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개혁(4) 거버넌스 개혁 논의의 기만성

<<광고>>



¶ 황근 선문대학교 교수

 

-사회대표성, 예외적 의사결정구조, 다수에 의한 민주성, 구성주의 등 다양한 환상 혼재

-‘BBC트러스트’ 구성의 다양성은 관행·공존의 정치문화가 성숙된 영국에서 가능한 제도

-승자독식 구조 정치문화. 다원주의 기반 선진국 제도 도입은 더 큰 부작용 야기할 수도

 

 

4.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 논의의 기만성

 

한국사회 – 특히 정치권 – 에서 인식하고 있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념은 크게 왜곡되어 있다. 공영방송을 정치적 도구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이익을 거버넌스로 포장하고 있는 것 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이사회 구성에서 자기 정파의 비율을 늘리려는 숫자싸움을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용어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양두구육(羊頭狗肉)’ 정쟁에서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비현실적인 논리와 어불성설로 각 정파의 이익을 합리화하려는 말싸움만 지속될 뿐이다. 공영방송 구조 개편 논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가 제기된 대안들이 매우 비현실적이면서 실제로는 기만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주장들이 도덕적 정의감으로 포장되어 있어 비현실적이고 한국사회가 가진 정치문화나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여기에 각 정파의 정치적 이해득실까지 개입되면서 공영방송 거버넌스 논의는 환상과 기만이 복합된 왜곡된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선진국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체제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정치문화가 사회적 다원성을 보장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회대표성의 환상’ ‘예외적 의사결정구조의 환상’ ‘다수에 의한 민주성 환상’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환상’이 있다. 이는 10년 넘게 이어져 온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별 성과 없이 제자리를 맴돌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상’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환상으로 포장된 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환상은 겉으로는 합리적 명분과 정당성을 가진 주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자신들의 이익이나 기득권을 지키거나 극대화시키려는 목적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1) 사회 대표성의 환상

오래전부터 각종 시민단체나 학계에서는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구성에서 사회 대표성 혹은 지역 대표성을 강화해야한다고 요구해왔다. 실제로 독일의 공영방송 이사회(‘주 미디어청’ 혹은 ‘방송위원회’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다양한 조직이나 단체들을 법으로 지정해 추천하고 있다.

 

•2017년 부임했던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전)위원장은 지금처럼 정파 간에 이사를 나누어 추천하는 방식은 공영방송을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정파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시민단체들은 공영방송 이사숫자를 대폭 늘려 정치권의 지분을 줄이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추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고 지금도 그 주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마치 독일의 ‘방송위원회’처럼 정치·경제·사회·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추천하자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영국의 ‘BBC트러스트’ 모델을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BBC트러스트’는 집권당이 임명하는 12명의 위원으로 임명되는데, 사회 각계 대표, 지역대표 등을 고려하는 다양성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다원주의(pluralism) 정치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영역별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를 추천하거나 단체나 조직을 지정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BBC트러스트’ 구성의 다양성은 관행과 공존의 정치문화가 성숙된 영국에서 가능한 제도로서 우리처럼 후진적 정치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도리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정치적 성향이나 전문영역을 담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권교체가 자주 일어나는 의원내각제 특성상 특정 정파가 모든 자리를 독식하기 힘든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위원들의 임기를 보장해주고 후임자 선출 시 전문 영역이나 정치적 성향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BBC트러스트’ 모델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영국과 우리나라의 정치문화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주장이다. 집권 여당이 정부 혹은 정부 산하 기관들의 모든 자리를 독식할 수 있는 제왕적 정치구도에서 다양한 영역의 인사들을 추천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정권친화적인 인물들로 모두 채워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사회 대표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각 정파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각계 인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외형만 사회대표성이지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파적으로 양분되는 것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영방송 이사회는 집권 여당의 정치적 전리품으로 일종의 명사집단으로 전락하거나 혹은 철저한 방송통제의 대리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현실적으로 국민 대표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국회 혹은 정당밖에 없다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영역별로 다양한 인사들을 추천한다하더라도 결국은 정당추천 형식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다. 이 또한 정치권이 주도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방송법 개정(안)들 중에 정필모 의원(안)은 이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사회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100명의 ‘이사추천 국민위원회’를 3년 임기의 상설기구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우선 KBS와 MBC 같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기능만 하는 상설기구로 100명이라는 숫자와 3년의 임기는 그 역할에 비해 매우 과도한 측면이 있다. 정책목표나 대상에 비해 정책수단이 지나치게 큰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출된 100명의 위원 역시 ‘방송통신위원회’의 여·야 안배구조가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사후보추천 국민위원회’ 또한 표면적으로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이 배제될 수 없다. 반면 야당의 박성중 의원(안)이나 허은아 의원(안)처럼 국회 교섭단체가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법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방송통신위원회’가 여·야간 내면 합의된 비율에 따라 각 정당이 내천(內遷)한 인사들을 이사로 추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당이 직접 추천한다고 해도 현행 방식과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정파간 추천 숫자가 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집권여당이 악용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정당이 직접 추천하는 것은 시대추세에 맞지도 않고 정치예속화를 법으로 명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우리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체제가 우리에게 잘 부합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정치문화가 사회적 다원성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까지 비판받고 있는 승자독식 구조의 정치문화에서 다원주의(pluralism) 정치철학과 역사를 바탕으로 구축된 선진국들의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만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구성원 특히 정치권의 합리적 행태가 전제되지 않은 이상주의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논의 자체를 더 공허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연재 리스트>

(1) 아전인수 또는 치매증후군 (2) 정치 예속화와 거버넌스 개혁
(3) 공영방송 후견체제와 이사회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