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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70줄 나이에 반세기 전 군대 선배와 통화… DMZ에서 문산 버스 차부 거쳐 광탄까지 동행했던
-전방 소총수를 사단 사령부로 전출시켜 준 고마운 인연… 글에 썼다가 우연히 아들이 보고 연락
-48년 기억 잇는 긴 통화 속 <나의 문화…> 유 아무개도 함께 떠올리며 한올한올 기억 되살리기
“순댓국이나 한 그릇 얻어 먹겠습니다.”
48년만에 만난 옛 군대 선배가 통화 마무리 즈음에 한 말이다. 거의 반세기 전 어느 날 우리는 문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양반은 연대 인사과 호송병, 나는 전출병.
우리는 그 날 아침 일찍 임진강을 건너 파주 광탄에 있는 사단 사령부로 가고 있었다. 나를 그곳에 인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산 버스 차부에서 그 양반이 나를 근처 순댓국 집으로 데려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또한 인연이니 순댓국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사령부에 인계한 뒤 헤어졌다.
그 양반과 무려 48년만에 어제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나로서는 그 양반 생각이 많이 났다. 이름이 독특했고, 어쨌든 나를 DMZ에서 임진강 건너 후방으로 데려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대 인사과 사병으로서, 소총 소대에 있는 나를 사단 사령부로 전출시킨 장본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단 주특기인 나를, 열 명 이상 되는 같은 주특기자들 가운데서 뽑아 상신했고, 나는 소 바늘귀 지나는 것처럼 어려운 과정에서 강을 건넌 것이다.

반세기만에 다시 만날 옛 군대 선배와 함께 할 순댓국은 우리를 48년 전 그 청춘 시절로 데려가 줄까?
그래서 그 양반 이름을 나름 간직하고 있었고, 이런 저런 글에서 그를 언급하곤 했다. 그 글을 그 양반의 아들이 어딘가에서 보고 나에게 연락해 왔고, 그래서 자기 아버지인 ‘박평양’ 그 분과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둘의 통화는 어쩌면 기억 되찾기를 경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양반은 그 당시 내가 많은 전출병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기억하는 정도가 나만은 못했다. 내가 하나 하나 들먹이면 그 양반이 맞장구치는 그런 식의 기억 되찾기였다.
이런 통화에서 그 양반이 기억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15연대 인사과에 같이 근무했던 다른 한 양반에 대한 기억이었는데, 다름 아닌 유 아무개라고, 그 <나의… >로 시작하는 답사기로 유명한 그 사람이었다.
통화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분이나 나나 이제는 70줄의 나이이니, 그 청춘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어찌 짤막한 전화 통화로 담을 수가 있었겠는가.
울산에 사신다면서 가끔 아들들 보러 올라온다고 하길래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렇다.
“순댓국 한 그릇은 꼭 얻어 먹겠습니다.”
48년 전 문산 버스 차부에서 나에게 사 준 순댓국 한 그릇을 갚으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