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은 ‘자기 불신’을 먹고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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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현

 

-시험 합격해야 다닐 수 있는 학원. 그 시험 위해 다른 학원 다니거나 과외하는 시스템

-부모가 불안해 하니까 아이도 불안 느끼게 돼. 학원은 그 불안을 잠재우는 강력한 수단

-학원이 공부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공부 자체가 되면 아이의 자기소외 시작될 가능성

 

 

친구가 헛돈 날릴 뻔한 얘기를 들려줬다. 강남의 사교육은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다닐 수 있는 학원이 있고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또 다른 학원을 다니거나 아니면 과외를 하는 시스템으로 알고 있는데,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였다.

 

친구 아이는 급하게 시험을 보게 됐는데(시험도 대기했다가 봐야 할 정도인 듯), 다른 엄마를 통해서 좀 싼 과외선생을 소개받았다고 했던가 그랬다. 아이가 평소 기본 실력이 있어서 친구는 굳이 과외를 받도록 해야 하나 반산반의 했지만, 그 시험에 맞게 가르친다고 해서 한 번 받기로 했다. 선생이 가고 나자 아이가 하나마나였다고 했다. 알고 보니 외국에서 유학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경험 없는 선생이었고, 친구는 이렇게저렇게 따져 돈을 돌려 받았다.

 

사실 소위 새끼 과외는 그 친구 이전에 10년 전 도곡동에서 아이를 키우던 친구에게서도 들었던 현상이다. 다른 엄마가 새끼 과외를 시키자고 제의했는데, 그 친구는 거절했다. 심지어 아이를 다른 강남 엄마처럼 학원에 많이 보내지도 않았다. 그 친구 본인이 학교 다닐 때 워낙에 고액 과외를 많이 받아서 그렇게 해봤자 소용 없다는 걸 너무나 절실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친구 아이는 작년에 의대에 진학했고, 둘째는 외고에 다니고 있다.

 

중학생인 아이를 둔 친구 얘기를 들으면, 아이가 대체 언제 공부를 할까 싶다. 밤 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면 학원 숙제만 끝내도 자정이 넘어간다. 학원 숙제와 학원을 다니는 것 자체가 공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학원을 위한 또 다른 학원을 다니는 것 같은 새끼 과외가 성행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학원을 다니는 것 자체를 공부로 여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교육 시스템 그런 구조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심리적 원인도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불안’이다. 처음엔 부모의 불안일 것이고, 부모가 불안해 하니까 자연히 아이 자신도 불안을 느끼게 된다. 학원은 그 불안을 잠재우는 강력한 수단이다.

 

혼자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학원을 다니는 것 자체를 공부로 여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가 혼자 문 닫고 방안에 있으면 공부를 하는지 딴 생각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학원에 보내 놓으면 그래도 일단 안심이 된다. 어쨌든 부모도 어떤 학원이 좋은지 알아보는 수고를 들이고 또 돈을 들이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 역시 학원에 의존하면서 자기 자신보다 학원을 믿게 된다. 이제는 아이가 먼저 어떤 학원에 더 다니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가 학원에 다녀야겠다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이제는 부담되도 어떻게든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이다. 친구가 헛돈 날릴 뻔 했던 그 유학파 젊은 새끼 과외 선생처럼 그 불안의 틈새는 새로운 형태로 끊임없이 사교육 시장을 확장시킨다.

 

나도 그랬다. 본인이 학교 다닐 때 고액 과외를 많이 받아서 그런 사교육의 부질없음을 잘 아는 친구와 함께 나도 과외를 꽤 많이 받았다. 처음엔 주요 과목만 받았는데, 과외를 받으면 받을수록 다른 과목도 받아야 할 것 같고, 받고 싶어졌다. 물론, 과외의 효과와는 상관 없는 현상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소개받아 엄마에게 다른 과목도 과외 받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는 내 눈에 보일 정도로 마지 못해서 지원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 학원은 대개 부모가, 특히 엄마가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느냐 아니냐 또는 친구처럼 사교육의 실체를 아느냐 아니냐와도 크게 관련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지나친 사교육 의존은 근본적으로 (사회구조의 문제 외에)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도 연관 깊다.

 

사교육으로 좋은 성적을 받는 과정을 통해 자기 신뢰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런 자신감은 모래성처럼 위태로운 상태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학원이 자기 공부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공부 자체가 될 정도가 되면 그땐 아이의 자기소외가 시작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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