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부족정치 간과한 대가

<<광고>>



¶ 박동원

 

-미국이 실패한 핵심 원인은 그곳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집단 정체성을 간과했다는 점

-탈레반은 이슬람일 뿐만 아니라 민족운동 성격도 지녀. 탈레반 일원 대다수가 파슈툰족

-전쟁으로 고통 받던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 지지한 건 무법천지에 안전 가져왔기 때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이후 이런 저런 포스팅들이 올라오는데 거의 단편적이다. 작년에 발간된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 부족주의>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실책편이 나온다. 그 내용을 정리해본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오바마 빈 라덴으로만 기억하는 엉터리 주장들 하지마시고 한번들 읽어보시길. 물론 에이미 추아의 미국 입장에서 본 주장이지만.

 

1.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핵심 원인은 그곳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집단 정체성을 간과했다는 데 있다. 아프간에서는 집단 정체성이 국가 대 국가로서가 아니라 민족, 부족, 종족을 기반으로 행성되어 있다.

 

2.
아프간 국가 가사에만 언급된 부족만 14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4개 부족은 파슈툰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하자라족인데 이들 사이에는 오랜 적대와 반목의 역사가 있다.

 

3.
탈레반의 활동은 이슬람 운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민족운동이기도 하다. 탈레반 일원의 대다수가 파슈툰족이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세웠고 파슈툰족이 이끌고 있으며 파슈툰족의 지배력이 위험에 처했다는 인식 속에서 생겨났고 그 인식이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 역할을 하고 있다.

 

4.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단지 급진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집단이건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지배를 쉽게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법’이라는 부족 정치의 근본 원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5.
공산주의와의 싸움에만 초점이 쏠려 있었던 미국의 대외 정책 결정자들은 (아프간의 핵심 부족인) 파슈툰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오히려 미국은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아프간 무자헤딘을 자유세력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로 낭만화했다.

 

탈레반의 강점은 이전에 만연했던 강탈, 강간, 집단강도, 납치 등을 막아냈다는 점이다.

 

6.
1979년에 이란에서 경악스런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대격동이 벌어지고 미국인이 인질이 되는 것을 보면서도 아프간에서의 미국 외교정책은 반미, 반서구주의적인 집단 정체성이 이슬람 근본주의 전사들을 얼마나 막강하게 자극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냉전 프레임에 고착된 나머지 미국은 사실상 자신의 도움으로 커지고 있는 괴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7.
1980년부터 1992년 사이에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해 거의 50억달러 가량의 무기와 탄약을 반소련 무자헤딘 전사들에게 제공했다. 무기를 제공받은 사람 중에는 훗날 미국의 최고 현상범 목록에 오르고 맹렬한 반서구의주 기치아래 탈레반 지도자가 되는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 같은 이들도 있었다. 탈레반이 부상하고 아프간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의 거점이 된 것은 상당 부분 미국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
1989년 소련이 철수한 이후 아프간은 수년간 잔혹한 내전에 휩싸였다. 1996년 스스로를 탈레반이라고 부른 일군의 물라(이슬람 지도자)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아프간 인구 3분의 2에 대해 통제력을 갖게 됐을 때 미국은 완전 속수무책이었다.

 

9.
1990년대 초 아프간은 무법천지였다. 모든 도시와 마을이 사실상 군벌에 의해 통치되었고, 밀거래상과 마약 마파아들이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납치, 약탈, 강간(어린 여자아이들까지도)이 횡행했다. 전쟁으로 고통받던 많은 아프간 사람이 처음에 탈레반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무법천지였던 곳에 어쨌든 안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10.
그 안전이 엄격한 이슬람 복식의 강요 그리고 텔레비전, 음악, 카드, 연날리기, 대부분의 스포츠 등에 대한 엄격한 금지와 함께 온 것이었더라도 말이다. 탈레반이 안전을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슈툰족의 부족 정체성에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법과 질서를 구축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와 탄탄한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11.
파슈툰족은 우즈베크족과 하자라족을 학살하거나 아사시키려 했다. 물론 다른 부족도 파슈톤족에게 그랬다. 실상은 이러했지만 미국은 탈레반의 민족적인 측면을 결코 보지 못했다. 1980년과 1990년 초반까지 미국은 무자헤딘을 단지 반공산주의 세력으로만 여겼고 따라서 미국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12.
오사마 빈 라덴은 탈레반 통치하에 있는 아프간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알카에다’ 발족을 선언하면서 “가능한 곳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든” 미국인을 죽이는 것이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고 전 세계에 선포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미국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도, 특히 9.11테러 이후에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에 넘겨주기를 거부했을 때도, 미국은 냉전의 렌즈를 반이슬람 렌즈, 혹은 테러와의 전쟁 렌즈로 갈아끼웠을뿐 탈레반을 동굴에 사는 한 무리의 물라(이슬람 지도자)로 규졍했고, 부족 정치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또 한번 간과했다.

 

13.
미국과 연합군이 탈레반을 무찌른(적확하게는 산에 숨게 만든) 뒤 미국은 사실상 아프간을 나몰라라 했다. 이라크에 집중하느라 아프간사람들에게 안전이나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탈레반이 가졌던 핵심적인 강점 하나는, 이전에 만연했던 강탈, 강간, 집단강도, 납치 등을 막아냈다는 점이다. 그런데 미국이 탈레반을 축출하자 부패와 무법천지가 돌아왔다.

 

14.
파슈툰 부족 사람들은 아프간을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프간을 세웠고 200년 넘게 지속적으로 통치했다. 그들은 두 개의 세계 초강대국(영국와 러시아)을 무찔렀다. 파슈튠 사람들은 설사 탈레반을 싫어한다 해도 자신이 깊은 분노를 느끼는 라이벌 부족에 자신을 복속시키는 정권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파슈툰족
크고작은 60개 부족으로 구성. 각자 특정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음. 아프간에서 610만여명으로 인구의 48% 차지. 13~16세기에 몇몇 파슈툰 부족이 이동한 파키스탄에 약 680만명으로 파키스탄 인구의 17% 차지. 부족의 혈통을 통해서 지위계승과 상속, 부족의 땅을 이용할 권리나 부족회의에서 발언할 권리 등이 정해진다. 개인적으로 모욕을 당하거나 재산 또는 여성에 관련된 분쟁이 일어나면 가족은 물론이고 전체 씨족간에 복수극이 벌어진다. 씨족장이나 부족회의에서 싸움을 중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대를 이어 복수가 행해지기도 한다. 전통적인 유목민 문화와 습속.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