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의 키네킥 픽토그램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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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

 

-‘세계인의 축제’ 행사가 팬데믹의 우울한 현실 비춰주는 장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

-개막식의 예술적 태도 집적되어 돋보였던 순서가 바로 키네틱 픽토그램 퍼포먼스

-스펙터클 과감히 포기. 창의적인 도안과 키네틱 퍼포먼스를 미니멀리즘으로 표현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키네킥 픽토그램 퍼포먼스가 유독 눈에 띄었다.

 

중국발 우한 폐렴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 우여곡절과 우려가 많았던 올림픽인 만큼 나는 텅 빈 관중석과 호응없이 나부끼는 스펙터클의 개막식을 우려했었다. 세계인의 축제여야 할 행사가 오히려 팬데믹의 우울한 현실을 비춰주는 장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개막식을 봤을뿐 난 아직 이 행사를 누가 어떤 의도로 기획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국제행사로서 올림픽 개막식이 과시하는 스펙터클에 대한 욕망과 인습을 역발상으로 무너뜨린 첫번째 행사로 기억될 것  같다.

 

그들이 택한 미학적 접근은 일본의 동네와 골목, 어시장 등에서의 복식과 그 태도가 가진, 마쯔리의 미니멀리즘을 충실하게 담아내는 기획이었던 것 같다. 판타지와 스펙터클은 과감히 버리고 성심과 마음을 담는 일본 미니멀리즘의 축제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개막식에 대한 예술적 태도가 가장 집적되어 돋보였던 순서는 바로 키네틱 픽토그램 퍼포먼스였다. 자국의 언어인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해외의 선수들과 관객들을 위해 창작된 픽토그램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처음 도입되었다. 현재의 화장실 마크도 당시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표준이 되어 보급된 것이라 한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외부 세계로의 소통과 기호화의 성과도 놀랍지만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추상화 차원의 노력과 탁월한 창작력은 더욱 돋보인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픽토그램은 키네틱 퍼포먼스라는 시간성의 이벤트로 새롭게 부여되면서 기술적 디바이스의 진화에 맞게 혁신된 모델로 새롭게 창작되어 계승되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경이로웠다.

 

회화의 기원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빛그림(-graphy)의 역사 이전에 그림자(-gram)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 사랑하는 연인의 촛불에 비친 실루엣을 숯으로 벽에 모사해 그려낸 행위에서 오늘날의 회화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개막식의 예술적 태도가 가장 집적되어 돋보였던 순서는 바로 키네틱 픽토그램 퍼포먼스였다.

 

촛불에 비추이는 환영이 출렁일수록 연인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연인은 마치 벽에서 환생해 나오는 듯했다.

실루엣 그리기(Silhouettograph)는 사진 매체의 발명으로 한 쪽으로는 ‘Photo-graphy’라는 빛그림의 나르키소스의 물에 비친 수면의 모방으로 진화했다. 실루엣의 그림자 베끼기 역사는 ‘Photo-gram’으로 전개되어 갔다.

 

회화의 역사에서 이러한 사물의 실루엣 베끼기와 문법으로 구성된 올림픽 50개 종목의 픽토그램도 그렇지만 스펙터클은 과감히 포기한채 탁월하고 창의적인 도안과 키네틱 퍼포먼스는 그 핵심만 미니멀리즘으로 담아 표현하고자 한 도쿄 올림픽 개막식의 태도를 가장 미학적으로 함축해 낸 예술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후지산을 연상하게 하는 성화봉송대도 판타지나 스펙터클보다도 휴먼 스케일과 눈높이를 낮춘 인간 레벨의 탈 권위를 제대로 보여줬고 마지막 성화 점화를 한 사람으로 오사카 나오미를 등장한 장면에서는 나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대단한 수준이자 메시지라 나는 생각했다.

 

이번 도쿄 올림픽 엠블럼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에도 시대 일본인들이 “이치마츠 모요”라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받아 들였던 체크 무늬는 일본 전통의 남색으로 재탄생되었고 매우 세련되고 우아하게 잘 나온 것 같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앞서 말한 바로 그 일본의 미니멀리즘으로 다양한 나라와 문화, 사고방식의 연결고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데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올림픽 엠블럼이 상징하고 동시에 오사카 나오미가 도발적이지만 부드럽게 메시징한 그것을 통해 깨달은 메시지 너머의 의미들이었다.

 

바로 전통적인 일본적 정체성의 해체와 재구성이 단일한 인종적 동질성의 지배 관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단일 인종 사회에 대한 이념적 허상을 깨뜨리는 시그널이자 이를 통해 세계 속의 일본이 다인종 사회와 다문화 사회로 적극 도약할 것을 매우 미니멀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상징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개막식을 지켜보는 이들 모두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며 그들의 픽토그램 퍼포먼스에 집중했을 것이다. 퍼포머가 작은 실수를 하거나 할 것 같으면 같이 가슴 졸이고 떨려하기도 했다. 일본은 1964년에 그러했듯이 올림픽을 통해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제안한 것이다.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그들이 선포한 것은 새로운 일본의 정체성과 그 내용이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으로의 연결이자 그러한 국제적 차원의 새로운 일본의 정체성의 제안과 확장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코로나로 지친 세계인들에게 위트와 웃음을 주고 바로 일본인 당신들의 독특하고 탁월한 그 방식과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비전으로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개막식을 만들어낸 일본인들께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경이와 존경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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