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하는 배움의 어둡고 위태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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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주동식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이 세계에 변형을 가하고, 그 변형 과정 통해 이 세계에 대한 이해 심화

-마르크스 주의자들 “동식물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할 뿐이지만, 인간은 이 세계를 재생산”

-기존의 인간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 vs. 자신의 경험과 정보를 기존의 경험에 추가하는 활동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자의 이 말처럼 학문의 핵심을 꿰뚫는 지적도 없을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아카데믹한 영역의 문제를 다룬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이 세계와 맺는 관계, 그 메커니즘에 대한 지적이 이 발언의 핵심이라고 본다.

 

인간은 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다. 그 관계의 핵심이 노동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이 세계에 변형을 가하고, 그 변형 과정은 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심화된 이해는 인간이 이 세계에 대해 보다 심화된 접근을 하는 토대가 된다.

 

즉, 세계에 대한 이해→ 노동(실천)→ 세계에 대한 이해의 심화→ 좀더 고차원적인 노동(실천)→ 세계에 대한 이해의 고도화…

 

이런 무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이다.

 

저 프로세스의 사이클 자체는 단순 반복 같지만 결코 단순 반복은 아니다. 마치, 바퀴는 단순 왕복운동을 할 뿐이지만,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 차량은 앞으로 나아가 위치를 이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단순 반복, 왕복 운동을 통해서 점차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의 심화와 실천의 고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 등장한 이래 저 단순반복을 통해서 점차 인지능력을 쌓고, 이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자신의 능력을 고도화/극대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식물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할 뿐이지만, 인간은 이 세계를 재생산하는 존재이다.”

 

이것은 사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이 “동식물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할 뿐이지만, 인간은 이 세계를 재생산하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저 실천과 인식의 업데이트 사이클을 통해 이 세계의 모습은 질적으로 바뀌어가기 때문이고, 그런 작업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렇게 거창한 인류사적인 차원이 아닌, 기업이나 조직, 학문에서의 활동에서는 저런 프로세스를 피드백(feedback)의 차원으로 간단하게 이해한다.

 

공자의 저 발언은 이런 메커니즘 전부를 꿰뚫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배운다(學)는 것이 기존의 인간 경험이 정리된 지식 체계를 자신의 인식에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생각한다(思)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 속에서 얻은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인간 경험과 조화시키고, 거기에 추가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쌓아올린 기존의 인간 경험을 배우기만 하고 자신이 실체로 체험하고 부딪힌 이 세계의 새로운 영역, 새로운 경험, 새로운 지식을 거기에 추가해 체계화하지 않으면 지식이 많은 멍청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둡다(罔)는 것이다.

 

반면, 이 세상에서 쌓은 이런저런 잡다한 경험을 절대시하는 자들도 많다. 한 인간이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해도 전체 인류의 그것에 비하면 바닷가 모래알 한 알보다도 못하다. 특히 지적 능력이 부족한 자들일수록 자신의 경험과 그것을 통해 얻은 어떤 통찰(?)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 경험과 통찰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인류의 경험 속에서 그 경험과 통찰이 어떤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게 없으면 저 경험과 통찰은 그냥 개똥철학일 뿐이다. 이런 자들이 대개 자신만의 좁은 영역에서 대장 노릇, 교주 노릇을 하게 된다. 작은 폭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공자는 위태롭다(殆)고 표현하는 것이다.

 

우파 진영에서 그런 작은 대장, 작은 교주, 작은 폭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우파 이념은 체계화된 도그마보다는 경험 위주, 일종의 암묵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좌파들은 비록 허접하지만 비교적 정리된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허접하다고는 해도, 실은 서양문명 몇천년의 배경을 갖고 있는 이론적 체계이고 도그마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현재의 좌파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아서 어두운 놈들에 가깝고, 우파는 공부는 안하고 지 경험만 절대시하는, 위태로운 생각을 하는 상태에 가까운 것 같다. 1980년대에는 좌우파의 상황이 정반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앞으로도 상황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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