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군’이라는 소련군의 찬란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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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도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소련 ‘해방군’은 전세계 수천만 명 학살한 피의 군대

-소련군 약탈보고서 “사병·장교 모두가 매일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 일삼고 비행 저질러”

-‘해방군’이라던 소련군 사령관 “우리에게 반발하면 조선사람 절반 교수형에 처하겠다”

 

 

대한광복회의 김원웅 회장이 “미군은 점령군이었고, 소련군은 해방군(освободительная армия)이었다”는 주장을 고등학교 강연에서 펼쳐 나라가 시끄럽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시 소련 해방군은 전세계에서 수천만 명을 학살한 피의 군대였다.

소련의 붉은 군대(Красная армия)는 한반도뿐 아니라 1948년 당시 유럽 전역에서도 “해방군”을 자칭해서 김원웅 회장이 제시한 ‘포고문’은 베를린과 파리에도 내걸렸던 내용이다. 그리고 그 해방군 포고문 뒤에 벌어진 끔찍한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실은 라트비아의 역사정치학자 에드빈스 슈노레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더 소비에트 스토리>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소련 “해방군”의 역사는 실로 끔찍하다.

•1932년 겨울, 소련 정부 정책에 반하던 우크라이나에 모든 물자 공급을 중단, 현지 식량도 몰수해 그 해 자그마치 700만 명이 아사.
•’아우슈비츠의 해방군’으로 자처하면서 2차대전 당시 러시아로 탈출한 유대인들을 체포해서 나치 독일에 넘겨준 사실.
•발트 지역 인구 수백만의 시베리아 강제 유형에서 벌어진 생체실험과 대량 학살.

특히, 소련이 나치의 유태인 정책을 그대로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에 적용해 수백만 인구를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강제이송한 부분은 해방 후 한민족에게 벌어질 소련의 시나리오였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는 발트 3국 강제수용소에서 독일 아우슈비츠, 일본 731부대와 같은 생체실험, 대량학살이 이뤄졌으며 남은 폐허에는 희생자의 유골과 신발이 널려 있다고 폭로한다. 아이의 신발까지도.

 

‘해방군’이라는 소련군은 독일 점령지역에서 여성들을 강간하고 아이들과 함께 학살했다. 1945년 1월 독일 Metgethen 지역.


소련에 의해 자행된 수십만 고려인의 강제 이주가 서쪽으로 이뤄졌다면, 발트 3국의 수백만 인구는 반대로 동쪽 시베리아로 이송되었다. 당시의 소련 해방군이 사방에서 나치 유태인 학살과 같은 민족 소멸정책을 실행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소련 해방군을 찬양하는 인식은 도대체 무지일까 선동일까 궁금할 뿐이다.


김원웅 회장은 강연내용이 논란으로 떠오르자 이날 광복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본인 명의 보도자료에서 “‘역사적 진실’을 말한 것 뿐”이라며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한국인을 무시한 맥아더를 비판해야지, 맥아더의 한국무시 사실을 밝힌 김 회장을 비난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해방 후 한반도에 진입한 미군과 소련군은 각각 포고령을 발표했는데, 소련군 치스차코프는 스스로 ‘해방군’임을 표방했지만, 미군 맥아더는 스스로 ‘점령군’임을 밝히고, 포고령 내용도 굉장히 고압적이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역시 철저한 기만과 왜곡인 것이 당시 무정부 상태였던 한반도의 혼란 상황과 위에서 확인된 소련 해방군의 역사를 철저히 묵살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자행된 소련 해방군의 전국적인 범죄는 소련 내부 문서로 확인된다.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작성한 13쪽짜리 ‘약탈 보고서’는 당시 해방군의 행태를 고발한다. 소련군의 범죄 상황을 가감 없이 전한 이 보고서는 연해주 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칼라시니코프 소련군 중장에게 보고됐고, 이듬해 1월 11일엔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위원인 스티코프 상장에게도 전달된 공식 문건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옛 소련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뒤 번역, 2010년에 공개했다.

 

페드로프 중좌는 보고서에 “우리 군인(소련군)의 비도덕적인 작태는 실로 끔찍한 수준이다. 사병·장교 할 것 없이 매일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을 일삼고 비행을 자행하는 것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

약탈과 겁탈이 만연했다는 이 보고서에 대한 소련군의 반응은 실로 가관이다. 김원웅 회장이 해방군으로 표현했다며 칭송한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북한에서 해방군 범죄에 반발한다면 “조선사람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극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보고서는 258 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가 “조선사람은 35년간 노예로 있었다. 좀 더 노예로 있게 하자”고 발언한 내용까지 기록하고 있다.

 

김원웅 회장이 무지한 것은 본인이 찬양하는 소련 해방군이 내걸었던 ‘포고문’이 라트비아나 유럽 전역에서 반복된 공산당 선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해방군의 포고문 이후에 유럽에서 벌어진 수백만 명의 살육은 김 회장에게 불편한 진실일수도 있겠다.

 

학살의 역사를 외면하고 이념 프로파간다에 열심인 인물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단체를 대표한다는 사실은 지금의 시대적 역설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나이 80이 가깝도록 세계사적 양식이 이렇게나 부족한 인물이 국회의원을 하고, 지금껏 국가의 원로로 고위직에 앉아있다는 사실은 국가적 망신이다. 수천만 명을 학살한 군대를 해방군이라며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이런 인물은 존재 자체로 사회의 위협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북조선 인민군의 대남 프로파간다 역시 ‘인민해방군’이었던 사실은 김원웅 회장의 인식과 크게 동떨어져보이지 않는다.

광복회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와 그 유가족들을 대표할 목적으로 1965년 2월 설립된 민간 단체다. 전국 12개 시도지부와 82개 지회에 속한 광복회의 회원 수는 6천여 명 수준이다. 광복회장은 대통령 자문 국가원로회의 위원으로 국가최고원로 대접을 받으며,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해 연금수령 여부를 결정하는 독립유공자 선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국가 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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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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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대환선생보시오2021.7.17 AM 00:43

    선생이 대학생 때 열심히 학생운동을 한 결과 결국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한민국이 등에 칼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소.
    선생은 비록 전향 비스무리하게 한 것 같으나, 똥팔육의 타락과 악행에 책임이 전혀 없다 할 수 없을 것이오.
    원래는 순수하고 정의롭고 민주로운 것이었는데 주사를 맞고 타락했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인간의 역사는 이미 그 타락과 악행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 기록해왔던 터라,
    그것을 잘 몰랐다고 해도 잘못이고 알면서도 그랬다고 해도 잘못인 것이오.
    전향을 진심으로 했는지는 선생의 양심의 자유겠소만,
    최소한 선생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심하는 바가 있다면
    똥팔육의 타락과 악행에 대해 더 신랄하고 통렬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오.
    무엇이 그 근원인지를 정확히 짚어내고 낱낱이 밝혀서 후대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오.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루어냈다는 식으로 퉁치지 말고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무슨 악행이 있었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참회해야 이 나라가 삽니다. 이 세상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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