냐는 택시 기사의 능력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과 힘 싸움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어디 김연아나 페이커가 모자라다며 정원을 늘릴 수 있겠는가. 하다 못해 같은 전문직인 변호사조차도, 생물인 인체가 아니라 동등한 상대방의 두뇌와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대체가 안 되는 편이다.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 변호사를 전력으로 싸워 이겨야 하기에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방심할 수 없다. 상대는 무릎이 아니라 인간이다. 소송 하나에 몇 조 원이 걸려 있는데 양산형 변호사 100명보다는 그들 수임료를 다 합쳐도 못 이기는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애국 민주 변호사처럼 자기 이름값으로 사건 수임해서 새끼 변호사에게 나눠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같은 변호사에게 일을 내린다.
의학 교육 과정이 이토록 쓸데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는 대충 쉽게 만들 수 있는 90%의 완성도를 99%, 99.9%, 99.99%.. 한없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국민도 눈물짓지 않게 해야 한다나. 그럼에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실제로는 80% 완성도가 필요한 의료 산업에 종사한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딱 하나만 숙달시킨 70%의 영업 사원을 10명 훈련시켜서 부리고, 나머지 부족한 10%는 100%인 대표 원장이 돌아가며 봐 주면 되겠다는 거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이상(100%)과 현실(80%. 유착 방지제를 두 개 쓰다니 삭감입니다)의 필요 요구 조건이 다르고 단순히 윤리와 정책 차원에서 공급을 억제하는 의사(99.9%… 0.1%를 놓치다니, 이 돌팔이놈들!)들의 미래는 그래서 밝지 않다. 의사를 10배로(70%) 늘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적어도 국평오들에게는 없다. 국평오들도 아이유를 10배 더 선발하라고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고, 실제로 그건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의사는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 그런다.
그리고 나는 무인도에서 나를 수술할 사람을 둘 중에 단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정신과 의사에게 무릎 수술을 받느니 영업 사원에게 맡길 생각이다. 단 하나의 예외 사례가 무릎 바깥 영역(부정맥)에서 발생한다면 영업 사원은 테슬라 자율 주행차가 흰 트럭을 들이받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를 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운전 한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테슬라의 빈 운전석이 그래도 살아나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이참에 운전석을 비우는 걸 법제화해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