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과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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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주동식

 

-지배계급 자체가 교체되는 것이 혁명, 지배계급 내부에서 주도적인 그룹의 교체가 쿠데타

-부르주아 혁명의 주역인 자본가 계급의 미성숙. 주어진 권력을 누군가 대체 운영하는 구조

-5.16은 서구식 교육 받고 조직화된 군부세력에게 국정운영 맡기자는 국민적 합의의 반영

 

 

대학 시절 후배들과 공부할 때 혁명과 쿠데타의 차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지배계급 자체가 교체되는 것이 혁명, 지배계급 내부에 주도적인 그룹이 교체되는 것이 쿠데타 또는 정변.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5.16은 쿠데타가 맞다. 지배계급 자체가 교체된 것이 아니고, 그 지배계급 내부의 대표주자 그룹이 교체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하나의 혁명이 진행중이었다. 즉, 5.16은 진행중인 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다. 이런 사회과학적 용어 말고 좀더 대중적인 용어로 자유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은 1945년의 해방과 1948년의 정부수립, 1950년 5.25건국전쟁 등이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주역이어야 할 자본가 계급이 극히 미성숙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즉, 타율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누군가 대체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항일 운동가 출신의 이승만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지 경영에 동참한 경험이 있는 관료 및 지식인들이 그 역할을 했다.

 

이들의 국정 운영은 사실상 한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진행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은 6.25 건국전쟁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을 완성하고, 체제를 수호해낸 것 그리고 경제 건설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의무교육을 보편화시킨 것 등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주역인 자본가 계급의 질적 양적 성숙의 토대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5.16은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잘 조직화된 군부세력에게 국정 운영을 맡겨보자는 국민적 합의가 반영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1공화국의 역할은 195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의 노쇠와 그를 둘러싼 그룹들의 퇴행이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주역이자 토대인 건강한 자본가 계급이 빈약한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4.19는 친일지주 등이 중심이 된 민주당에게 그 역할을 맡겨보자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4.19로 권력을 쥔 민주당 주류들의 진보적인 역량은 일제시대의 종언으로 막을 내렸고, 새로 주어진 국정운영의 책임에서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그들은 일제하 한국의 경제 인프라가 농업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던 당시에는 나름 진보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반동적이고 무능한 세력이라는 게 드러났다. 이승만의 농지개혁 등으로 과거 대지주 출신 등으로 구성된 민주당은 자신들의 시대적 소명을 상실하게 됐던 것이다.

 

5.16은 이들 대신 보다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잘 조직화되어 있는 군부세력에게 국정 운영을 맡겨보자는 국민적 합의가 반영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5.16 이후 한국의 자본가 계급은 점차 본격적인 중심 계급으로 성장하게 된다. 군부 엘리트를 경제개발과 근대화 작업의 사령탑으로 내세우고, 그 우산 아래에서 자본가 계급이 역사의 주역으로 성장해간 셈이다.

 

박정희 정권의 종말은 사실상 이들 자본가 계급의 양적 질적 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주류 교체를 의미했다. 전두환 정권은 그런 권력 이전의 과도기적 변화관리를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이룩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가 없었다면 4.19 자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승만의 업적이 사실상 그의 몰락을 재촉하는 요소(민권의식의 성장 등)가 된 것처럼, 박정희의 업적도 그의 몰락을 초래하는 트리거가 됐다. 미완성의 혁명을 추진하는 주체들 그리고 그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자들의 정치적 숙명이다.

 

5.18과 6.29 등은 크게 봐서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또 하나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보다 유연하고 개방화된 민주주의 체제로의 지향을 의미한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법치와 제도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 인권, 신분의 해방, 사유재산의 확립 등을 필수적인 요소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사적 변증법의 관점에서 테제(이승만-박정희)와 안티테제(김대중 노무현)를 거쳐 신테제로 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테제가 완성되지 못하고 오히려 총체적인 몰락의 길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문재인 정권이다.

 

5.16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진전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혁명적 전환점이라고 보는 게 맞다.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신테제를 만들어내는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최종적인 완성은 북한 김씨조선의 해체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로의 흡수일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바꾸어 말하면 근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한국의 근대화는 사실상 한반도 내에서 어떤 근대화가 민족사적 정통성을 갖느냐의 입증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16은 이렇게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전반적인 진행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할 사건이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 또 하나의 잊혀진 혁명이 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 비극은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못하면 이 나라는 급속하게 몰락의 길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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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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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판단력부족2021.5.20 PM 13:14

    쿠데타와 혁명은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 : 기존의 정부를 무너뜨린다
    차이점 : 정치체제나 경제체제를 바꾸면 혁명이고, 이전의 정치체제 이전의 경제체제가 유지되면 쿠데타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예로 들면, 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었죠. 정치체제가 바뀐 것입니다.
    러시아 공산혁명을 예로 들면, 공산주의 경제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전에 뭐가 있었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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