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던지는 ‘오컴의 면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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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동원

 

-윤여정의 말을 듣다보면 ‘오컴의 면도날’이란 개념이 떠오른다. 한마디 한마디가 매우 심플해

-운동권 586은 俗의 의미 모르니 실패. 여전히 적폐세력, 부패세력, 친일청산의 성전을 이어가
평등은 공정과 일치되지 않아. 제대로된 자본주의 사회는 차등에 엄격, 보상 확실, 독창성 인정



1. 윤여정과 단순함의 미학
윤여정의 말을 듣다보면 ‘오컴의 면도날’이란 개념이 떠오른다.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 경제성. 절약. 단순성의 원리다. 불필요한 가지들은 면도칼로 다 도려내라는 것. 윤여정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매우 심플하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서러움이 있지 왜 없어”

“내 약점을 아니까 열심히 대사를 외웠다. 나중엔 먹고 살기 위해 절실하게 연기했다. 대본이 곧 성경 같았다.”

“안목을 믿는다는 건 계산이 깔린 것이다”

“내 연기 철학은 열등감에서 비롯됐다”


꾸미지 않고 던지는 그녀의 메시지가 울림이 큰 것은 미화하거나 치장하지 않고 현실에 있는 그대로 진짜 삶을 얘기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순백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냉엄하고 냉혹하다. 단순함은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던 치열한 삶의 결과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서러움이 있지 왜 없어”


2. 성(聖)은 속(俗)으로부터, 386의 실패
인생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은 심오한 사상과 원대한 계획이 아니라 열등감, 생계, 인정욕구, 두려움 같은 것이다. 우린 이런 인간을 속물로 취급하지만 위대한 성취의 근본 출발은 속(俗)에서 나온다. 성(聖)은 속(俗)에서 잉태된다.


聖을 추구하면 절대 聖에 이를 수 없다. 俗이 극대화 되면 聖의 순간이 온다. 聖이 별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병과 부상의 위험,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구원과 돈 걱정 없이 잘 살게, 병 없이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복의 俗이 聖으로 승화된 것일 뿐.


운동권 586들은 聖과 俗의 이치를 모른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聖만 추구한다. 투신도 시민운동도 聖이다. 민중을 교화와 계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聖을 추구했으니 俗이 되었고, 俗의 의미를 모르니 실패한다. 아직까지도 적폐세력, 부패세력, 친일청산 운운하며 성전을 이어가고 있다.

3. 윤여정과 밥벌이의 위대함
윤여정은 오늘의 자신을 만든 건 생계를 위한 연기 열정이라고 했다.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도 그녀는 두 아들이 일터에 나서게 했다며 유머 아닌 유머를 던졌다. 그녀는 오직 밥을 위해 일했다. 밥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흔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된다고 한다. 그래야 오래 재밌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의 모든 사람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신성한 노동’이란 역설적으로 노동이 하기싫고 힘들기 때문에 생겼다.


노동은 인간에게 천형이다. 산 정상에 이르면 바로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계속해서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벌을 수행하는 거인 시지프스는 매일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밤새 굴러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올리려 아침마다 출근을 한다.

4. 자본주의의 냉혹함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일했다”는 윤여정은 배우가 돈 잘 버는 남편을 두고 천천히 놀면서 일하면 연기가 안 나온다 했다. 생계의 절실함이 윤여정에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생기게 했다. 일을 또 받으려면 연기를 잘해야 했던 것이다.


세상은 냉정하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에게 일을 주지 않는다. 일 잘 하는 사람에게 일을 준다. 일을 받기 위해선 일을 잘해야 된다. 잘 먹고 잘 살려면 일에 대한 열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눈부신 산업화는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민의 열정이 극대화 된 것이다.


평등은 공정과 일치되지 않는다. 차등을 두어야 열정이 생긴다.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퀄리티가 보상되지 않아도,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해도 열정은 사라진다. 제대로된 자본주의 사회는 차등에 엄격하고 보상에 확실하고 독창성을 인정한다.


대한민국의 불공정과 불공평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과 공평을 유교적 도덕주의, 인간의 도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차등을 불평등으로 여기고 돈 벌이 열정을 부도덕하게 여기는 곳에서 공정과 공평이 자랄 리가 없다. 정의란 일한 만큼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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