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 후 부활하는 아프간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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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아린

 

-소련군에 저항해 승리했고 탈레반에 맞섰던 전설의 무자헤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

-아들과 후예 무자헤딘, 미군 철수 후 탈레반에 맞서 유일하게 항전 결의하고 군대 결집 중

-북부동맹 주도했던 전통 이어받아 판지시르 중심의 반탈레반 저항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 

 

 

1. 아흐마드 샤 마수드, ‘판지시르의 사자’로 불렸던,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불리는 남자.

 

2. 카불대학교 건축학과를 다니며 교사를 꿈꾸다가 소련이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고향인 판지시르에서 무자헤딘(성전에서 싸우는 전사)을 일으켜 소련군에 저항하기 시작함. 이 때 나이 26세.

 

3. 프랑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누구도 전쟁을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무다. 한 나라의 국민이 침략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싸워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다”라고 분명히 밝힘.

 

4. 구식소총 7백 정과 민병 1천 명을 모아 소련에 저항하기 시작함. 9년 동안 소련과 전쟁을 치르면서 1만3천 명의 최정예 군대로 바꿔놓음.

 

5. 소련군 보급로를 게릴라전으로 지속적으로 위협하던 마수드를 잡기 위해 소련군은 특수부대 스페츠나츠를 포함해 1만 명이 넘는 군대를 투입하고, 전차와 폭격기까지 투입해 아홉 차례나 대공세를 펼침. 하지만 아무런 외부 지원없이 고립된 민병들로만 전투를 수행한 마수드에 철저히 유린당해 패배함.

 

6. 특히 1982년 5,6차 공세에서 소련군은 연인원 3만 병력과 헬기 2천 대를 투입했지만 3천 사상자를 내는 데 그침.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1천 명이 마수드에게 투항함으로써 물자와 무기까지 전부 털려버림.

 

7. 이후 소련은 육상 보급을 포기하고 공중 보급만 실시함.

 

8. 1983년 소련은 정전을 제안했고, 마수드는 이 기간을 철저히 이용하여 정치 및 인종 문제로 분열된 아프가니스탄 북부 7개 주의 130명 무자헤딘 지도자들을 하나로 모아 감독의회(북부동맹의 전신)를 창설함.

 

9. 소련은 이 사태에 기겁하여 폭격기를 동원해 판지시르에 대대적인 폭격을 시도했지만 사전에 정보를 파악한 마수드가 5만 명을 대피시킴으로써 소련의 폭격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함.

 

10. 1984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정부군 2만1천 명을 동원해서 7차 공세를 펼쳤으나 5천 무자헤딘에게 털리고 2천5백 명의 사상자만 초래함.

 

판지시르에서 부통령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선언한 마수드 주니어, 판지시르의 젊은 사자,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은 아흐마드 마수드(가운데).

 

11. 1988년 소련군 완전 철수.

 

12. 마수드는 전쟁을 치르면서 서방의 지원을 받지 못함. 영어를 할 줄 몰랐고, 파키스탄 정보부와 미 CIA의 삽질 때문에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마수드는 무자헤딘 점령지에 학교와 병원을 짓고 경제를 활성화하였으며 남녀 구분없이 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함.

 

13. 이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고용한 현지 정보원이 이중첩자인 줄조차 몰라 인력 손실도 크게 겪음.

 

14. 마수드는 이런 상황에서 수도와 전기시설, 이슬람식 남녀 공학 학교와 12개 의원 및 3개 종합병원 등도 지역에 유치하였고, 이 지역을 법과 명령에 기반한 관리시스템으로 운영함.

 

15. 소련 철군 3년 뒤인 1992년 마수드는 같이 싸운 세력들과 권력을 나누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으나 최대군벌인 헤크마티아르가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일으켜 카불을 점령함.

 

16. 마수드는 헤크마티아르를 격파하고 카불을 재점령하는데, 헤크마티아르가 도망치며 카불 시민 1만 명을 학살하고 탈환한 카불에서 마수드는 참상을 보고 눈물을 흘림. 마수드가 울었던 적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17. 탈레반이 세력을 키워 카불로 진격해오자 마수드는 북부동맹을 결성하고 국방장관에 취임함.

 

18. 이후 시작된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마수드는 계속 승리를 거둠.

 

19. “여자와 아이를 죽이는 게 무슨 성전이냐”며 탈레반을 맹비난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모든 민족의 통합과 협력을 호소함. 마수드의 대의 아래 모든 민족이 동맹을 맺고 대 탈레반 전쟁에 나섬.

 

20. 카불까지 밀린 탈레반은 마수드 암살을 계획하고, 마수드는 벨기에 기자를 사칭한 알카에다의 폭탄 테러범에게 암살당함.

 

21. 마수드 사망 2일 뒤, 9·11 사건이 발생하고, 최대의 적인 마수드를 암살해준 알카에다를 탈레반 정권이 내놓지 않고, 미국의 오랜 전쟁이 시작됨.

 

22. 마수드는 저항하지 않는 자, 아이, 여성에게는 손대지 않았고, 다른 사상에도 관용적이었음.

 

23. 마수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을 같은 신을 믿는 형제라 여기고 관심을 보였으며, 카불 근처까지 진군했다가도 탈레반이 카불을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협박하자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퇴각한 적도 있음.

 

24. 마수드에게는 1남 5녀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2021년 8월 16일 판지시르에서 부통령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선언한 마수드 주니어, 판지시르의 젊은 사자,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은 아흐마드 마수드임.

 

25. 마수드 주니어는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고향인 판지시르에서 반탈레반 및 잔존 정부군, 정부인사들과 합류하여 저항을 준비함.

 

26. 대통령까지 도망친 상황에서 부통령은 거의 모든 반탈레반 지휘관들을 모아 판지시르로 이동했고, 저항을 선언함.

 

27. 원리주의 탈레반을 경계하는 인도가 반탈레반 세력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

 

28. 아프가니스탄 전역의 반탈레반군의 결집과 항전을 호소 중.

 

29. 아래는 마수드 주니어의 연설.

 

판지시르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한 위기에 빠졌고, 이 전쟁을 패배로 이끈 패배자들 사이에 탈레반과 협력하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만 굳건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카불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리 아프가니스탄은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판지시르에 있는 우리의 전사들, 노병과 젊은 무자헤딘이 무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마음으로라도 또는 직접적인 지원으로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자유의 벗들이여, 최대한 많은 수로 우리 편에 모이십시오.

우리는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것입니다.

폭정에 맞서 피억압자의 영원한 저항의 새 장을 열어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끝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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