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과 객관화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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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식

 

-글쓰기는 지적 활동 중 대표적인 객관화 작업, 읽는이 모두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페이스북 읽다 답답해 더 묻고 싶어도 감정 상할 것 같아 그냥 삼키는 경우가 많아

-부족 정신, 국가, 민족, 인권, 신앙 등 추상 개념 만든 것도 객관화 아니면 불가능

 

 

“우연한 기회에 울산지법 2019고합241 사건의 판결문을 읽게 되었다. 범죄 사실만 읽었는데 이미 마음이 젖은 휴지조각 같다. 서른 즈음의 두 청년이 자살을 결심하고 함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자살 방조죄로 기소된 사건. 판결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단절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나, 아니 세상의 대부분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나 깨닫게 된다.”

[법조 프리즘] 단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지만, 나는 아주 엉뚱한 측면에서도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 두 청년이 자살을 결심하고 함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자살 방조죄로 기소됐다고 했는데… 자살에 실패해서 둘 다 살아났다는 건지, 아니면 그 중 한 사람만 살아났다는 건지가 궁금하다.

 

둘 다 살아났다면 둘 다 기소됐다는 얘기일 것이고, 한 사람만 살아났다면 그 사람만 기소됐다는 얘기일 것. 당연한 얘기지만, 둘 다 살아났는데, 둘 다 기소됐다면 우리나라의 법률 체계에 대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됐을 텐데.

 

두 사람이 자살을 기도했다가 한 사람은 죽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났다는 사건 보도는 본 적이 있다. 그런 유형의 사건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좀 더 분명하게 서술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법률가라면 새삼스럽게 서술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내용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헷갈리는 내용이다. 가령 “함께 자살을 시도했다가 한 사람만 죽어서 살아남은 사람이 자살 방조죄로 기소된” 이렇게 써줄 수는 없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지적 활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객관화 작업이다. 객관화란 글을 쓰는 사람 말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모두가 최대한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도록 만든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지식인도 글을 쓸 때 자기만 이해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는 당연히 아는 내용이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글쓰는 데서 중요한 능력이자 자세이고 객관화의 성패를 가른다.

 

글을 쓰고 나서 자기 글을 꼼꼼히 읽어보기라도 하면 좋겠다. 더 좋은 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쓴다는 데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나 스킬도 많지만, 나는 가장 첫 번째로 “의미가 명료해야 한다”는 것을 꼽는다. 애초에 필자 자신의 독특한 내면 세계나 고도의 사유 체계를 드러내는 글이라면 아무리 쉽게 쓰려고 해도 읽는 사람에겐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최대한 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객관화라는 지적 작업에서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이건 지적 능력과도 별개지만 동시에 지적 작업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치명적인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 글을 읽다 보면 답답해지는 경우가 많다. 더 물어보고 싶은데, 그건 예의도 아닌 것 같고 괜히 감정만 상하게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삼키고 만다.

 

글을 쓰고 나서 자신의 글을 꼼꼼히 읽어보기라도 하면 좋겠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글에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점차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내 경험에 비춰보면 글 쓰는 능력이나 지적인 능력에서 직접 글 쓰는 사람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도 글을 읽고 판단하는 데서는 글을 쓴 사람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그게 글이라는 것의 본질이자 존재 이유이자 위력이다.

 

남들과 대화하는 것,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보는 것, 남들의 평판을 듣는 것… 모두가 객관화 작업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도의 객관화 작업이 글을 쓰는 것이다.

 

객관화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인간 및 인간 집단과 교류하고 더 거대한 집단과 체계를 만들 수 있었던 능력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부족 정신, 국가, 민족, 인권, 신앙 등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인간의 객관화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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