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에서 ‘자유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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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욱

 

-보스톤 중심가 보도의 중심 가로지르는 붉은색 벽돌 길,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

-존 핸콕, 사무엘 애덤스, 로버트 T. 페인, 폴 리비어,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묻힌 묘지도 

-수백년 지난 지금도 곳곳의 유적지들이 보존.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때문

 

 

미국의 독립과 자유의 흔적을 걷다.

 

보스톤 중심가 보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벽돌 길은 보스턴이 간직해 온 역사이다.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보스턴 커먼 공원 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시작되는 프리덤 트레일은 2마일이 조금 넘는다.

 

보스톤 커먼 공원은 미국 최초의 시민 공원이라고 한다. 이곳은 보스톤 시민들이 영국으로부터 부르짖던 자유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있다. 트레일을 따라 나가면 황금빛 돔을 얹고있는 건물이 있는데, 메세추세츠 주청사이다. 이 건물은 미국의 독립 이후 정부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하고자 했던 보스턴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생겼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기 보스턴 최초의 공립 건물로써 상인들의 거래 장소, 공무원들의 회의소 역할을 했던 옛 주청사. 이곳에서 1776년 7월 18일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최초로 선포되었다. 이곳은 보스톤의 자유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기 전 핏빛 바랜 비극적 사건, 보스톤 학살 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곳곳의 유적지들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보스톤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때문일 것이다.

 

보스톤 학살사건은 1770년 3월 5일 저녁, 킹가의 세관 건물 앞에서 홀로 보초를 서던 영국 군인을 한 젊은이가 놀린 것이 발단이 된 사건으로, 이로 인해 모멸감을 느낀 영국군들이 위협적인 눈초리로 다가서는 한 무리의 보스턴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3명의 시민이 즉사하고, 8명이 부상을 입게 된 사건이다.

 

보스턴 주의사당을 뒤로하고 다시 트레일을 따라 걷다보면 이 나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건물을 짓겠다는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교회가 있다. 이곳이 파크스트리트교회다. 1829년 독립기념일, 미국 역사상 최초로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이 노예제도 반대 성명을 발표한 곳으로 유명하다.

 

1660년부터 문을 열고 있는 올드 그래너리 묘지에는 현재까지의 보스턴을 있게 한 1,600명의 시대의 선구자들이 묻혀있다. 존 핸콕, 사무엘 애덤스, 로버트 T. 페인 3명의 독립선언서 서명자를 비롯해서 주지사, 보스턴 초대 시장, 보스턴의 열렬한 애국지사 폴 리비어, 그리고 그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묘가 있다.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올드사우스 공회당은 보스톤 시민들이 1795년 7월 4일, 정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지어진 새로운 주청사 건물을 보러 가기 전 이곳에서 축하 예배를 드리고, 이별 의식을 치르면서 앞으로 다가 올 보스턴의 새 시대를 꿈꾼 곳이다. 공회당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곳이 식민시절 시민운동의 본거지 역할을 하면서 보스톤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시민들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 차 사건의 결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보스톤 차사건(Boston Tea Party)은 영국 식민시대, 영국정부의 부당한 세금에 저항하기 위해 보스톤 시민들과 인근지역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배를 습격하여 9,000파운드의 값에 달하는 차 114상자를 항구에 쏟아 부어 버린 저항운동이다.

 

맥주이름으로도 유명한 사뮤엘 아담스, 미국 독립전쟁 영웅 폴 리비어, 지금은 마켓이 된 페뉴일홀, 이태리계 이민자들이 최초로 정착한 North end의 이태리거리, 올드노스교회 등. 보스톤 중심가의 프리덤 트레일.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곳곳의 유적지들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보스톤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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