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개혁(5) 예외적 의사결정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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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학교 교수

 

-몇 차례 정권교체 거치면서 공영방송이 점점 더 극심한 정치 대리전 공간으로 변질

-특별다수제, 2/3 이상 동의 얻지 못하면 사장 선출이 지연되고 아예 선출 못할 수도

-여당, 이사진에서 내부 구성원 절반 이상, 시민단체 추천 등 유리한 장치 도입 시도

 

 

2) 예외적 의사결정구조의 환상

 

‘특별 다수제’ 같은 예외적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환상이다. 이는 집권 여당이 내정했거나 정권친화적 인사가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현 집권 여당이 야당시절 강하게 요구해왔던 것이다.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 KBS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는 법적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혹은 암묵적으로) 여·야 추천(실질적으로는 비공식적 추천) 인사들을 안배해 구성한 것이다.

 

여·야 안배 형태의 이사회는 정치 지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공영방송을 정쟁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몇 차례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점점 더 극심한 정치 대리전 공간으로 변질되어 왔다. 더구나 여·야간 분배 비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방송장악 혹은 방송통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야간 이사구성에서의 불균형(KBS 7:4, MBC 6:3)으로 인해 과반수 참여와 동의로 결정되는 사장 추천 같은 중요한 결정사안에 있어 정부·여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러다 보니 여·야 구성비를 변경시킬 수 없다면 야당 입장에서는 특별다수제 같은 제도를 통해 견제 혹은 통제력을 강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여당의 반대로 입법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

 

공영방송 사장 임명 특별다수제는 일본 NHK 사장 선출 방식에서 차용해온 것이다. 제도 자체로만 보면, 여·야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인사를 사장으로 선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특별 다수제’는 장점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국회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특별다수제’는 각 정파가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에 반하는 것으로 공영방송 사장 선출이 헌법 개헌이나 위헌 판단, 대통령 탄핵만큼 중대한 사안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2/3 이상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사장 선출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고 여·야간 갈등이 심할 경우 선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NHK의 특별다수제가 크게 논란되지 않는 이유는 NHK이사 전원을 총무성에서 추천하고 수상이 임명하기 때문에 이사회 내의 정파간 갈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피·아 구분이 명확한 한국의 정치문화를 감안하면 ‘특별 다수제’를 통해 사장으로 선출될 수 있는 인물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할 수 있거나 아니면 무색무취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해서 선출할 수 있는 인사를 발굴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여·야 갈등으로 사장을 선출하지 못할 경우에 정치적 합의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특별다수제가 공영방송 이사회를 더욱 정치지형화시키는 셈이다.

 

•대통령이 사회 모든 영역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전문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실제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주요 후보자들의 캠프에 수백~수천의 교수·전문가·전직공무원과 언론인들이 이런저런 직함으로 참여하고, 집권에 그들을 위주로 주요 공직을 배분하는 구조에서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인물은 자칫 무능한 인사일 가능성도 높다.

 

또 합의를 통해 선출된 인물은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아니라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을 무색무취한 인사일 가능성도 높다. 결국 특별다수제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공영방송 내 정쟁을 도리어 심화시키고 경영공백의 폐해만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여야가 합의하여 만든 ‘국회선진화법’과 유사한 병폐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여·야 합의를 도출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입법을 추진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여·야간 갈등으로 제대로 입법행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특별 다수제’는 취지와 달리 공영방송을 더욱 정치화시키고 경영공백 만 커질 가능성이 높고, 전문성이 부족한 인물이 추천될 경우 조직논리와 종사자 이익에 매몰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방송법 개정(안)들 대부분이 특별다수제를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다수제에 여·야의 속내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야당은 공·수가 바뀌면서 180° 태도가 돌변해 2/3 특별다수제를 찬성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물론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법안 내용을 살펴 보면 특별다수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야당은 이사 숫자를 늘려 특별다수 즉, 여당 추천 이사 숫자가 2/3가 못 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허은아의원 안). 심지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추천에서 여·야 비율을 7:6으로 하자는 (안)도 있다.

 

반면 여당 의원(안)들은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대신 이사 구성을 ‘1/2 이상 내부구성원, 시민단체 추천(정청래의원 안)’ ‘방송통신위원회 이사추천위원회 구성(정필모 안)’ 같은 사실상 이사 구성에 있어 여당에게 절대 유리한 장치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마도 여당 입장에서는 야당 시절 제안했던 특별다수제를 정권을 잡았다고 없던 일로 할 수 없으니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 것 같다.

 

결국 여·야 모두 공영방송 사장 임명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정파적 이익만 고려된 것이지 국민 입장에서는 어떤 실익도 없다. 지금 국회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특별다수제’는 각 정파가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한 것이다.

 

<연재 리스트>

(1) 아전인수 또는 치매증후군 (2) 정치 예속화와 거버넌스 개혁
(3) 공영방송 후견체제와 이사회 (4) 거버넌스 개혁 논의의 기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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