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단순하게, 쉽게 써라. 스킬 얘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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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식

 

-메시지 핵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단순명료한 표현을 찾아내야. 모파상의 일물일언 

-짧게, 단순하게, 쉽게 쓰라는 게 결코 글쓰기 스킬 문제 아냐. 핵심 찾아냈느냐, 수렴 문제

-뻔한 예쁜 글의 스테레오 타입, 전형적 갬성과 관념으로 가장 성공 거둔 친구가 조국이다

 


나는 글의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단순하다. 알아먹을 수 있게 썼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다. 흔히들 쉽게 쓰라고 하는데, 그게 글의 수준을 낮추라는 말이 아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단순명료한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 모파상의 일물일언(一物一言)이 그걸 강조한 것이다.

이공계 분들은 기분 나쁘시겠지만, 이런 측면에서 역시 지적 작업의 본질은 인문학적 성찰이다. 인문학적 성찰의 본질은 단순화이다. 수많은 팩트와 사물, 현상을 꿰뚫어내는 하나의 질서, 그걸 찾아내는 게 인문학적 작업이다. 수렴인 것이다.

 

 

뻔한 글, 예쁜 글들은 100% 스테레오 타입, 그냥 전형적인 갬성, 관념의 소산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저런 스테레오 타입, 전형적인 갬성, 관념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친구가 조국이다.


이공계적 접근은 일단 그 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보다 많은 팩트, 사물, 현상을 수집하는 일종의 확산 작업이다. 수렴이 아니다.

물론 이공계 분야의 지적 작업도 결국은 확산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수렴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공계 분야의 지적 작업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인문학적이라고 봐야 한다.

짧게 쓰고, 단순하게, 쉽게 쓰라는 게 결코 글쓰기 스킬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을 찾아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뻔한 글, 예쁜 글들을 싫어한다. 이런 글들이 쉽고 단순한 글처럼 오해되기 쉽지만 실은 정반대다. 그런 글들은 필연적으로 인문학적 성찰이 결여된 것이다. 왜냐?

인문학적 성찰 즉 잡다한 팩트와 사물과 현상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찾아낸다는 것은 과거의 유산들인 이미 검증된 레거시와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지적 작업을 해낸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뻔한 글, 예쁜 글들은 100% 스테레오 타입, 그냥 전형적인 갬성, 관념의 소산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저런 스테레오 타입, 전형적인 갬성, 관념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친구가 조국이다.

쉬운 글, 알아먹기 쉬운 글을 의외로 찾기 어렵다, 내가 나이 먹어 점점 문해력이 떨어져가는 탓도 있겠지만. 쉬운 글, 알아먹기 쉬운 글을 쓰는 비법을 하나 추천한다면 자기 글을 반드시 읽어보라는 것이다. 언론사에서 데스크의 진짜 존재 이유가 그것이다. 바로 최초의 독자가 되는 것이다.

 

최초의 독자이자, 가장 보편적인 독자가 되어야 한다. 가장 전문적인 판단력과 스킬을 가지면서도 또 가장 보편적인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순된 이야기 같지만 원래 진실은 모순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기자가 아닌 분들은 데스크를 둘 수가 없으니 본인이 본인 글의 데스크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잘 읽어야 한다. 쓰고 나서 읽고, 가급적 시간 텀을 두고 읽어야 한다. 많이 읽을수록 좋다. 그러면 비로소 글쓴이가 아닌 평범한 독자의 시각이 드러난다.

한 가지 더. 가급적이면 밤에 쓰지 마라. 이건 최인훈 선생의 교훈이다. 밤에 열과 성을 기울여 쓴 글이 벌건 대낮에 읽어보면 왜 그리 유치찬란한지. 밤의 마법이 주는 감성 과잉에 빠지지 말라는 교훈이다. 물론 내공이 쌓이면 밤과 낮이 무슨 상관이랴. 그런 내공이 아직 부족한 분에게는 나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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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풍류객2021.6.27 PM 12:17

    수많은 팩트와 사물, 현상을 꿰뚫어내는 하나의 질서, 그걸 찾아내는 게 인문학적 작업이다.
    -> 이게 과학적 방법론 아닌가요?

