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진중권 말을 너무 잘들어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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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진중권의 생각은 김종인, 이준석 등 국힘당의 주류로 부상한 보수개혁파의 생각과 흡사

-극우 반공주의? 백색테러도 하지 않고, 군 지휘관도 아니고, 가혹행위 담당자도 아닌데

-보수의 성과는 품격 따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 안목과 추진력 등에서 온 것

 

 

우연히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를 읽었습니다. 사실 진중권 저작은 이게 처음입니다. 혹시 읽는다면 미학 담론서 한권 정도는 읽으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평소 별로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온, 정치담론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뭐 좀 참고하려고 들춰보다가 다 읽게 되었습니다.

 

진중권 글과 책은 뭐랄까 경쾌하고 명쾌합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무릎을 치게하는 문구들도 좀 있습니다. 공들여 쓴 책이니만큼 취할 말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주된 논지는 영 아닙니다.

 

진중권이 문정권과 화석 진보/586의 위선, 거짓을 화려한 검무로 찌르고 베는 모습에 감탄하고 응원해 왔습니다. 저와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일치한다고 생각하기에 동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글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집약된 생각이 스스로 보수를 잘 모르는 관찰자라는 진중권의 생각일 뿐이라면 긴 비판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진중권의 생각이 김종인, 이준석 등 지금 국힘당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자칭 보수개혁파의 생각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그나저나 진중권도 강조하는 내재적 접근법을 왜 보수나 극우-반공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진중권은 반공(공안) 폭력과 시장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합니다.

 

알라딘 서점에 보니 책의 주요 내용을 두어 페이지로 요약해 두었습니다. 진중권이 말하는 보수의 치명적인 결점/약점은 이겁니다.

 

“한국 보수는 그동안 ‘극우 반공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의존하며,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종북좌파’나 ‘사회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왔다. 대중은 오랫동안 그 선동에 세뇌돼 왔다…결국 공포 마케팅이 보수 개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연성과 정책적 상상력까지 박탈해 버린 것이다.”(31쪽)

 

1장1절의 제목이 ‘공포와 습관의 정치’입니다. 첫번째 단락 제목이 ‘원숭이와 물벼락’입니다. 높은 장대에 바나나를 메달아 놓고, 원숭이들이 따 먹으러 올라갔을 때 물벼락을 몇번 퍼부우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즉 공포가 습관이 되어 원숭이떼 전체가 올라가지 않는답니다. 더 이상 물벼락을 퍼붓지 않아도 그렇답니다.

 

진중권은 극우 반공주의를 원숭이들의 트라우마에 비유합니다. 물론 어떤 사회나 그런 트라우마 내지 공포와 습관이 있습니다. 혹독하게 당한 집단적 경험이 있거나, 실제론 극히 일부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기억의 편집(사실 이게 역사입니다)에 의해 공동체(국가나 민족이나 지역) 전체의 트라우마가 됩니다.

 

그런데 진중권 같은 탈진보 논객은 말할 것도 없고, 문정권/진보/586 역시 원숭이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극우 반공주의 세력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진중권은 반공(공안) 폭력과 시장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합니다. 당연히 대다수 원숭이처럼 자신이 당해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책이나 담론으로 내면화 했을 겁니다.

 

진중권은 (그 뿌리가 조선유교체제에 이르는) 국가주의 시장경제와 지대추구가 만연한 노동시장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규제 완화/합리화를 요구하거나 과도한 노동권 개혁을 요구하면 이를 자유지상주의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경제민주화나 노동인권 보호, 불평등 양극화 해소, 공정 등 그럴듯한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제반 규제/처벌/보호 입법에 대해 찬성할 것입니다. 이는 책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중권이 극혐하는 극우 반공주의자들도 (오래 전의 경험과 인상을 바뀐 현실과 대조하여 해체 재구성하지 않은) 진중권의 근거없는 공포와 습관이 만든 망상입니다.

 

물론 해방공간이나 북한의 적화통일 공작이 끊이지 않던 시절의 현실인식을 빼박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문정권의 (동서고금의 수천년 역사가 정련, 검증한) 외교안보의 기본 상식과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보를 하는 문정권에 대한 이유있는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 북의 핵개발 포기를 끌어낼 수도 있다는 그럴듯한 비전(물론 박살이 났습니다)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문정권의 외교안보대북 정책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외교안보 행보에 대한 극단적인 불안, 공포, 간첩, 매국 시비는 과민 반응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문재인 정권의 행보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결코 과민 반응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중권이 극혐하는 태극기 성조기 들고 시위하는 극우 반공주의자들은 이제 백색테러를 일삼는 우익 청년단의 멤버도 아니요, 군의 지휘관도 아니요, 공안기관의 수장이나 가혹행위 담당자도 아닙니다.

