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독립운동가 아니라는 또라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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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석희

 

-활동 기한이나 순수 업적으로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넘어서는 독립운동가가 거의 없는 현실인데

-총독부 가장 중요한 사업 목표 중 하나가 이승만을 귀국시켜 포섭하는 일이었다는 건 알고 있나?

-집권 후 변질됐든, 해방동란과 6.25 전쟁 시기의 실정을 용납 못하든 독립운동을 부정해선 안돼

 


아니 왜 자꾸 주기적으로 이승만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정신 좀 나간 애들이 자꾸 출현하지? 활동 기한이나 순수 업적으로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넘어서는 독립운동가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인데?

 

 

끝끝내 박용만은 그럴 리 없다고 박용만을 제거해야겠다고 말하는 김구에게 박용만을 변호하는 전보와 편지를 계속 날린 것은 이승만이었다.

 

1920년대 모두 이승만이 깊이 연루되어 있었던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3.1 운동 이후의 미 의회를 대상으로 한 한국 독립 청원과 태평양회의 참석 노력 등의 외교활동이 국제정세 한계로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실망한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지식인들 및 기업인들도 자치론에 기울었을 때, 총독부의 가장 중요한 사업 목표 중 하나가 이승만을 귀국시키고 포섭하는 일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나?

조선총독부는 이승만의 국내 연락책이었던 이상재를 집요하게 미행하며 신간회를 이끄는 이상재와 이승만과의 연락을 예의주시했고, 이승만의 국내 실력양성운동 기지였던 YMCA와 흥업구락부를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고단하고 답이 안 보여도 미국 본토와 하와이 땅에서 미주한인 독립운동가들과 활동을 이어가며 김구, 조소앙과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이승만이다.

 

집권 이후 어떻게 변질됐든 그가 내세운 철학과 가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의 해방동란과 6.25 전쟁 시기의 실정과 과오를 용납할 수 없든 아니든 독립운동가로서 그가 해 온 일들은 부정해선 안 된다.

이승만 욕하려고 자꾸 박용만 끌어오는데, 대부분이 1차 자료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근거 없이 교포사회에 돌던 풍문에 지나지 않은 것을 끌어모은 김현구와 김원용의 자료를 원용한 것이라 크게 반박할 가치를 못 느낀다.

 

심심하면 끌어오는 박용만은 이것저것 해보다 잘 안돼서 1920년대 후반에 결국 총독부와 몰래 접선해 중국·만주 땅의 조선인들 노동력으로 만주의 토지를 개발하는 대륙농간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총독부로부터 받았다는 스캔들에 휘말려 좌익계열 의열단체에게 변절자로 지목돼 암살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으려나.

 

그래도 끝끝내 박용만은 그럴 리 없다고 박용만을 제거해야겠다고 말하는 김구에게 박용만을 변호하는 전보와 편지를 계속 날린 것은 이승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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