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함브라 궁전은 불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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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작

 

-1492년 기독교 왕국 연합군이 그라나다의 이슬람 왕국 무함마드12세의 방어군 포위

-1492년 1월 2일, 알함브라 궁전 모든 출입문 열쇠 넘겨주고 항복하는 공식행사 열려

-이베리아 반도에서 781년 동안 유지되던 이슬함 지배의 종식 의미. 유혈사태 등 없어

 

 

알함브라 궁전은 불타지 않았다. 술탄 무함마드 12세는 항복했으나 후세에 보물을 남겨주었다.

 

1491년 겨울부터 1492년 정초까지 기독교 왕국 아라곤의 페르디난드(Ferdinand of Aragon)와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Queen Isabella of Castile)의 연합군은 그라나다의 이슬람 왕국 나스리드 술탄 무함마드 12세(Muhammad XII, Boabdil)의 방어군을 포위하였다. 

 

무함마드 12세는 주로 보아브딜 또는 엘 레이 치코(El Rey chico)라고 불린다. 전쟁의 승부가 명백하게 되었던 국면에서 보아브딜은 기독교 측과 비밀협상을 추진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비밀협상에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도 참석했다고 한다.

 

1492년 정초에 카스티야 군인들은 자정 무렵 보아드빌의 – 최소한 – 묵시적 동의를 받은 후 알함브라 궁전의 모든 전략적인 요지를 점령하였다.

 

이어서 산티아고 기독교 왕국의 깃발과 함께 성 산티아고 기사단 깃발이 동시에 알함브라 탑들 중 하나에 올려졌다.

 

역사를 담은 이 명화는 마드리드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스페인 상원 건물 팔라시오 델 세나도에 걸려 있다.

 

드디어 날이 밝아오는 1492년 1월 2일, 알함브라 궁전의 출입문 열쇠를 넘겨주고 항복하는 공식행사가 열렸다. 이렇게 하여, 기적적으로 알함브라 궁전은 파괴되지 않았고, 더 이상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이 항복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781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이슬함 지배의 종식(나스리드 왕국, the Nasrid kingdom of Granada 몰락)을 의미한다.

 

일명 레콩키스타(Reconquista , 재정복 또는 기독교 영토의 실지 회복운동)가 완성된 것이다. 이 이슬람 왕국의 패배와 기독교 세력의 승리를 확인하는 역사적 장면은 500년 이후에 그림으로 재현되었다. 프란시스코 프라디야 오티즈(Fransisco Pradilla y Ortiz, 1848-1921) 는 3.30×5.5m 크기의 그림 ‘그라나다의 항복'(La Rendición de Granada/The Surrender of Granada, 1882)을 그렸다.

 

역사적 대하드라마를 그림 한 폭에 담았던 것이다. 이 명화는 현재 마드리드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스페인 상원 건물 팔라시오 델 세나도(Palacio del Senado/Palace of the Senate)에 걸려 있다.

 

‘그라나다의 항복’ 그림 속에 실지 회복 전쟁에서 승리한 기독교 세력은 오른편에 그려져 있고, 왼편에는 항복한 무어 세력이 배치돼 있다. 우선 오른쪽은 승리를 암시해 준다. 뒷걸음치는 듯한 검은 말 위에 무함마드 12세가 올라 있다.

 

가운데에서 첫번째 오른 쪽 갈색의 말 위에 올라 타고 있는 인물이 페르디난드 왕이며, 바로 뒤에 승리를 이끌어낸 군 사령관 후안 폰세 데 레온(Rodrigo Ponce de Leon/Duke of Cadiz and Duke of Arcos)이 보인다. 이사벨라 여왕은 흰색의 말을 타고 정말 제왕적 자태로 앉아 있다.

 

멀리 알함브라 궁전이 온전한 상태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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