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즘 II : 불발로 끝난 레옹과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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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재력으로 귀족 압도하는 지배계급 되었지만, 귀족문화에 열등감 가진 부르주아 계급

-그들의 사랑은 진척되지 않아. 행복해 보이는 부부 앞에 레옹은 좌절했고 희망 버려

-작별 인사하러 들른 레옹이 보인 것은 의례적 인사일 뿐.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엠마의 불륜 관계는 두 번이다. 젊은 레옹과의 관계, 그리고 좀 나이 든 로돌프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레옹과의 두 번에 걸친 인연, 그리고 로돌프와의 한 번의 인연이다. 레옹과의 첫 번 관계는 사랑으로 진전되지 않았다가, 두 번째 만남에서 사랑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사회상을 배우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다. 귀족 계급은 물론 유복한 부르주아 계급도 아이를 낳으면 직접 키우지 않고 유모의 집에 맡겼다는 것을 우리는 엠마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엠마의 남편은 의사, 젊은 연인 레옹은 법을 전공한 공증인 사무실 서기다. 의사와 법조인이 부르주아 계급의 주요 직업이며, 이 소설은 부르주아 계급의 이야기다. 부르주아 계급은 재력으로 귀족 계급을 압도하고 대혁명을 통해 정치적 지배 계급으로 올랐지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귀족 계급의 문화에 대한 영원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엠마의 귀족 선망이 바로 그것이다.

 

엠마의 환상은 대부분 낭만주의 소설을 읽고 생긴 것이다. 엠마의 시어머니가 엠마의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소설을 읽지 못하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사실주의 작가 플로베르의 이 소설 『마담 보바리』의 또 다른 의미는 낭만주의 비판이다.

 

애절하게 불발로 끝난 레옹과의 첫 번 만남을 요약해 보자.

 

레옹과의 만남

 

결혼 4년 차, 아내의 우울증이 풍토병인가 생각하여 샤를르는 토스트를 떠나 용빌로 이사했다. 그 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이사 후에 딸을 낳았다.

 

이사를 끝내고 식당 겸 여인숙 ‘황금사자’에서 동네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날, 엠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난롯가로 갔다. 두 개의 손가락 끝으로 무릎께에서 옷을 가볍게 집어 복사뼈까지 올리고, 꼬챙이에 꿰어서 굽고 있는 양다리고기 너머로 검정 구두를 신은 발을 불에 내밀었다. 장작불은 그녀의 온몸을 비추어 강한 빛이 옷감의 올과 하얀 살결 그리고 이따금 깜박거리는 눈의 속눈썹까지도 비추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바람이 휙 불어올 때마다 그녀 위로 새빨간 불빛이 확 스치고 지나갔다.

 

난로 저편에서 금발머리 청년이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증인 기요맹의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는 레옹이었다. 식탁에서 옆자리에 앉게 되자, 레옹은 엠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인, 무척 피곤하시겠습니다. 마차가 몹시 흔들리지요!”

 

“네, 피곤해요. 하지만 저는 이사라든가, 여행 같은 소동은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장소를 자주 바꾸는 걸 좋아하니까요.”

 

둘의 이야기는 음악 문학으로 이어졌다.

 

“부인께서도 이따금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책을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전에 생각했던 일이라든가, 아득한 옛날의 희미한 모습이라든가, 자신의 가장 미묘한 감정이 거기 그대로 나타나 있는 듯한 경험 말입니다.”

 

“그런 느낌을 느낀 적이 있어요.”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시인을 좋아합니다. 시는 산문보다 더욱 감정이 깊고, 한층 더 눈물을 자아내게 하니까요.”

 

“하지만 시는 결국 싫증이 나요.” 하고 엠마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단숨에 읽어버릴 수 있고, 읽으면서 마음을 졸이게 하는 그런 이야기가 좋아요. 일상생활에 흔히 있는 평범한 주인공이나, 미적지근한 감정은 싫어요.”

 

“실은,” 레옹도 수긍했다. “그런 작품들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해서, 예술의 진정한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인생 속에서 환상이 깨지는 이런저런 환멸을 겪으며 상상으로나마 숭고함이라든가 순수한 사랑이라든가 행복한 정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마음으로 좇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여기서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것이 단 하나의 위안입니다. 정말 이 용빌이라는 곳은 아무런 낙이 없는 곳이니까요.”

 

“아마 토스트와 같은 곳인가 보군요.”라고 엠마가 말을 받았다.

 

“그래서 저는 늘 대본(貸本) 서점에서 책을 빌려 읽었어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레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엠마가 앉아 있는 의자의 가름나무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푸른색 비단 스카프를 매고 있었는데, 그것이 동그랗게 주름 잡힌 아마포 깃을 마치 원형 깃처럼 똑바로 세워놓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턱끝이 깃 속에 살짝 묻히기도 하고 아름답게 드러나기도 했다.

