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의 분노’ 이해하는 두 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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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손경모

-곰탕집 사건 피고인의 부인이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론화. 절대다수 ‘이건 말도 안된다’

-가정을 가질 수 없게 된 여성들이 이미 가정을 가진 여자들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

-[‘관음충’의 발생학]이란 논문의 연구윤리 위반, 페미니즘의 <나의 투쟁> 학회 등재와 유사



이대남의 분노를 이해하려면 하나는 곰탕집 사건을 알아야 되고, 두번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관음충’의 발생학] 논문 사건을 알아야된다.

과거부터 성범죄 사건들이 여자의 일방적인 진술에 의존해 쉬쉬하며 처리되고 있다는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17년 쯤에 사람들이 이게 어느 정도로 불공정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곰탕집 사건이다.

안희정 사건만해도 사람들은 그게 대체로 불륜사건이라고 평가했는데, 그것을 눈으로 볼 객곽적인 자료가 없어서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곰탕집 사건은 피고인의 부인이 너무 억울하다며 그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론화시키면서 사람들이 보게 되었는데 그 자료를 본 절대적인 대다수는 ‘이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건은 계속 공방을 벌였지만 결국 대법원에 가서도 실형을 받는 결과가 나왓다.

남자들이 페미니즘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남자들의 권리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착각이다. 안희정이 무고에 시달렸을때도 그 부인이 누구보다 분노했고, 곰탕집 사건도 그 부인이 피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가정이야말로 여자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간인데, 미혼여성들의 모해로 멀쩡한 가정이 파멸에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면서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가 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자기들이 가정을 가질 수 없게 되니까 이미 가정을 가진 여자들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거지. 남자들이 분노하는 건 이런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에 대해서 분노하는 거야. 남녀가 마주칠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남자는 마녀사냥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가져야되니까,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거야.

 

곰탕집 사건의 CCTV 영상 화면 캡처.


두번째로는 [‘관음충’의 발생학]이란 논문의 연구윤리 위반사건인데, 나는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페미니즘의 <나의 투쟁> 학회 등재사건과 유사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 얘기기는 한데, 페미니즘이 이론적으로 얼마나 개소리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얘기를 페미니즘 논리에 맞게 끼워서 학회 등재를 요청했는데, 그게 그대로 등재돼서 쪽을 팔린 유명한 일이 있다. 그 사건으로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이론적으로 정립될 수 없으며 학문적으로도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연구윤리 부정이나 논문들이 전혀 검증되지 않는 시스템이란 것이 증명됐다.

지금 보겸이 불을 붙인 이 사건은, 보겸이 자기 이름+하이라는 ‘보이루’라는 말을 여성혐오의 말로 논문에 등재시키면서 시작됐다. 문제는 이 논문이 실린 학회지가 KCI 등재지라는 건데, 이런 논문이 검증이 안된다는 게 문제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침묵하고 파이낸셜뉴스 정도에서만 유일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이 논문은 남성을 벌레에 비유해 몰카충인 한남유충이 시간이 지나면 한남충이 된다는 것을 아주 자연발생학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정당하냐 마느냐의 이런 문제 이전에, 근본적으로 인간혐오를 담고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국철학회라는 권위있는 학회지에 모든 여자들은 정신적 피해망상을 가진 싸이코패스라는 것을 진화론적 증명을 통해서 쓴다고해보자. 그걸 읽는 여자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모욕감을 느끼겠나? 그런 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이런 혐오가 정제화된 언어라고해서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자기 명예에 피해를 입은 보겸이 이 문제를 바로 잡고자, 논문 쓴 저자에게도 가고, 대학에도 가고, 철학연구회, 한국연구재단 등 공식적인 루트를 모두 거쳤음에도 이건 수정 재고되지 않는다가 결론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남성들의 인권은 무자비하게 마녀사냥해도 되고 짓밟히더라도 공권력이 교정해 주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이대남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보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기 일로 동일시 하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보겸은 지금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성 문제와 관련된 지금까지 내린 판결문들을 보면 누구도 동의하기 어려운 판결들 뿐이다.

내가 만약 보겸이라면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층이 모여있는 의학계에 적극적으로 어필해보겠다. 예전 황우석 사태를 기초로 해서 인문학자들이 과학자들 연구윤리를 가지고 얼마나 비난을 퍼부었나. 그거 때문에 과학자들이 죄인되고 말도 못했잖아. 그런데 높은 도덕을 쌓아서 사람들을 재단하던 이들의 도덕성이 지금 드러나고 있잖아. 가장 사람과 가깝고 인간에 대한 연구윤리에도 밝은 의학계에서 얘기를 해볼만 하다고 본다. 특히 논문의 제목이 관음충의 발생학적 어쩌고 저쩌고니까..

이 두 사건을 이해해야 이대남들의 분노를 알 수 있다. 무슨 남녀의 경제적 권리나 임금차별… 이런 게 메인 이슈가 아니다. 핵심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것은 전근대로의 회귀이기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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