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치른 전쟁 중 유일한 산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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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형

 

-국군 6사단, 김화군 어은산 일대 넘나들며 한반도의 전쟁 가운데 유일무이한 산악전

-고지 이동하면서 매복한 중공군과 총격전, 전략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육박전 전개

-등짐을 지고 오르다 땅바닥에 걸터앉은 병사의 철모에 새겨진 마크가 호국의 푸른별

 

 

사진은 1953년 6월 28일 강원도 김화(금화)군 금화 교암산에 주둔 중인 국군 제6사단 7연대원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1951년 10월 백암산-금성천 전투를 통해 확보한 김화군 금성천 돌출부에서 10km 이상 후방에 위치한 교암산 일대까지 점령한 뒤, 거의 1년 6개월여에 걸쳐 사단사령부가 금성천 이남 주파리 인근에 주둔하며 금성천을 중심으로 한 김화군 일대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주로 7연대가 전초를 맡고 2연대와 19연대가 번갈아 예비대로 있으면서 6사단은 동쪽으로 북한강 건너(지금의 평화의 댐 상류 약 8km 지점) 어은산과 949고지 일대까지 넘나들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운데 유일무이한 산악전을 치른다.

 

해당 지역은 금성천변을 제외하고는 고지 감제가 사실상 무의미한 지역이라 전투 자체가 펀치볼전투와 백마고지전투, 중서부 전선의 후크고지전투 같은 고지전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 전투에 참가했던 선친의 증언에 따르면 수시로 고지를 이동하면서 매복한 중공군과 총격전을 벌이거나 목표한 지점을 점령함으로써 전략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육박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그만큼 금성천 돌출부를 둘러싼 전투는 1951년 10월 7연대의 금성천 진출과 교암산 점령 이후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중공군의 금성천 돌출부 확보와 화천 일대 수복을 위한 대대적인 공세 속에 치러진 금성전투까지 1000미터가 넘나드는 험준한 산악을 오르내리면서 벌인 산악전이었던 것이다.

 

6사단의 949고지전투 승전은 그 동쪽 양구 해안면 일대에서 벌어진 고지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 펀치볼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으나, 6사단이 점령한 김화-금성천 지구 서쪽 오성산을 1951년 7월 이후 유엔군과 국군 9사단 등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점령에 실패함으로써 1953년 7월, 중공군의 기습 공세 속에 교암산에 주둔 중이던 6사단 7연대는 크게 패하며 금성천 남단으로 후퇴하게 된다.

 

이후 예비대로 있던 2연대 등이 다시 돌파를 시도하여 금성천을 건너는 데 성공하지만, 그 돌출부의 극히 일부만 군사분계선 남쪽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60미리와 81미리 박격포가 보이고, 적재되어 있는 포탄과 반합 등이 보인다. 고지로 오르는 병사의 앳된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나고 더벅머리 머리칼이 변변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등짐을 지고 오르다 잠시 땅바닥에 걸터앉은 병사의 철모를 자세히 보시라. 병사의 철모에 새겨진 마크가 바로 호국의 푸른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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