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개혁(2) 정치 예속화와 거버넌스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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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학교 교수

 

-공영방송 이사회 등 지배구조와 수신료를 축으로 하는 재원구조가 두 가지 후견 체제

-정치권력과 공영방송이 공생하는 조합주의 통치 방식으로 후견체제를 견고하게 구축

-정치권의 거버넌스 논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양두구육’

 

 

2. 공영방송의 정치 예속화와 허구의 거버넌스 개혁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구도는 1980년 언론통폐합에 의해 형성된 체제를 이후 집권 여당이 정치적으로 전유하는 체제라 할 수 있다. 정권 홍보에 기여하는 대가로 KBS와 MBC의 안정적 독점구조를 보장해주는 후견체제인 것이다.

 

공영방송 후견 체제는 크게 두 기제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하나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비롯한 지배구조 – 흔히 거버넌스라고 하는 – 와 수신료를 축으로 하는 재원구조이다.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의 통치도구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권력은 공영방송을 제도적·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조합주의 체제인 것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온라인 매체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면서 공영방송사들은 정치권력과 더욱 유착해 법·제도적 지원을 통한 신규미디어들의 진입을 규제해왔다. 이로 인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점점 더 취약해지고 감시받지 않는 조직으로 방만한 경영과 조직 비대화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 정치 예속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수없이 작성되었던 공영방송 관련 연구보고서들과 개정법(안)들이다. 1990년대 이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영방송 정상화 혹은 개선을 위한 수많은 정책보고서와 법안들이 발의되었다. 이들 보고서와 법 개정안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역대 모든 정권이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장악한 후에는 바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였다.

 

하나는 주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거버넌스 개선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KBS 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 구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사회의 정치적 독립성을 제고하고 다양성을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집권 여당에게 유리한 이사 추천 방식을 조정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공영방송에 대한 미래비전이나 이사회 역할에 대한 합리적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공영방송 거버넌스 논의는 KBS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공영방송 사장이라는 전리품을 각 정파들이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정쟁일 뿐이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정치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거창한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실현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야당 시절 강하게 요구했던 공영방송 개선 방안들조차도 집권 이후에는 180°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권이다.

 

반면 정권을 내준 야당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공영방송 개혁을 부르짖는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모든 정권이 이전 정권에서 임명 혹은 추천되었던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교체하는(아니 쫓아내는) 추악한 행태를 반복해왔다.

 

여러차례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로 민주화가 진전되어 왔다고 하지만 공영방송은 여전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공영방송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야당에서 나왔다. 바로 이점이 정치권에서의 공영방송 개혁 논의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그 방안들도 대부분 KBS나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구성에서 야당 몫을 조금 늘리고, KBS와 MBC사장을 정부 여당이 공영방송 사장을 일방적으로 추천·임명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국가기간방송법’ 제정을 요구했고, 현재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야당이었던 2016년 말에 ‘특별 다수제’ 도입과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서 야당 추천 비율을 높이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렇지만 2017년 집권 이후 그 법안을 추진하지 않고 폐기되었다.

 

반대로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반대했던 그 방송법 개정안을 입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신 집권하자마자 과거 야당시절 맹비난했던 그런 행태를 그대로 복습한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선출되었던 공영방송 이사들을 이전 정권이 했던 방법 그대로 쫓아내어 이사회를 장악한 후, 친정권 성향의 노조출신 사장을 앉혀 놓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정권친화적이지 못한 간부들을 반강압적으로 밀어내어 정권의 구미에 맞는 공영방송 체제를 구축해 놓았다.

 

이후 벌어진 정권 홍보와 편파방송들은 말로 다하기 힘들 정도다. 정치권력과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공생하는 조합주의 통치방식을 통해 ‘후견체제(political clientalism)’를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것이다. 이 코미디는 KBS수신료 인상에서 다시 재연된다.

 

역대 모든 정권이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장악한 후에는 바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디지털 전환, 이명박 정부는 공영성 강화, 박근혜 정부는 공영방송 경영악화 등을 수신료 인상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렇지만 야당은 언제나 공정성 문제, KBS의 방만한 조직과 불합리한 경영 등을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하였고 그 결과 한번도 수신료 인상에 성공한 적은 없다. 이처럼 정권교체 이후 공·수가 뒤바뀌어 대립하는 코미디 같은 정치권 행태는 우리 공영방송의 왜곡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논의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정파들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양머리를 씌운 개고기’인 것이다. 이런 제도 아래서 KBS나 MBC가 정치적으로 공정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현행 거버넌스 구조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집권 여당의 통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공영방송은 점점 더 정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 때마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재연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 바탕에는 공영방송을 정치적 통제도구로 보는 정치권과 정치인들의 인식이 깔려있다.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지가 높지 않거나 공영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면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정쟁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KBS와 MBC의 거버넌스 구조는 정치권과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 집착이 만들어낸 왜곡된 안배구조인지도 모른다.

 

특별 다수제 및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서 야당 추천 비율을 높이는 방송법 개정안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특별다수제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독립규제기구인 방송위원회 구성 사례를 보면 꼭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 방송위원은 법률적으로 대통령 추천 3인, 국회교섭단체 6인 총 9인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형식논리로는 여당 6인(대통령추천 3인 + 국회교섭단체 3인), 야당 3인으로 구성되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그렇지만 실제 새천년민주당 5인, 자유민주연합 2인, 한나라당 2인 등 결국 7대2로 구성되었다. 원내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가장 적은 방송위원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대통령 추천 3인과 국회교섭단체 추천 인사 중 공동여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야당으로 간주해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한나라당에 각각 2인씩 분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임위원인 위원장/부위원장(자민련)/상임위원을 모두 여당이 독식하였다. 이러한 전례에 비추어보면 2016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형식적으로는 야당 몫이 6인으로 여·야 균형을 확대시켜 집권 여당이 이사회를 일방적으로 장악하고 공영방송 사장을 일방적으로 선출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차기 정권에서 공동여당이 되거나 최소한 연합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2000년 방송위원회 방식처럼, 차기 KBS이사는 여당 7인 + 공동여당 3인 + 야당 3인 즉, 10대3이 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특별다수제를 도입해도 집권하게 되면 사장선출 요건인 9명을 충분히 넘길 수 있고, 만약 집권하지 못한다고 해도 집권여당이 일방적으로 사장을 선출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재 리스트>

(1) 아전인수 또는 치매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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