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거와 김구의 계산 그리고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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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석

 

-김구 측에서 윤봉길 거사 계획을 주변에 알려 미리 피하게 했는데 안창호만 빼놓아

-“중국인에 의한 사건이어야 하니 절대로 신상 파악할만한 소지품 지녀서는 안된다”

-윤봉길 의거는 중일전쟁의 기폭제. 만주 일대의 조선인들 삶의 터전을 잃는 계기로

 

 

1. 윤봉길 의거의 배후

윤봉길에 대해서도 좀 털어드릴까? 일단 팩트 하나만 말한다. 윤봉길은 김구의 지시로 거사를 했는데, 당시 상해에 있던 김구와 안창호 간에 알력이 심했다. 희한한 것은, 당시 김구 진영에서 윤봉길 거사 계획을 주변에 알려서 미리 피신하게 했는데 안창호에게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창호는 아무것도 모르고 당시 상해 한인회장 집을 찾아갔다가 잠복한 형사들에게 잡혀 주모범으로 몰려 일본으로 호송되었다가 옥사하게 된다. 안창호는 끝까지 윤봉길과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했고. 문제는 윤봉길이 자신의 거사 배후로 안창호가 만나러 가던 상해 한인회장을 지목했다는 것. 김구를 빼고.

 

원래 윤봉길은 김구의 지시에 의해 두 개의 폭탄 중에 하나는 자결용으로 떠뜨리기로 했다. 그리고 김구는 윤봉길에게 ‘이 사건은 중국인에 의한 것으로 되어야 하니, 절대로 신상이 파악될 만한 소지품을 지녀서는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김구의 훗날 말이긴 하다.

 

그런데 윤봉길은 남은 하나의 폭탄을 터뜨리려다 불발되어 일경들에게 제압당하자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들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것인데. 이상하지 않나? 윤봉길은 무장투쟁 김구를 절대시했고 김구와 다른 독립 세력을 만들려던 안창호의 흥사단을 ‘수양하는 단체’라고 낮춰 평가했다.

 

윤봉길의 자결 폭탄은 왜 안터진 걸까? 왜 윤봉길은 김구의 말과 다르게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서 자신이 독립투사라는 걸 알렸던 것일까?

 

김구가 사주한 윤봉길 의거는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됐고, 만주지역 조선인들에게 지옥도를 선물했다.

 

이 사건은 결국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을 침략하는 중일전쟁의 계기가 된다. 중국이 윤봉길의 거사를 높이 치하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김구는 이것을 원했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해야 조선이 독립된다고. 말이 되는 전략이었을까.

 

왜 김구 세력은 윤봉길의 거사를 안창호에게만 알리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윤봉길은 왜 하필 김구 노선에 반대하고 안창호와 긴밀하게 협력했던 상해 한인회장을 배후 조종자로 불었던 걸까? 미스테리다.

 

윤봉길은 어쩌면 주군, 김구를 위해 사무라이적으로 결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독립투쟁이었는지, 아니면 내부 라이벌 세력 숙청의 자폭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윤봉길이 마지막 가는 길에 김구를 위한 배려였는지. 안창호만 억울하게 희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2.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투쟁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투쟁을 높이 평가하는 역사학자라면 당시의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이승만이 ‘쓸데 없는 짓들 하지말고 무기는 집에다 갖다 놓으라’고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1920-1930년에 만주는 철도 개발 등으로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심지어 미국조차 투자에 뛰어든 곳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막대한 자금들이 만주에 투자되어 있는 판에 조선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으로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명분을 얻어갔다.

 

독립군을 보호하는 중국과 일본이 으르렁거리면 프랑스, 영국 등이 이를 말리려 애를 썼다. 그런 국제 정세였다 이 말이다. 그런데 김구는 희한한 생각을 했다. 윤봉길에게 말하기를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해야 조선이 독립의 기회를 얻는다’며 중국과 일본이 화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한다는 이이제이 전략이었다.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사건도 중일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나마 프랑스와 영국 등이 중재를 해서 성사되려던 평화유지 협정을 막으려는 기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윤봉길의 거사를 서구 열강들이 어떻게 보았겠나. 다 되어가는 밥에 제3자가 코 빠트리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그나마 프랑스 조계지에서 활동하던 독립인사들이 프랑스의 일본 협력으로 대거 체포되어 처형됐다. 상해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결국 윤봉길 의거로 일본은 이를 두둔한 중국 관보들과 정부를 상대로 평화유지 협정을 지키지 않았고 중일전쟁의 기폭제가 된다.

 

만주 일대의 조선인들로서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삶의 터전들을 잃어야 했다. 조선의 청년들이 전장에 동원됐다. 이게 조선 독립과 무슨 상관이었던가. 이승만이 한탄한 이유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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