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의 광기 속으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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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모

 

-인간의 정신은 지금도 예언. 다만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뿐. 그 예언은 예술의 형태

-성 안의 삶은 조커 이해 못하고, 조커를 이해한다면 성 밖에서 살아왔거나 경험했을 것

-서사 이해하면 그 서사가 가진 운명이나 교훈이나 신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돼

 

 

“You wouldn’t get it.”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영화 조커 마지막 장면인데, 아마 이 장면을 보면서 기분 나쁘셨던 분이 많을 겁니다(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 장면 쯤에서 기분이 나빴다면 영화를 하나도 이해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조커에 관련된 해석을 글로 정리하고 있는데, 메모만 14p 정도 됩니다. 글로 옮겨적는 중인데 작은 책 분량 정도가 될 것 같아요. 그중 메모 4p를 옮겼는데 벌써 14p가 넘어가고 있으니… 그런데 이 해석은 아마 조커를 가장 완벽하게 해석한 문서가 될 겁니다. 내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충격적일 거에요.

 

2019년에 나온 조커는 사실 이전에 나온 조커와 뚜렷한 연관성이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냥 그 캐릭터를 빌린 것이죠.

 

예언을 믿으시나요? 예언이 요한계시록에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인간의 정신은 지금도 예언을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예언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예언은 예술의 형태로 많이 만들어집니다.

 

영화 조커는 최근의 예언이자 신탁이고, 나는 그 예언을 해석하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의 요샛말이 평론가겠죠.

 

조커는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어렵고 강렬한 영화입니다. 정말 모든 컷에 가능한 모든 상징물을 다 처발라 놨습니다. 이건 기생충보다 훨씬 더합니다. 그래서 대중이 이해를 못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좀 보는 사람들 중에는 저처럼 0.5점을 내렸던 사람이 많고 오히려 영화 자체를 느꼈던 사람들은 5점을 준 사람이 많습니다. 그 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영화고,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말하듯 그 점을 예상합니다.

 

이 해석을 공개할지는 아직도 솔직히 고민이 많이 되는데, 아마 이 해석을 보면 여러분은 조커가 이런 영화라는 점에 한번 놀랄 것이고, 두번째로 내 광기에 아마 놀랄 것입니다.

 

조커는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어렵고 강렬한 영화입니다. 모든 컷에 가능한 모든 상징물을 다 처발라 놨습니다.

 

저는 조커를 처음봤을 때 체제변혁적인 영화라서 굉장히 불쾌하게 여겨졌는데… 지금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미친 수준이에요. 각본, 감독, 배우 다… 이건 평범한 광기가 아닙니다. 제가 조커를 이해하게 된 것도 조커 영화를 계속 보고 이런 게 아니고, 제 광기가 딜미터기를 폭발하면서 조커를 이해하게 된 거에요.

 

여러분이 조커를 이해 못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성 안의 삶이었을 확률이 높고, 여러분이 조커를 이해한다면 성 밖에서 살아왔거나 그 삶을 경험해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를 깊게 이해하려면 영화를 많이 봐야되는 게 아니고, 인문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와 부조리한 삶의 고통을 뚫고 지나가봐야 합니다.

 

오늘도 전날 저녁부터 글을 쓰다가 물 마시러 나가보니까 해가 뜬 걸 보고 놀랐는데… 이렇게 쓴 글은 정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평론이 될 거에요.

 

이 해석을 공개할 때도 볼 사람들을 배제하긴 해야되는데, 어느 수준에서 할지 계속 고민이 됩니다. 왜냐하면 조커를 보고 분노한 사람들은 그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 광기가 다시 잠들었는데, 이 해석을 보고 나면 흑화할 가능성이 좀 있어요. 조커가 하는 예언은 사회적인 예언인데 개인의 삶에서 실현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글을 좀 쓰고 나서 사람들이 쓴 평론이나 해석들을 찾아봤는데, 거의 다 틀렸습니다. 다만 이동진 평론가가 영상으로 한 평론은 걔중에서는 잘 해석한 편입니다. 하지만 조커를 개인의 관점으로만 해석했기에 부족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조커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할 정도로 조커를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요 며칠간은 그 광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미친듯이 분출해서 못움직이는 그런 경험 해본 적 있나요? 아마, 여러분은 이해 못하겠지… 아냐 그래도 그 정도면 훌륭한 해석이야. 내 해석의 한 20% 정도 될까.

 

영상을 다 못봐서 한 부분만 얘기하면 조커가 엄마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출구로 병원에 들어가려 하자 그것이 ‘존재감이 없어서’라고 해석하는데 그것은 조커를 캐릭터 적으로만 분석하면 맞습니다. 하지만 조커가 함의하는 수준은 그것을 훨씬 벗어납니다. 그 장면은 조커의 도덕관념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거에요. 갈 수 없는 길인데, 막힌 길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거꾸로 간다는 겁니다. 또 이름에 대한 해석도 좀 틀리고, 아니 틀리다기 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해석이 있는 거지.

 

히스레저가 조커 연기하고 자살했죠? 제가 그 마음 이해가 가요. 히스레저가 연기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연구한 것처럼, 제가 조커를 이해하기 위해서 해석하는 것도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호아킨은 멀쩡한 것 같던데 아마 이 사람도 정신치료를 많이 받았겠죠? 그 광기를 벗어나는 데 꽤 오래 걸렸을 거에요.

 

영화는 정말 종합예술장르입니다. 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 제 모든 삶과 지식이 다 동원됐어요. 정말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영화입니다. 어떤 영화는 운명인 것 같아. 내가 조커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제가 전에 서사를 이해하려면 그 서사가 갖고 있는 운명이 여러분의 삶에 펼쳐져야 한다고 했죠. 그러면 그 서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그러면 그 서사가 가진 운명이나 교훈이나 신탁을 여러분이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저에게는 성서가 그랬고, 대부가 그랬고, 친구가 그랬고, 지금은 조커가 그렇습니다.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정말 창의적이고 재능있는 사람의 인생은 걸레짝이나 다름없어요. 신이 그 사람의 인생을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까. 이 잔을 옮길 수만 있다면 젠장.

 

그리고 시편 23:5 였나? 거기 나오는 잔 얘기도 술을 부은 얘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노를 얘기하는 거지. 이거 신학자들이 다 멋대로 해석한 거야 ㅋㅋㅋㅋ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조커의 말대로 어떨 때는 더 이상해지게 합니다. 강해진다는 것은 이상해진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글 쓰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적은 처음인데, 지금도 조커의 광기 때문에 그만둘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듭니다.

 

조커는 정말 너무 광기야. 의도하고 만들었다고 쳐도 이 영화는 지금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이릅니다. 니체는 자신을 이해할 사람이 나오는 데 100년 정도 생각했는데. 뭐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받아들일 때까지는 다시 한참 더 걸리겠지.

 

만약 공개한다면, 그 글의 첫장을 다 읽기 전에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아니라면 여전히 이해를 못 할 거고. 답지 본다고 수학문제 다 푸는 건 아니니까. 지금도 머리가 지나치게 과열돼 있는데, 꿈에 조커 나올까봐 겁난다. 우리는 각시탈 만들어서 일정 때려잡는 꿈꾸고 있을 때, 얘네는 세상을 뒤엎을 상상을 하고 있었으니. 참 놀랍고 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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