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마치며 쓰는 ‘영국 유학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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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주진

 

-올해 초반 발표된 논문까지 다뤄… 효율적으로 맥락 파악하고 최근 연구 경향에 눈높이 맞출 수 있어

-반드시 ‘연구방법론’ 수강… 듣도보도 못한 R프로그램으로 코딩 비슷하게 작업하며 양적방법론 공부

-표절에 대해서 1시간 ‘집체 교육’ 받고, 강의실에 가서 교수한테 또 듣고, 다시 조교한테 듣는 분위기

 

 

 

UCL은 20대 초반부터 선망했고 꿈꿨던 학교였다.

1인당 캐리어 두 개씩 가득 채워서 낑낑거리면서 끌고 온가족이 런던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마무리되어 간다.

 

다음주 10주차 강의와 세미나만 들으면 일종의 짧은 방학을 3주 정도 갖고 곧바로 2학기로 접어든다. 물론 3주 내내 에세이를 4편이나(3천단어 3편, 6천단어 1편) 써서 내야 되므로 올 연말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을 듯 싶다. 그거 다 써서 내면 또 학기 시작하고, 중간에세이 내고… 휴~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인 UCL은 20대 초반부터 선망했고 꿈꿨던 학교였다. 눈감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다, 문득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가슴이 갑자기 벅차오르면서 컴퓨터를 켜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곤 했던 곳이다. 그리고 솔직히 원서를 써서 내는 순간까지도 내가 UCL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다.

 

그냥 한 번 넣어나보자, 하고 막판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넣은 학교다. 어찌어찌해서 운이 좋아 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문을 닫고 들어온(*꼴찌 입학이라는 의미_편집자)’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이 점차 시간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찌됐든 그런 학교를 멀쩡히 다니고 있고, 벌써 10주라는 한 코스를 마쳐가고 있다. 이제는 제법 학교 생활이 익숙해졌고, 사알짝 지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토록 내가 간절히 원했던 옛날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익숙해지고 안정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아주 짧게 경험해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아카데믹한 환경에서 공부를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한국과 영국의 학풍이랄까, 그런 걸 비교하긴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여기와서 느끼는 바들이 많다. 다른 영국의 대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UCL 대학원을 다니면서 느낀 점을 몇가지 소개해보고 싶다.

 

첫째, 최신 논문이나 저널을 많이 다루고 또 그 깊이가 좀 남다르다는 느낌이다. 물론 클래식도 많이 다룬다. 기본적으로 홉스, 로크, 루소, 토크빌 등은 필수다.

 

하지만 최근 3년, 심지어 올해 초반에 발표된 논문까지도 다룬다. 그래서 비교적 기존의 연구들이 잘 정리된 논문들을 통해서 매우 효율적으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연구와 저술을 매우 활발하게 하는 교수들과 함께 호흡하다 보니, 최근 연구 경향에 자연스럽게 눈높이가 맞춰지는 느낌이다.

 

둘째, 세미나를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다. 보통 한 과목당 1~2시간 강의에 1시간 세미나로 구성돼 있는데, 강의보다 세미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느낌이다(강의는 빠져도 세미나는 빠지지 말아라, 뭐 이런 거).

 

세미나라는 것도 그냥 무턱대고 모여서 주제 하나 던져주고 토론해보자, 이런 게 아니고 1주일 전에 미리 세미나 주제와 각자 주어진 역할, 조사해야 할 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준다. 나는 좀 익숙하지가 않아서 준비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닌데, 영국 학생들은 세미나를 마치 실전 토론회를 대하듯 매우 진지하게 대한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셋째, 현실과 결코 동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론이나 개념을 다루든, 반드시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연구와 증거를 같이 다룬다. 정치학과 석사과정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모두 반드시 ‘연구방법론’을 수강해야 한다.

 

덕분에 1학기에는 R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프로그램을 갖고 코딩 비스무리한 걸 해가며 양적방법론을 공부하고 있다. 내 인생에 예정돼 있지 않던 로그, 이차함수, 스캐터 플랏 등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교육이 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뭐든 현실사회에서 입증하고 규명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는 매우 실용주의적인 사고가 교육에 배어 있다.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가치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넷째,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을만큼 학생들의 인종, 출신국가, 배경 등이 다양하다. 물론 이 점은 비교적 외국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인 듯 싶다.

 

그런데 이게 정말 미국과 영국의 대학 경쟁력을 좌우하는 강점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냥 토론 그 자체가 전세계 사례에 대한 연구이자 시각의 확장이다. 심지어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실시간 강의를 듣는 느낌이다. 우리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시스템과 사회 문제, 이슈, 어젠다 등을 시시각각 접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이 생긴다.

 

다섯째, 교수든 학생이든 심지어 교직원이든, 뭔가 알 수 없는 자부심과 근엄함이 느껴진다. 아직도 좀 적응이 안되는 부분이다. 뭐든지 매우 진지하고 치밀하게 접근한다.

 

그냥 뭐 대충대충 하는 거, 그런 게 없다.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깐깐하게 규율을 강조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어떤 불이익이 가해지는지 거의 협박 수준으로 이야기한다. 표절에 대해서 별도로 1시간의 ‘집체 교육’을 받았는데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을 듣고, 또 강의실에 가서 교수한테 듣고, 또 조교한테 듣고… 이런 분위기다. 너무 다들 진지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내가 너무 안일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공부들 열심히 하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는 사실 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학?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된다. 나는 물론 와서 만족스럽고, 또 와이프와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생활을 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학문의 길을 갈 생각도 아니므로 조금은 가볍게 유학에 임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공부를 자신의 길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석사는 한국에서 하고 박사부터 외국에서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부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결국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분야에 더 깊게 파고 들어서 완전히 Narrow한 시각을 갖고 한 주제로 천착해 들어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본인과 잘 맞는 교수, 전공, 학풍, 학교 분위기, 그리고 장기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되겠다 싶다. 꼭 명문대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권위 있는 교수 밑으로 가는 게 훨씬 더 의미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나 시각은 학부 때 갖춰지기는 꽤 어렵고,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나라 대학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랐기 때문에 충분히 국내에서도 이러한 준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꼭 굳이 박사도 유학을 가야만 되는 것인지도 조금은 의문이다.

 

아직은 학문적 깊이 측면에서 차이가 좀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도 어엿한 경제대국이고 나름 학문적 자원이 풍부한 국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연구도 많다면, 박사 정규코스까지는 한국에서 마치고 그 다음에 연구원 자격으로 추가 연구를 위해 외국으로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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