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건국전쟁’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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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식

 

-근대 국민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 등. 근대 이전에는 이들 요소 불명확 

-자유 찾아 월남한 분들이 대한민국 국민. 자영농 형성하고 유교적 신분질서 극복

-전세계가 경악하고 따라 배우려 하는 ‘대한민국의 번영’ 만든 사건이 바로 6.25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국가란 근대 국민국가를 말합니다.

 

근대 이전 국가들은 저 3요소가 애매했습니다. 영토부터가 확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그때 변동이 심했고 국력의 신장과 쇠퇴에 따라서 가변적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국경을 접한 이웃 국가들과의 합의와 서면 계약에 의하지 않은 영토였기 때문에 서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국경과 영토였습니다.

 

근대국가 이전의 서양에서는 국가가 왕가와 귀족들의 소유였기 때문에 이들 간의 혼인이나 할양 등에 의해서 얼마든지 국경과 영토가 바뀔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땅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소속이 바뀔 수 있었습니다.

 

6.25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확정한 사건이었습니다. 38선으로 갈라져 있던 북한과의 경계를 휴전선으로 변경해서 유지되고 있죠. 사실상 외세에 의한 기계적인 선 긋기의 결과가 38선이었던 반면, 휴전선은 남과 북 양 체제가 총력으로 대결해 귀착된 경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38선과 휴전선의 위치가 엇비슷해서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6.25는 바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확정한 사건입니다.

 

국민이야말로 6.25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25 이전에 남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남북한 주민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곳에 있게 되었고, 그래서 북한 인민 또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입니다.

물론 6.25 이전에도북한 주민들의 월남은 간헐적으로 진행됐고, 그 반대 즉 남한 사람들의 월북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남과 북의 체제 대결이 6.25 이전부터 진행중이었다는 얘기입니다.

 

38선 일대에서의 소규모 국지전이 계속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갈등의 폭발적 진행이 바로 6.25로 나타난 것이구요. 6.25는 분명 북한의 남침이었고, 대한민국이 그걸 저지해낸 전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갈등이 6.25 이전부터 내연하고 있었다는 걸 부인하는 건 한마디로 역사를 그냥 자기 이념의 틀에 억지로 꾸겨넣겠다는 주장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번영, 전세계가 따라 배우려고 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건이 바로 6.25입니다.

 

6.25는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남북 주민의 이동을 완전히 확정한 사건이었습니다.

 

원래 근대국가는 자연발생적으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신민이 되어야 했던 근대 이전의 백성들과 달리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국적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리고 그 표현이 바로 국민주권입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국민주권을 통해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봉 왕조의 신민에서 프랑스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시민이 되었다는 어마어마한 자긍심과 에너지의 폭발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 내부에서 극심하게 진행됐던 종교전쟁 그리고 신대륙으로의 이주 등도 모두 유럽인들이 더 이상 특정 왕가의 신민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서 자신의 국적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사건이고 근대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특히 한.중.일 3국의 경우에는 근대화가 해외에서 이식된데다 근대국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자생적이고 문화적 혈통적 측면에서의 국민국가 비슷한 형태가 만들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자신의 소속 국가를 선택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방과 6.25 이전까지는요. 하지만, 6.25는 이념 대결의 폭발을 통해서 한반도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어쩌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너의 이념을 선택하라. 그래서 그 이념을 실현한 체제의 국민으로 거듭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6.25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북한 주민이 월남한 것이 그 결과입니다. 특히 흥남 철수는 이 세상 어떤 소설가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드라마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태어나는 산통이었던 것입니다.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 분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념을 쫓아 북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북조선의 인민이 되었습니다. 저 월남민들은 휴전 이후 삼팔따라지라는 차별과 비아냥을 견뎌내며 이 나라의 근대화와 산업화, 경제개발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국민의 탄생(birth of nation)의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대지주의 몰락과 소작농의 소멸 그리고 자영농의 등장이었습니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근대적 토지 소유의 기초를 닦았지만 여전히 대지주-소작농 구조를 유지했습니다. 아마 일제가 계속됐다면 한반도의 산업화는 이들 대지주들의 산업자본화 현상을 통해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해방된 한반도는 토지 소유의 극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방식으로 대지주 계급의 소멸과 자영농의 생성을 추구했습니다. 연평균 소출의 150%를 5년간 분할 상환한다는 조건도 대지주 계급에게는 불리했지만, 결정적인 것이 바로 6.25였습니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는 다른 지방에 비해 대지주-소작농 갈등이 심각한 구조였습니다. 다른 지방에 비해 대지주의 수는 적고, 대지주의 농지는 거대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6.25 와중에 극심한 좌우대립과 상호학살이 호남 지방에서 전개됐습니다.