 

이들이 부르짖는 것은 4.3과 여순반란 사건에 대한 지난 70년 동안 유지된 해석을 뒤집지 말라는 것, 극보법 폐지 반대, 국정원 정상화, 북한정보원 설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공조 등입니다. 과거처럼 자유화 민주화 노동인권 민중생존권 옹호 운동에 대해 좌빨타령하면서 마구 잡아들이고 수틀리면 고문도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정치, 행정, 경제, 사회의 주류에서 한참 밀려난 극우 반공주의자들과 있지도 않은 자유지상주의들은 문정권과 화석 진보/586들과 달리 외교안보, 경제고용의 기본 상식과 원칙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복지에 좀 인색하고, 기업과 재벌의 부당 행위에 너무 관대하다는 것 등을 빼면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문정권의 역주행과 퇴행으로 인해 그 단점이라는 것조차도 지독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길항력입니다.

 

이들은 보수 자유 우파를 파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간/권력자의 지적, 윤리적 불완전성을 절감하고 있기에 권력분립,법치주의, 사법권 독립, 언론자유, 경제성장, 건전재정, 실용주의 등에 친화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와 현실을 선악, 정상, 정의-불의 프레임으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간첩/주사파/사회주의/적화(연방제)통일 운운하는 사람들은, 저 역시 이 분들의 단순무식과 과도한 공포 증오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 결코 위험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을 뒤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이야말로 시장 폭력과 구 공안기관(논리)의 공안폭력에 대한 공포와 습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혹은 극우든 극좌든 그 사고방식에 대한 실사구시는 필요한 듯 합니다.

 

정치담론과 경제고용에 대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진중권의 책에 대해 길게(과거에 비해서는 엄청 짧게 썼습니다만) 비판한 이유는 이 생각이 김종인, 이준석 등의 생각과 95%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 내지 정치노선의 핵심은 이겁니다.

 

“보수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합리적 보수가 극우로부터 지지층을 빼앗아 그들을 보수진영에서 주변화해야 한다.”(85~86쪽)

 

보수의 합리적 핵심(철학, 가치, 제도, 정책, 비전, 행태 등)을 살리고, 어필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주변화된 보수 일부의 허물을 줄이거나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극우와 거리두기, 때리기를 통해 중도외연확장을 도모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진중권은 문정권/진보/586의 역주행과 퇴행이 극심하기에 더 빛나는 보수의 합리적 핵심을 잘 모릅니다. 그는 보수를 ‘태도’로 보는 것 같습니다. 급진이 아니라 온건, 전통적 질서 존중, 품격, 도덕성, 먹고사는 문제(경제발전) 중시 등.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적인 아버지상’이다…보수는 ‘태도’의 이름이다.” (144쪽)

 

보수의 정체성을 이렇게 규정하면 주로 품격(막말 혐오)과 온건(거리광장 투쟁 혐오)과 흠집내기 너무나 쉬운 도덕성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찾고, 민주, 진보, 노동, 평화 팔이들의 철학, 가치를 추종하여 중도 외연확장을 도모하려 합니다. 보수의 비조와 중흥조인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의 성과는 귀족적 덕목(품격 등)과 부성과 도덕성 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 정세(시대)를 읽는 안목과 방향 감각, 실용주의, 용기, 결단, 추진력 등에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태도의 이름이다”는 문장 아래에 쓴 말은 보수나 진보나 중도를 초월하여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원칙입니다. 보수의 태도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가치에 관해서는 ‘고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태도. 그러나 정책에 관해서는 ‘인간 본성의 영원한 요구’를 그때그때 시대적 정신과 사회적 과제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시키는 태도.”

 

문제는 시대, 현실, 모순부조리에 적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 말이 성립합니다. 시대에 적중하려면 문제의 실체와 구조와 역사현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진중권도 김종인도 문정권/진보/586도 바로 여기서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대선 후보들 대부분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그 구조와 원인이 무엇인지,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 해결의 킹핀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너무 일천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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