 

레옹은 평소에 내성적이어서 언제나 부끄럼을 탔고,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는 준수한 젊은이였다. 늙은이들이 늘어놓는 이론에 얌전하게 귀를 기울였고, 정치 문제에 열중하지 않았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태도를 품위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엠마는 목수 마누라인 유모에게 맡겨 놓은 딸이 갑자기 보고 싶어져 유모의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동구 밖 언덕 밑의 큰길과 목장 사이에 있었다.

 

정오였다. 집집마다 덧문이 닫혀 있었고, 슬레이트 지붕이 맑게 갠 하늘의 강한 햇빛에 번들거려 박공 꼭대기에서 섬광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걸어가는 엠마는 힘이 없었고, 길바닥의 조그마한 돌에도 걸렸다. 그녀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어디든 들어가서 좀 쉴까 망설였다.

 

그때 마침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낀 레옹이 가까운 집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함께 유모의 집으로 갔다.

 

그날 저녁쯤이면 이 소문이 벌써 온 용빌에 퍼졌다.

 

두 사람은 처음 경험하는 이 감미로운 기분에 놀라움을 느꼈으나, 그 느낌을 서로 말하려 하지 않았다.

 

여하튼, 유모네 집에 가려면 마을의 한길을 지나 묘지에 갈 때처럼 왼쪽으로 구부러져, 조그마한 집들과 마당 사이의 쥐똥나무가 늘어 서 있는 오솔길을 따라 가야 했다. 쥐똥나무에는 꽃이 피어 있었고, 베로니카와 찔레, 쐐기풀, 그리고 덤불 속에서 날씬하게 뻗어나온 나무 딸기에도 모두 꽃이 피어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그녀는 그에게 약간 기대고 그는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두 사람 앞에는 파리떼가 더운 공기 속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울타리 틈으로 농가 마당에 돼지가 퇴비더미 위에 누워 있는 광경이며, 밧줄에 매인 암소가 나무줄기에 뿔을 비벼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울타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누더기며, 손으로 짠 양말이며, 붉은 인도 사라사 짧은 웃도리, 그리고 두텁고 큼직한 마직 홑이불이 널려 있었다. 울타리 문을 여는 소리에 유모가 애기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나타났는데 한 손에는 딱지가 잔뜩 앉은 허약해 보이는 사내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루앙에서 양품 장사를 하는 부모가 장사일에 바빠 맡긴 아이라고 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따님은 저쪽에서 자고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엠마의 아기는 방바닥에 놓인 버드나무 요람 속에서 자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 포대기에 싸여 있는 아기를 이불째 안아들고 몸을 양옆으로 흔들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레옹은 방 안을 서성거렸다. 이 초라한 곳에서 이렇게 고운 면사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을 보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들은 개울을 따라 용빌로 돌아왔다. 더운 계절이라 강바닥이 넓어져 여기저기 집 마당의 돌담 밑까지 훤하게 드러났다. 돌담에는 강으로 내려가는 낮은 돌층계가 있었다. 시냇물은 소리도 없이 빠르게, 보기만 해도 차갑게 흐르고, 부드러운 긴 풀잎들은 투명하게 흐르는 물속에서 마치 버려진 초록빛 머리카락처럼 휩쓸리고 있었다. 이따금 등심초 끝이라든가 수련 잎사귀 위를 다리가 가느다란 곤충이 기어 다니다가 머무르곤 했다. 햇살은 조그맣게 부서지며 계속 흐르는 냇물의 파랗고 조그만 물거품 위에서 말갛게 반짝거렸고, 가지를 친 늙은 수양버들은 잿빛 나무껍질을 물에 비추었다. 강 건너 목장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침 농가는 점심시간이어서 걸어가는 젊은 유부녀와 청년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오솔길의 흙을 밟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와 서로 주고받는 말과, 엠마의 주위에서 사각사각 옷자락 스치는 소리뿐이었다.

 

그들은 루앙의 극장에 곧 오게 될 스페인 무용단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구경 가실 거예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네, 될 수 있으면.” 하고 그가 대답했다.

 

이런 얘기밖에는 아무것도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 그러나 그들의 눈은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평범한 말을 찾아내려고 애쓰면서도 동시에 두 사람은 똑같이 애달픈 기분에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목소리의 속삭임을 지워버릴 만한 좀 더 깊은 영혼의 속삭임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 경험하는 이 감미로운 기분에 놀라움을 느꼈으나, 그 느낌을 서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진척되지 않았다.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보바리 부부 앞에서 레옹은 좌절했고, 마침내 희망을 접었다.