 

비록 비극적인 전개 과정을 거쳤지만, 6.25는 대한민국 내부에서 대지주 계급의 소멸과 자영농의 생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과업을 단기간 내에 완성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식인은 “일제시대와 6.25는 비극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북한 주민의 대거 남하, 자영농의 출현 외에 또 하나 국민의 탄생이라고 부를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농촌 지역에 끈질기게 남아있던 양반-상놈의 계급구조 즉 반상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이 반상 구조는 일제시대부터 법적인 측면에서 정리됐지만 실제로 각 지방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대지주-소작농이라는 계급구조가 그 이전 이씨조선 시대의 반상구조와 중첩되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반상의 질서가 비록 문화적 관행적 무의식적 차원에서라도 남아있을 경우 진정한 의미의 국민(nation)의 탄생은 불가능합니다. 근대국가의 국민은 상하 신분질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대등한 계약관계에 의해서만 상호 규율되기 때문입니다.

 

6.25는 이런 구시대적 신분 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습니다. 피난을 떠나고,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고, 새로운 피난민이 들어오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오랜 세월 유지돼왔던 유교적 반상의 질서는 더이상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근대국가의 탄생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국민의 탄생이라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6.25 전쟁의 결과인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래서 6.25의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눈부신 번영, 전세계가 경악하고 따라 배우려고 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건이 바로 6.25인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건이 6.25인데, 6.25를 건국전쟁 말고 뭐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건국전쟁’이라는 명칭이 북한의 남침을 부정한다구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창피한 줄도 모르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25는 북한의 남침을 방어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을 확정지은 사건입니다. 그것이 건국입니다. 1948년의 정부 수립은 건국의 선포라는 측면이 강했고, 사실상의 건국은 6.25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모든 건국은 과거 체제의 부정이자 새로운 체제의 탄생이고, 그래서 반드시 전쟁을 수반합니다. 새로운 헌정질서는 과거의 질서와 필연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설혹 유혈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전쟁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 주민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나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건국을 선언한 이후에 헌정질서가 적용되는 영토를 확정하고, 그 헌정질서에 충성하는 국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게 바로 6.25 전쟁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은 아직도 미완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쟁입니다. 6.25가 여전히 정전상태라는 것이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을 반드시 완수해야 합니다. 그냥 분단 상태로 살자구요? 그럴싸한 논리처럼 들리지만 절대 실현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분단 상태는 원래 하나의 겨레, 동포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주어진 숙제와 같습니다. 한반도 주민들은 근대국가 등장 이전부터 하나의 국민국가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근대화라는 역사적 과제 앞에서 결국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여전히 그 과제의 최종 해결을 위해서 대립하고 경쟁하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그 폭발이 6.25였지만 결말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여전히 미완이고,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그 전쟁은 잠복하고 있을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모든 우파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비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던 이유가 뭘까요? 거듭되는 우연은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이 우연의 모습을 가장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여전히 미완성이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6.25를 건국전쟁이라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쟁이라고 봅니다.

 

제헌헌법은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 헌법도 6.25를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정질서 즉 주권도 6.25를 통해서 제 모습을 찾은 것입니다.

 

해야 할 말이 더 많은데 이만 줄입니다. 공부도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반드시 제 의견이 일반화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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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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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현동2021.7.28 PM 15:13

    대단한 명문으로 다른 역사,사회l학자의 글을 압도합니다.금후 촌철활인의 글 부탁드립니다.

    1. 주동식2021.7.29 PM 12:14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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