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들에게 응급의학과 추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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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수

 

-“교수들 지들 놀려고 대신 일할 노예를 필요로 하지. 자기 과 비젼 있다고 사기나 치고”

-“트집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날 주시하는 사람이 내가 지금까지 살린 환자보다 많아”

-“나한테 의사 추천해 달라고? 나보다 잘하는 놈이 어딨다고.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라”

 

 

“이 새끼가? 낚시하지 마라. 안 속는다. 내가 응급의학과 좋다고 하면 나 욕할 거잖아. 맞지? ‘교수새끼들. 늘 지들 쳐 놀려고 자기 대신 일 할 노예를 필요로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들 살살 꼬드기지, 노예 충원하려고. 혹시나 전공의 지원이 없으면 본인이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서 늘 자기 과 비젼 있다고 사기를 치는 쓰레기들.’ 이렇게 생각하잖아? 내 말이 틀려? 내가 응급의학과 추천한다고 하면, 당신도 똑같은 쓰레기라고 욕할 거지?”

 

[아 들켰네요. 눈치 오지게 빠르시네요. 인정. 갓직히 응급의학과 좃도 아니잖아요. 남들 노는 밤에 일해야 하고, 툭하면 술먹은 주폭에 진상 조폭을 상대해야 하고. 1년에 150명이나 전문의가 배출되니 공급과잉으로 앞으로 페이 하락은 기정사실이고. 타과 의사들도 맨날 일반인들 앞에선 힘든 응급실을 예로 들면서 의사들 고생하는 거 알아줘야 한다고 목에 핏대 세우다가, 정작 의사들끼리만 있을때면 응급의학과 새끼들은 도대체 하는 일이 없다고 뒷담화만 줄창 까대죠. 일은 힘든데 보람도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과를 전공하라고 후배들에게 권유할 수 있겠어요?]

 

“그래 맞아. 응급의학과 의사는 거칠고 힘들면서도 인정받기 힘든 전공이지. 그래서 나는 특별한 사람들만 응급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해야한다고 생각해. 너랑 나처럼 특별한 사람들만.”

 

[제가요? 제가 뭐가 특별하죠?]

 

“더럽고 힘들어도 낭만을 아는 의사니까. 그게 특별한거지.”

 

[아뇨. 낭만은 필요없어요.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더러워도 힘들어도 되니까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남들보다 훨씬 더 고생해도 괜찮아요. 제가 일한 대가만 받을 수만 있으면 돼요. 직장에선 부서져라 일하더라도, 그래도 사람 살렸으니 그 대가로 제 처자식들 잘먹고 잘살게 하면 그걸로 만족한다고요. 근데 제가 전문의 따서 돈 벌쯤엔 자리가 포화돼서 제값을 못 받게 될까봐 후달려요.]

 

“응급의학과 의사는 거칠고 힘들면서도 인정받기 힘든 전공이지. 그래서 특별한 사람들만 응급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너의 탐욕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고생한만큼 남들보다 더 벌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욕구지. 프로 스포츠선수는 연봉으로 가치를 증명하잖아. 그러니 너도 남들보다 많은 돈을 받고, 그것으로 너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인정을 받고, 그럼으로써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더 많은 환자를 살린다면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어? 그러니 나는 너의 선배인 교수들이, 너희들이 적정 몸값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주길 바라. 그런데 말야. 너희는 그 몸값이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하는거 같은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그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몸값을 올리는 방법도 있거든.”

 

[그 가치라는 건 어떻게 하면 인정받는 건데요?]

 

“그건 너네 교수님들께 여쭤보렴. 나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 직원에 불과하니까. 어려운 질문이나 무거운 책임을 나에게 요구하는 건 넌센스지. 솔까 내가 교수 소리 듣는 건 호칭 인플레이션 때문이잖아.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선생님이나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아니, 펠로우 끝나고도 대학병원에 남아있으면 다 교수인 거죠. 명함도 직함도 다 교수시잖아요. 굳이 교수 아니라고 겸손한 척하는 거 오히려 은근한 특권의식 같아요. 결국 교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 같거든요. 어차피 다들 교수님이라고 부를 거란거, 다 알고 있잖아요?]

 

“아니, 내가 진료 측면에선 교수 소리 듣는 것도 이상할 건 없지. 그런데 교육은 아니거든. 나는 학생교육을 맡지 않으니까. 학생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에게 교수라는 호칭을 쓰는 게 적절할까? 물론 환자들이 의대교수를 말할 때는 교육보다 진료 측면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요즘은 누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불러도 굳이 교정하지 않아. 일일히 호칭을 교정해주는 게 너무 귀찮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 대화의 맥락을 생각해봐. 나는 이 대화에선 교수란 호칭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나는 너네 미래를 걱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를 가르칠 의무가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아까 교수님이랑 저는 특별하니까 응급의학을 하는 거라 했잖아요? 그건 교수님도 낭만이 있으시단 얘긴가요?]

