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원희룡이 워낙 각별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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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학생운동 출신 중 공장에 간 사람들은 고민의 깊이, 좌절의 아픔 등에서 ‘클라쓰’ 다르다

-심금 울리는 엣지 없어. 진군나팔을 불어야 하는데, 피리를 불거나, 고운 성악을 하는 격

-윤석열과 최재형은 외교안보 문제를 주요하게 언급. 원희룡 윤희숙 등의 선언에는 결여

 

 

원희룡 대선출마 선언문

 

원희룡은 저와 1980년대를 가장 비슷하게 산 사람입니다. 지난 40년 간 거친 정치사상적 편력도 비슷할 겁니다.

 

1982학번에, 1983.5.13 학내 격렬시위로 관악서에 연행되어, 새벽에 훈방이 되었으나(그날 새벽 관악서 인근 봉천동 제 자취방에서 새우깡에 소주 몇병 마셨지요), 원희룡은 유기정학(1학기), 저는 무기정학(1년), 그 이후 당시 학생운동 룰에 따라 야학을 하러 나갔습니다.

 

원희룡은 기독야학연합회에 참여한 신우교회 야학, 김영환은 구로지역장(구로 3성당), 저는 조직부장(행당동 청리야학)으로 종종 만났고, 그 이후 각기 다른 사유로 병역 면제 받고(저는 수형), 현장활동(위장취업)에 뛰어들어 1980년대 후반에 공장을 나왔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0년 전후한 시기의 소련동구 몰락과 중국 천안문 사태 등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원희룡은 시험 보는 재주가 출중하여(1982학번 학력고사 전국수석) 사법고시를 해서 검사 생활을 했고, 저는 1995년 대우자동차에 들어가서 공대 금속공학과 전공을 살렸습니다.

 

1986 학번인 하태경의원은 NL/주사파가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학생운동을 했으니(전대협 조통국에서 일했으니), 전향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학생운동이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지원적 성격을 뚜렷히 가지고 있던 시기에 운동을 한 원희룡과 저는 혁명가인 적은 있지만,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에 심취한 적이 없으니 진화발전을 한 성찰파라고 할 수있습니다.

 

70~8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은 야학 활동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뛰어든 사람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조직을 하고, 생경한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뿌려대는 일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5년, 10년 아니 평생을 바친다는 생각으로 공장에 갔으니(위험한 일로 말하면 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권총을 받아오는 등 목숨이 10개라도 모자랄 간첩질을 하다가 전향하여 북한민주화운동에 떨쳐나선 김영환/민혁당 그룹입니다).

 

지금 왕년의 학생운동 화끈하게 한 정치인 중에서 공장까지 간 사람은 제가 알기론 송영길, 김영환 전의원, 원희룡 등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공장에 가지 않았으니. 공장까지 간 사람들은 (조국, 이인영, 우상호 등과 비교하면) 대체로 고민의 깊이, 좌절의 아픔, 성찰의 강도 등에서 ‘클라쓰’가 다릅니다.

 

이래저래 제가 원희룡 후보를 각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참 많습니다. 1980년대 현장(원희룡은 키친아트)의 땀냄새와 눈물을 아는 등, 학생운동을 제대로 한 사람 중에서 현재 대선후보로 우뚝 선 사람은 원희룡이 유일합니다. 저는 그 세대 중에서 사상이념과 비전정책 문제를 가장 질기게 부여잡고 연구고민한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더 각별합니다.

 

원희룡의 정치행보에 대해 아쉬움과 답답함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수십 명의 후보들과 비교하면, 원희룡이 의외로 괜찮습니다. 흠잡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치명적인 흠결이 없습니다. 그런데 치명적인 매력도 없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아쉽고 답답합니다.

 

출마선언문 몇 번 정독하고, 발표한 정책공약도 살펴보고, 지난 한달여 정치행보도 살펴봤습니다(그 이전 40년의 역정은 대충 잘 아니까).

 

심금을 울리는 엣지가 없습니다. 시대의 모순부조리를 무찌른다면서 진군나팔을 불고, 북을 울려야 하는데, 무슨 피리를 불거나 아름다운 성악을 하는 격입니다. 이건 포효성 공약을 내지르는 장기표, 윤희숙과 비교하면 알 수있습니다.

 

원희룡은 원래 자치분권의 가치와 균형발전 가치를 자신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로 만들어야 정상입니다. 무려 제주특별자치도 지사를 7년을 했으니!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자치분권-균형발전 가치를 고창하면서 중앙정부와 싸운 경력이 없습니다.

 

자유를 강조하지 않는 보수 후보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의 양대 기둥이 사적자치(시장자치와 공동체자치)와 지방자치인데,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시장자치(실은 규제 완화/합리화)만 말합니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원희룡이냐가 핵심 포인트인데, 그게 정말 모호합니다.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이 없어서 “정권간의 보복과 관련이 없어서” “승복할 수 있는 심판, 미래로 가는 청산은 원희룡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1987년 박찬종 후보 등 젊고 돈없는 후보들이 다 강조한 “깨끗한 사람, 개혁적인 사람, 젊은 사람”론입니다.

 

“승복할 수 있는 심판, 미래로 가는 청산”과 원희룡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원희룡은 스토리가 훨씬 많은데 왜 “깨끗한 사람, 젊은 사람” 타령을 하는지?? 개혁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 남·원·정이 초선, 재선의원 시절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명실상부한 중진이라서, 개혁하면 연상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입법이든 당 운영방식이든 제주도에서의 성과든. 아마 제주도에서 성과는 분명히 있을 건데, 그건 설명을 들어야 알 수있을 겁니다. 그건 성과가 별거 아니든지, 제대로 마케팅을 못했든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구분하겠”다면서 “법치파괴, 소득주도성장, 임대차3법, 탈원전, 주52시간제경제와 일자리, 집값, 에너지, 대한민국 망친 그 모든 실패한 정책을 되돌려”놓겠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자, 문정권이 치명적으로 실패한 정책인 외교안보, 대북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미중 문제도 “미중간의 기술경쟁”으로 좁혔습니다.

 

정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잡는 것이요, 가치와 자원의 선택집중이기에 어떤 것을 주요하게 언급하고 어떤 것을 언급하지 않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윤석열과 최재형의 선언문에는 외교안보 문제를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원희룡, 윤희숙, 장기표, 하태경 등의 선언에는 그게 없습니다. 외치와 내치를 아우르는 경세방략 전반에 대한 학습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중은 물과 공기 같은 외교안보 문제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대통령 후보는 터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분노를 조직해야 합니다. 원희룡이 한 정치행위와 정치메시지 중에서 그래도 가장 히트한 것은 명동 나가서 코로나 문제로 1인 시위를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출마선언문에서 언급한 “100조 원 규모의 담대한 회복 프로젝트와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은 사법고시 시험문제에 대한 답은 될지언정, 대선후보의 비전과 정책은 아닙니다. 코로나와 관련한 문제, 즉 백신참사, 정치방역, 비과학방역, 모순방역, 단체기합식 방역, 피해보상 모르쇠 방역 등은 야권후보로서 엄청나게 좋은 호재인데, 왜 이리 값싸게 날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1~2개월은 지난 시기 5~10년에 필적할 수도 있습니다. 윤희숙의원이 뜨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말을 놓을 수 있는 친구 사이인 유일한 후보가, 지금처럼 하면 4인 컷오프 통과가 쉽지 않아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원희룡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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