    이공계적 접근은 일단 그 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보다 많은 팩트, 사물, 현상을 수집하는 일종의 확산 작업이다. 수렴이 아니다.
    -> 선생이 말하신 인문학적 작업을 더욱 객관화 데이타화 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사례를 보고 현상을 꿰뚫어 내는 것이죠
    인문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한지 오래되었고 과학의 시대에 그리고 앞으로도 이것이 바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지적 깊이가 있는 분으로 생각하지만. 뜬금포 같은 사례를 제시하셔서 망설이다 글 남겨봅니다.

    인간의 지적 수준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 세상의 수많은 현상의 기본 원리를 가장 단순화한 수학으로 표현하는 것이 물리학입니다
    참고로 저는 물리학을 전공하지도 관련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1. 주동식2021.6.28 PM 15:48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인문학의 고전은 여전히 현재형의 의미를 갖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공자, 예수의 발언이 지금 와서 새로운 인문학 분야의 지적 소산에 의해 부정되거나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이 추가되고 그 내용이 강화되고 풍부해집니다. 이것을 저는 수렴의 과정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공계의 지적 작업은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이공계의 지적 작업은 후속 작업에 의해 부정될 가능성이 열려있고, 또 그렇게 후속 작업에 의해 부정되는 길을 열어야 오히려 가치 있는 지적 작업이 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됩니다. 이것을 저는 확산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인문학은 보편성의 원리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의 원리는 인간 생활 전반의 영역에서 관철되어야 하고, 거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즉, 사람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이 인문학의 메인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공계는 사람보다는 사물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적용 대상이 아무래도 제한적입니다.

      인문학은 generalist를 길러내고, 이공계 학문은 specialist를 길러내는 게 원래의 목적이라고 봅니다.

      제가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generalist는 specialist가 일하는 방식에 개입하면 안되고,

      specialist는 generalist가 정하는 일의 우선순위에 개입하면 안된다… 라고 하는 지혜입니다.

      저는 이 의견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게 인문학과 이공계 학문의 중요한 차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 풍류객2021.7.4 PM 12:18

    보편성의 원리를 추구하는 것은 인문학이나 이공학이나 동일합니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해 다루고 이공계는 사물에 대해 다룬다는 것 역시 동의가 힘듭니다

    오히려 더 큰 관점에서 이공계가 인간까지 다룬다고 봐야겠지요

    인간은 전체 우주에 비하면 바닷가에 모래 알 같은 존재지요

    그리고 참고로 스페셜리스트가 제너럴리스트 영역에 개입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힘듭니다.

    특정인 A가 제너럴리스트가와 스페셜리스트의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가 제너럴리스트라면

    스페셜리스트의 영역에 개입하고자 하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나 그 반대의 경우

    즉 그가 스페셜리스트인데 제너럴리스트 영역에 개입하고자 할때 노력이 덜 들어갑니다

    과학은 이 세상에 진리를 구한다 할 때 이 세상을 인간만의 세상으로 국한하지 않습니다.

    생물학, 진화 등 인간 특징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더 큰 관점인 생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합니다

    사실상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인문 사회 과학 영역도 이 생물학적 특징에 기반하고

    이 부분을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마저도 진화의 산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의 보편성의 추구..,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공계가 스페셜 리스트를 추구 하는 것은

    이공계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면서 모든 분야의 진리를 찾기에 너무나 전문화되고 고도화된 지식과

    지적 능력을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경우의 수가 더 만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순히 인문학을 제너럴리스트 이공계를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인문학이 인간의 삶 전체를 다룬다고나 하나 법, 역사, 사회학 등등 스페셜티가 있고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방식의 정의대로 하자면 이공계는 더 큰 전체 우주와 만물의 관점에서 제너럴리스트겠습니다

