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견해 : 미국은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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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자유로운 미국, 스마트 미국, 현실의 미국, 정의로운 미국 등 4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미국

-미국의 분열은 팍스아메리카나의 사양길에서 중산층의 민주주의 유지·확대에 실패한 때문

-미국 인종갈등을 백인(보수 법치)vs.흑인(좌파 폭력) 단순논리로 재단하는 한국인의 오해



우리는 미국을 또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래 링크 글은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프

 

HOW AMERICA FRACTURED INTO FOUR PARTS


미국이 어떤 나라이고 어떤 나라이어야 하는가에 관점이 다른 4개의 그룹의 사람들이 다투고 있다고 보고 있다.

1. 자유로운 미국(Free America)
자유주의자(libertarians)들로 정부의 규제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믿는 사람들로, 로널드 레이건, 뉴트 깅그리치 (Newt Gingrich), 테드 크루즈의 계보로 이어지는 사람들이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지만 여기에 속한다.

2. 스마트 미국(Smart America)
고소득의 Technocrats(과학기술자들)로 명문학교를 나오고, 성과주의(능력주의)를 숭상하며, MacBooks을 사용하고 나머지 미국과 별로 섞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이들은 미국보다는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있다.


스티브 잡스, 쥬크버그, 아마존의 베조스, 테슬라의 머스크로 대표되는 그룹이다. 나는 이 분야의 전공을 했고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이 가야할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이고 어떤 나라이어야 하는가에 관점이 다른 4개의 그룹의 사람들이 다투고 있다.


3. 현실의 미국(Real America)
백인 기독교 국수주의자들(White Christian Nationalists)들로 최근에는 Tea Party 운동을 주도했던 사라 페일린(Sarah Palin)과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사기가 충전된 그룹이다. 이들은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를 숭상하고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 미국 이해 우선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그룹이고 글로벌 경제에서 상대적 지위가 감소하는 미국 경제에서 소외된 계층의 분노를 대변한다.

4. 정의로운 미국(Just America)
미국의 불공정이 미국 문제의 핵심이라고 믿는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 글의 필자는 이 4 그룹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을 점점 더 분열된 사회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본 이유는 2차대전 이후 팍스아메리카나의 사양길에서 미국 중산층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미국이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중산충의 경제적 기회가 축소되면서 경제적 불안은 민주주의의 근간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미국은 어떤 미국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첫번째 그룹이 한국에 없는 것이 한국의 국가주의와 규제 공화국을 만들고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 저하시키는 근본 원인으로 미국 지식 사회의 자유주의 토대를 부러워한다.

또 나는 미국의 두번째 그룹의 혁신 능력을 부러워하고 한국의 기업가와 창업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저들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업이 너무 소수라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세번째 그룹에 대해서는 매우 못마땅하고 Ugly(추한) 미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 보수주의와 인기영합의 트럼프의 구분을 분명히 하고 트럼프에 비판적인 나의 견해와, 트럼프의 백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의 정치적 연대를 보수주의의 본질로 착각하는 한국의 일부 비자유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 보수주의자들과 잦은 견해 충돌을 하고 있다.

네번째 청년세대의 고민은 결국 경제적 기회의 확대 이외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 즉 미국 사회의 구조적 결함은 우리 사회가 하는 고민보다 심각하다고 인식한다. 미국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인종이 사회 계급화된 사회라는 문제에 늘 시달린다.

 

2020년 지식인들 사회에서 공전의 베스트 셀러가 된 Caste: The Origins of Our Discontents(Isabel Wilkerson)은 인종의 문제가 얼마나 견고하고 뿌리가 깊은 사회계층 구조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 내 인종 갈등을 백인(보수 법치) vs 흑인(좌파 폭력) 등의 단순 논리로 재단하는 것을 볼 때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현장을 자주 목격한 나는 매우 불편하게 느낀다.

한국 사회는 어떤 그룹의 사람들로 나누어 분석해야 할까?

분명 자유로운 한국(Free Korea)은 한국에 아주 극소수이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착각했고 나를 자신들의 편이라고 착각했던 한국의 자칭 보수의 대부분도 국가주의, 집단주의의 사고로 똘똘뭉친 반공보수이지 자유주의자들은 아니다. 이것이 서로를 오해하게 만들어왔다.

Smart Korea 그룹은 무섭게 부상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부상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과거의 경제적 강자, 재벌에 대해 지나친 편집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현실(불만)의 한국은 도처에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인기영합하고자 하는 정치권들이 원칙이나 가치기준없이 대한민국을 마구 휘젓고 있다. 자유로운 한국(Free Korea)의 지적 토대와 정치세력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이 현실의 한국에 휘둘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종종 정치인들의 종족주의 선동으로 반일, 반중 등의 국수주의에 빠지면서 추한 한국의 모습을 들어낸다.

정의로운 한국(Just Korea)은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 이들이 좌파에서 우파로 시선을 돌리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무원칙의 좌파가 내로남불의 위선의 세력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키워줄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시대 과제일 것이다.

생각보다 세상은 글로벌화했고 그래서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도 매우 유사한 면이 있다. 우리가 미국을 보는 이유는 미국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그 거울을 통해 우리를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네 그룹의 미국인들은 이제 국가의 존재이유(목적), 역사와 의미에서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조선의 멸망과, 주권의 상실, 그리고 독립과 건국,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역사와 의미에 대해 그리고 국가(정부)와 개인의 경계에 대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해 사회적 합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사건 사고에 들집승들처럼 반응하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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