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과달카날 레퀴엠’과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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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

 

-<과달카날 레퀴엠>은 현장의 역사, 시간, 신화 등 마주하는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꼴라쥬

-샬롯 무어만이 과달카날 섬에서 죽은 어린 일본인 병사들 위해 진혼곡 연주하는 것 같아

-“문화적 차이와 그것을 갈라놓는 오해의 결과로 세계대전과 갈등이 촉발되는 것 아닌가”

 

 

백남준의 진혼곡 ‘과달카날 레퀴엠(Guadalcanal Requiem)’과 꼴라쥬(Collage)

 

백남준과 샬롯 무어만은 1976년 호주 공연을 마치고, 곧장 뉴욕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변경해 백남준의 제안대로 시드니를 떠나 솔로몬 제도로 향했다.

 

태평양전쟁. 남서태평양 솔로몬제도 과달카날 섬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처절한 육상전은 태평양 전쟁중 가장 길고 힘들었고 참혹했던 전투였다. 일본은 개전 초에 해전에서 잠시 이겼을뿐 길게 이어지는 육상의 소모전에서 패배했다.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까지 벌어진 전투에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현역 군인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백남준이 그때 작업한 <과달카날 레퀴엠>은 전투가 벌어졌던 그곳에서 역사, 시간, 문화적 기억, 신화를 마주하는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꼴라쥬 작업이다. <과달카날 레퀴엠>에서는 샬롯 무어만이 과달카날 섬에서 죽은, 어린 일본인 병사들을 위해 진혼곡을 연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샬롯 무어만이 군복을 입고 총 대신 첼로를 등에 매고 해변에서 포복하며 요셉 보이스의 펠트천으로 싼 첼로로 백남준의 <평화 소나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솔로몬 제도 사람들의 인터뷰와 당시 전투 기록 이미지들이 겹쳐지게 하거나 색상을 변조하며 과달카날 위령비에서 포탄과 타고 남은 성조기를 배경으로 샬롯 무어만이 첼로를 연주하기도 한다.

 

백남준 작품을 보는 데 있어 68혁명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그는 비디오 매체의 등장으로 과거라는 절대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을 전치시킨다. 비디오의 교차 편집, 빨리감기, 되감기, 구간반복 등을 통해 역사 문화와 신화와 현재의 퍼포먼스를 외곽선 효과를 기본으로 하는 컬러 채널 믹싱으로 전자적으로 조작한다.

 

샬롯 무어만이 과달카날 섬에서 죽은, 어린 일본인 병사들을 위해 진혼곡을 연주한다.

 

그렇게 원주민 여성의 노래, 미국과 일본 그리고 솔로몬 제도 사람들의 인터뷰 등이 색변형, 주사선 조작으로 외곽선의 왜곡과 되감기로 오버랩되거나 반복된다. 거기에 오디오 시그널 웨이브 신디사이저 효과 등이 교차편집 되는것도 <과달카날 레퀴엠>을 백남준 특유의 퍼포먼스 미디어 꼴라주가 가지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백남준은 단순히 과달카날 섬의 전투에서 죽은 일본인이나 미국인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진혼곡을 작업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백남준 꼴라쥬의 미학적 효과에서 중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문화적 차이와 그것을 갈라놓는 오해의 결과로 세계대전과 갈등이 촉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과달카날 섬에서와 같은 전투도 문화적 차이와 오해에서 발생하는 참혹한 죽음과 파국이 아니냐고 되물으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혼종성과 교차편집, 되감기와 외곽선 외곡효과를 전자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그가 태어날 때 한국은 없었다. 그는 일본인이었고 그는 독일에 살았고 그는 뉴욕에 살았고 단일 국가의 정체성으로 제한될 수 없었으므로 모든 국가의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꼴라주했던 그에게 과달카날 진혼곡은 그러한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1932년 4월 3일 백남준 마이너스 108일

(백남준이 그가 태어나게된 날을 기준으로 108일 전?을 마이너스로 표현해 쓴 시)

나는 물었다. 한국은 무엇인가요?

 

나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너의 나라가 될 거야. 나는 물었다. 왜요?

 

엄마가 말했다. 이유는 없어.

 

백남준. 큰 나라인가요?

 

엄마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선진국인가요?

 

엄마. 아니, 뒤로 가는 나라란다.

 

백남준. 난 태어나지 않을래요.

 

엄마가 말했다. 그렇지만 약한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어.

 

우리는 1943년에 재난을 피하게 될 거야.

 

나는 물었다. 왜 한국을 선택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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