 

엠마는 너무나 슬퍼 보이고, 너무나 조용하고, 너무나 상냥하고, 게다가 너무나 얌전해서 사람들은 그녀 곁에 있으면 마치 얼음과 같은 매력에 사로잡혔다. 마치 성당 안에서 찬 대리석의 냉기에 섞인 꽃향기에 전율을 느낄 때와 비슷했다.

 

마을 아낙네들은 그녀의 알뜰함에,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바른 응대에,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운 마음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갈망과 노여움과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반듯하게 주름 잡힌 드레스는 산란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고, 너무나 수줍은 입술은 미칠 것 같은 마음을 가려 주었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막상 그의 앞에 나서면 감동은 사라지고, 그 뒤에는 큰 놀라움만 남았으며, 이윽고 그것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마음대로 혼자 그의 모습을 즐기기 위해 오히려 고독을 구했다. 막상 그의 모습을 보면 상상 속의 기쁨이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레옹이 시무룩한 얼굴로 그녀의 집을 떠날 때 그녀가 뒤따라 일어나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지나치게 멀리했다. 이제는 이미 시기를 놓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고, 방문이 반쯤 열려 있다면서 화를 냈으며, 자기에게는 빌로드 옷이 없다, 자기는 행복하지 않다, 꿈이 너무나 멀다, 집이 너무 좁다고 한탄했다.

 

레옹은 보람 없는 사랑에 지쳐 버렸다. 아무런 흥미도 희망도 없는 똑같은 생활이 한없이 권태로웠다. 그러자 요란스러운 가면무도회와 들뜬 여자들의 웃음소리 가득한 파리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파리에 가서 법률 공부를 마쳐야 한다. 드디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머릿속에서 아파트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벽난로 윗벽에 비스듬히 열십자로 두 개의 펜싱용 칼을 장식하고, 그 밑 선반에 해골과 기타를 나란히 놓은 광경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거기서 예술가 같은 생활을 하자! 기타도 배우자! 실내복을 입고, 바스크 베레모를 쓰고, 푸른 우단 슬리퍼를 신자!

 

떠나는 날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들른 레옹은 하릴없이 엠마의 딸에게 “아가야, 안녕! 잘 있어요, 예쁜 아기, 잘 있어!” 라고 말했고, 하녀가 아이를 데리고 나간 뒤에 엠마는 “비가 올 것 같아요.” 라고 말했고 그는 “외투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의례적인 인사, 그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토스트에서 겪었던 지긋지긋했던 나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스로 치유하고자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고딕풍의 기도대를 샀으며, 손톱을 손질하기 위해 레몬 값으로 한 달에 14프랑이나 소비했다. 우편으로 파란 캐시미어 옷을 루앙에 주문하고, 양품점에서 가장 좋은 스카프를 골라 그것을 실내복 위로 허리에 맸다. 그런 모습으로 덧문을 닫고, 책을 한 권 손에 든 채 안락의자에 길게 누워서 보냈다.

 

머리 모양도 자주 바꾸었다. 부드럽게 끝을 말아 올린 머리를 중국식으로 땋아 늘어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남자처럼 옆 가르마를 타서 그대로 곱게 내려 빗어 내리기도 했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한다고 여러 가지 사전이며 문법책이며 공책을 사들였다. 역사라든가 철학 같은 딱딱한 책도 읽으려고 했다. 때때로 신경증적 발작을 일으켜 브랜디를 큰 컵으로 단숨에 마시기도 했다.

 

샤를르는 어머니에게 와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네 안사람이 뭐가 필요한지 말해 주랴?” 보바리 노부인이 말했다. “억지로라도 일을 시켜야 해. 손을 움직이게 하란 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살려고 어떻게든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우울증은 생기지 않아! 몸이 한가해서 빈둥거리고, 쓸데없는 일만 생각하니까 그런 게 생기는 거지.”

 

“하지만, 그 사람은 여러 가지로 바쁜 걸요.” 라고 아들이 대답했다.

 

“여러 가지로 바빠? 어떤 일을 하기에 바쁘다지? 소설을 읽느라고! 돼먹지 않은 책이라든가, 교의를 헐뜯고, 볼테르가 한 말을 빌어서 신부님 비방하는 그런 책을!”

 

그래서 엠마에게 소설을 읽지 못하게 하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매우 어려운 일인 듯 했다. 노부인이 그 일을 맡았다. 루앙을 지날 때 대본 책방에 들러, 엠마가 이제 그런 것을 사보지 않는다고 말하기로 했다. 만약 그래도 책방에서 세상에 해독을 끼치는 장사를 계속한다면, 이쪽에서는 경찰의 손을 빌릴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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