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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여론조사로 후보 결정, 정당과 당원구조 엉망이라는 증거. 우리 정치의 민망한 속살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 절차와 과정이 우리 여론조사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엄격
-정당개혁 뒤로 한 채 억지 당원 모집하고 정작 선거 때는 투표권조차 주지 않는다니
툭하면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한다. 지방선거와 총선에 이어 대통령선거까지 그렇게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정당이 엉망이고 당원구조가 엉망이라는 말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정치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다.
독하게 한 마디 하자. 문명된 민주국가에 이런 예는 없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대부분의 주(州)는 당연히 당원들이 후보를 결정한다.
흔히들 개방경선 내지는 국민경선의 예로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이야기한다. 당원이 아닌 사람도 경선투표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 미국 50개 주(州) 중, 17개 주에서 양당 모두가, 4개 주에서 민주 공화 양당 중 하나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오픈’ 방식은, 그 절차와 과정에 있어 우리의 여론조사 방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우선 대부분 양당이 같은 날 프라이머리를 치른다. 그것도 투표소에 직접 나가서 투표를 한다. 그리고 투표행위에 앞서 이 정당을 지지하겠다는 서명을 한다. 심지어 지난 선거에 이 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서명을 받기도 한다. 비밀투표인 만큼 그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만큼 양심에 호소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래저래 역선택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최소한 정당정치의 기본은 살리고자 한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후보와 정몽준후보가 여론조사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은 조사였다.
‘오픈’을 해도 이렇게 오픈하는 나라의 국민들이 여론조사로 공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 정당개혁은 뒤로 한 채, 때로는 억지 당원까지 모집하고, 그런 뒤 선거 때만 되면 투표권조차 주지 않는 것을, 또 여론조사로 공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여론조사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는 있다. 그러나 80%, 100% 반영이 뭐냐? 편의주의적이고 대중영합주의적 방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론조사가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예를 하나 들자. 2002년 대선 때 노무현후보와 정몽준후보가 여론조사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은 조사였다. 지인이 운영하는 여론조사기관이 금요일 토요일 이틀 간 사적으로 사전조사를 했는데, 그 첫날인 금요일 밤 전화가 왔다. 노후보가 밀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다시 전화가 왔다. 토요일 조사, 특히 오후 조사에서는 노후보가 앞선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를 분석했다. 그 결과 토요일, 특히 토요일 오후에는 노후보 지지성향이 강한 회이트칼러 직장인들이 퇴근을 한 후라 노후보의 지지가 올라간다는 결론을 얻었다. 직장에서는 여론조사 전화가 와도 끊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집에 와서는 자유롭게 응답하며 노후보 지지를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공식 단일화 여론조사는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이었다. 그런데 조사는 이들 직장인들이 집에 있는 일요일 하루 만에 끝나고 말았다. 중요한 조사임을 안 응답자들이 응답을 잘 해주는 바람에 일요일 하루 만에 다 끝나 버린 것이다. 결과는 노후보의 승리, 평소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던 노후보가 이긴 것이다.
내 생각이나 당시의 분석이 틀릴 수 있다. 또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이렇게 후보가 결정되어도 좋은 것인가? 당이 서로 다른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당내의 후보결정을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가?
그 때와 지금은 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도 여론조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오차범위를 두는 것이고, 통계학에서는 그 범위 내의 차이는 차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통계를 가르친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기막혀 하고 있다.
대통령후보 결정에 일반국민 대상 여론조사 80% 반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지만 자괴감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어쩌다 우리의 정당이 여기까지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