    말씀하신 수렴의 과정이 진정한 보편성을 갖는 진리를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인문학, 사회 과학 역시 과학의 방법론은 보편성을 찾는 진리를 찾아 내고자 하나

    인간의 주관이 들어가는 영역이기에 과학만큼의 보편성을 추구하기가 힘듭니다

    학문 성격 자체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치 제가 과학에 대해서 전문가 인양 이야기 하나 주로 읽는 책은 경제학, 역사, 진화론 관련 책입니다

    마치 본인이 연구하는 학문에 경도 되어 있는 할일 없는 연구자가 쓰는 글인 양 오해 하실 까봐

    일요일임에도 출근해서 일하기 싫어서 여기 들렀다가 사무실에서 급하게 댓글 다는

    S기업 기획 업무를 하는 직장인의 글입니다. 업무상 하는 일은 개발자들은 많이 만납니다.

    두서없이 쓰는 글 일 수 있으나 이렇게 의견 남겨 봅니다

    물론 과학도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편향을 가질 수 있으나 결국 데이타와 수치, 숫자에 의해 반박이 되어가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보편성을 가진 진리에 수렴해 가는 과정을 갖습니다.

  3. 주동식2021.7.4 PM 21:08

    선생님 생각은 존중합니다. 이 문제를 갖고 논쟁을 계속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고,

    이과가 인간을 다루기 힘든 이유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과 학문은 정해진 조건 안에서 변수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실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인간을 그렇게 실험할 수 있나요?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무생물은 얼마든지 실험이 가능합니다.

    몇십대 후손까지도 유전자 조합 결과를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실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인문학이란 바로 그런 실험 무대 자체를 인류사 전체의 범위로 넓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실험은 사실상 ‘경험’이라는 용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과 학문에서 말하는 엄밀한 변수 통제 그리고 거기서 귀결되는 동일한 실험에 따른 동일한 결과의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몇천년 전의 인문학적 지혜가 지금도 유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답변에서 말씀드린,

    인문학적 지식은 계속 재생되는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반면,

    이과적 지식은 새로운 지식에 의해 계속 부정되고 업데이트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는다고 한 얘기가 그걸 말한 겁니다

    물론 자연과학의 성과는 인문학에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성과를 수렴, 종합해내는 것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중요한 영역인 문학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그건 경험의 공유입니다.

    지적인 경험 그리고 정서적인 경험이 종합된 것입니다. 이걸 이과 학문이 대신해줄 수 있나요?

    이과 학문은 그 경험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수단 역할을 할 뿐입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물론 저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세계적인 AI 학자도 인간의 그런 창의성을 AI가 흉내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

    인문학이 이과학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더군요.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07/03/42RF6ZBIURCBHGPGTDYKIH34CM/?fbclid=IwAR35ncM4vHD5v7axIB45MZ2ngKWxAzmrBRhT8NWpWUjcjfTWwGYLIyhbHD4

    저는 이과 학자들이 인문학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를 이해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과가 더 우월하다는 식의 편협한 생각을 고수하는 한

    앞으로도 이과 전공하신 분들은 영원히 인문학 하는 사람들의 도구 노릇밖에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저 기사 링크 가져오면서 제 페북에 올린 글로 마무리합니다.

    [정말 스마트한 이공계 전문가들은 인문학의 중요함을 인정하고 강조하더군요.
    기자 생활할 때 IBM 본사에서 온 엔지니어의 기자회견에 간 적이 있었는데, 금발머리 뒤로 묶은 포니테일에 핑크색 비슷한 가죽 점퍼 입은 이 친구 분위기는 히피 스타일인데
    기자회견 도중에 느닷없이 세익스피어 소네트를 낭송하더라는… 통역해준 사람의 설명을 듣고 알았습니다만.
    이 AI학자도 비슷한 얘기를 하네요. 인터뷰 내용이 재미있어서 링크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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