 

“노노. 전혀. 나의 낭만은 20대에 전부 소진됐어. 꿈은 없고 현실만 남은 중년이지. 그러니 나는 낭만을 쫓아 응급의학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럼 무엇때문이냐? 그건 바로 내가 관종이기 때문이야. 그찮아? 사람들이 툭하면 나를 향해 ‘저 관종새끼’라고 비아냥거리는 거 다 알고 있어. 괜찮아. 사람이 관종일 수도 있지 뭐. 아무튼 나는 의사 전공 중에 관종이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게 바로 응급의학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내 선택은 응급의학뿐인 거지.”

 

[저는 교수님이 관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ns만 좀 줄이시면 되지 않을까요? 리얼월드에서 제가 보는 교수님은 전혀 관종이 아니거든요.]

 

“아냐. 나는 관종이 맞아. 현실에서는 다만 참고 억누르며 살고 있는 거거든. 먹고 사느라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담아두고 있는 거지. 그러니 sns에서라도 좀 더 자유롭고 싶네.”

 

[그럼 sns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계시는건가요? 아닌 거 같은데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현실에서 더 거침없이 얘기하시던데요?]

 

“응. 제대로 봤어. 나는 이제 관종의 초심을 잃었어. 뭐 하나라도 트집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주시하는 사람의 수가, 내가 지금까지 살린 환자의 수보다 많거든. 그래서 요새 sns 하면 눈치를 많이 봐. 흡사 내가 갈릴레이라도 된 거 같은 기분이야. 지구가 돈다는 말조차 쉽게 할 수가 없어. 내가 잘 생겼단 말조차 꿀꺽 삼키고 있으니 말 다한 거지.”

 

[근데 관종이랑 응급의학은 무슨 관계인가요?]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유명해진 셀럽 의사가 있다고 하자. 그 유명세가 과연 현실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어차피 어디서 일하는 누군지는 다 까발려질 게 뻔한데? 어느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가 나에게 아는 척을 하면 기분이 어쩌겠어? ‘여기저기 가봐도 차도가 없는데 선생님은 명의라서 고쳐주실거라 기대하고 왔다, 어디 아픈 곳은 없지만 꼭 한번 뵙고 싶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왔다, 저번에 보니까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는 거 같던데 그건 아니라는 걸 설명드리고 싶어서 왔다, 저희는 어떤 대의를 가지고 있는데 선생님같은 분들이 도와주시면 좋겠다.’ 아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냐?”

 

[끔찍하네요.]

 

“근데 난 응급의학과 의사라서 그럴 일이 없지. 외래 진료실이 따로 없거든. 내가 진료하는 날짜와 시간도 알 길이 없지. 응급실에 쳐들어 오더라도? 의사만 십수 명이 한번에 왔다갔다 하는 공간에서 나를 어떻게 찾겠어? 더구나 응급실은 그런 만만한 목적으로 찾아오긴 부담스럽지. 그 덕에 나는 이만한 관종짓을 하고도 아직 멀쩡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가 아니었으면 아마 sns 계정을 10번도 더 지워버렸을걸.”

 

[확실히 그런 면이 있네요. 그러면 sns를 넘어 실제로 접촉을 시도한 사람은 단 한번도 없으셨나요?]

 

“그럴 리 없지. 어떻게든 전화번호를 털어서 카톡을 한 사람도 있었고, 병원에 사기쳐서 전화를 연결한 사람도 있었어. 한번은 뒷골 서늘한 스토커도 겪은적이 있지. 참 골 때리는 얘기잖아. 예를 하나 들어볼까? 예전에 병원의 각 부서를 들들 볶아 기어이 내게 통화를 연결해 낸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내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아? 가족 중에 한명이 어디가 아픈데 잘하는 의사 좀 추천해달래.”

 

[엄청 기분 나쁘셨겠어요.]

 

“당연하지. 나한테 의사를 추천해달라니. 나보다 잘하는 놈이 어딨다고.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라. 아무튼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겠지? 바로 그런 연유로 내가 페이스북 메신저를 거의 읽지 않는거야.”

 

[그럼 제 전화랑 카톡을 씹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인가요?]

 

“아니. 그건 자느라 알람을 꺼둬서야. 밤에 당직서고 낮에 자고 있던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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