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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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환 MBC노동조합 위원장

 

-남보다 먼저 써도 정권이 흘려주는 자료 받아 야당 공격하는 기사는 특종이 아니다

-“경찰들 큰일 났어” 검사의 한 마디 파고들어 박종철 고문치사 밝혀낸 87년의 사례

-특종기사 고발기사는 불완전한 경우 많아. 알 권리 차원에서 포용해야 언론 제 기능

 

 

이 글은 9월 9일(목) 15시부터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주제의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날 행사는 언론독재법철폐투쟁을 위한 범국민공투위가 주최했고,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자유언론국민연합, KBS노동조합이 주관했습니다. <편집자>

 

지난 석 달 동안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을 보겠습니다. 5월에는 CBS의 「이용구 법무부 차관 ‘봐주기 수사’ 의혹」, 6월에는 SBS의 「이용구 법무차관 택시기사 폭행영상 및 거짓증언 요구 정황」, 7월에는 세계일보의 「LG 취업청탁 리스트 입수」 기사가 취재부문 수상작이었습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은 작년 12월 조선일보에 의해 처음 밝혀진 사건입니다. 이용구 전 차관 입장에서는 그 뒤 언론이 ‘보복적이고 반복적으로’ 해당 사건을 보도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사건 당시 이 전 차관이 유력인사임을 알았고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에 알렸다는 사실, 사건 장면을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을 경찰이 못 본 것으로 은폐했다는 사실은 언론이 취재해 보도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정부가 알려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LG전자에서 취업청탁을 받은 ‘관리대상 리스트’에는 공무원, 판사, 교수, 대기업 임원 등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여야 유력 정치인 등 권력자들의 자녀 취업청탁에 관한 소문은 예전부터 언론계에 돌고 있었지만, 이를 증거를 가지고 보도한 것은 흔치 않습니다.

 

이처럼 특종기사란 감춰져 있던 권력자의 횡포를 끄집어내어 폭로하는 기사입니다. 아무리 남보다 먼저 써도 정권이 흘려주는 자료를 받아 야당을 공격하는 기사를 특종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자들은 특종을 하고 싶어 하고, 모든 정권은 특종기사를 싫어하며 막으려 합니다.

 

특종기사 고발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는 역사를 바꾼 대특종이었습니다. 어느 날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대검찰청 공안4과장과 차를 마시다 “경찰들 큰일 났어”라는 말을 한마디 듣습니다.

 

특종기사 고발기사는 불완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포용해야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기자는 마치 자신도 다 아는 것처럼 맞장구를 치며 경찰 조사 중 서울대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다른 검사들을 만나며 조각조각 사건의 내용들을 모읍니다. 마지막에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O 학생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한 뒤 윤전기를 세우고 기사를 밀어 넣습니다.

 

누구 하나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거나 증거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발끈해 오보라며 기사를 내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 등 다른 언론사들이 달려들어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고, 결국 정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아무리 군사정권이었지만, 언론사 매출액을 고려해 5배의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면서 보도를 틀어막지는 못했습니다.

 

현 정부가 가장 아파하는 일 중 하나인 드루킹 사건도 언론이 수사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대통령선거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드루킹 김동원 씨가 정부를 비방하는 댓글 4만 개를 올리자 민주당이 보수 진영의 공작인 줄 알고 경찰에 수사의뢰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3월 21일 경찰이 범인을 잡고 보니 민주당 권리당원들이었습니다.

 

경찰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다 4월 13일 한겨레가 ‘잡고 보니 민주당원’이었다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그 뒤에도 경찰은 “이들이 실제 당원인지 확인 중”이라고 밝힌 점으로 미루어, 한겨레 보도가 없었어도 이를 공개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댓글 공작 민주당원 여 핵심과 비밀문자」라는 특종기사를 실었고, TV조선은 그 사람이 김경수 의원이라고 폭로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일보의 보도 근거는 ‘믿을만한 제보자’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경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보도가 나간 것은 명백한 악의적 명예훼손”이며 “강력하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꼼짝없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언론사들이 취재에 나섰고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를 질타한 끝에 특검 수사와 진상규명을 이끌어냈습니다.

 

이상의 특종기사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보도 당시에는 전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부족한 팩트를 합리적 추론으로 채우고 동시에 제보자의 의도로 왜곡되거나 편향된 내용은 기자의 판단으로 가려내야 합니다. 셋째, 특종기사가 보도된 이후 여러 언론사들이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보도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을 가진 쪽에서 사실을 은폐할 수 있습니다.

 

특종기사 고발기사는 불완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보의 위험도 상존합니다. 그러나 이를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포용해야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발표 자료를 전달하고 정권의 이념을 홍보하는 기능에 머문다면 언론사가 많을 필요도 없습니다. 신문사 하나, 방송사 하나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잘된다면 북한은 아마 선진국이 돼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오보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자들은 지금도 일부 정치기자들을 제외하고는 작은 오보도 부끄러워하며 피하려 노력합니다. 오보 한 번으로 개인과 회사를 파산시킬 수 있다고 위협하지 않아도 한국의 기자들은 충분히 건전하며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행 제도로도 오보에 대한 제재 효과를 더한층 높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고발기사에 당사자의 반론을 ‘부인했다’는 한 문장 정도 넣어도 용인됩니다. 이를 강화해서 실질적인 자기방어가 가능하도록 하면 오보의 피해를 크게 줄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정보도를 두려워합니다. 언론인의 자부심 하나로 박봉과 중노동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데, 그 자부심에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정보도를 강화하는 것도 대단히 큰 오보 예방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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