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능력’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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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성호

 

-“동네에서 이름 석자 대면 아줌마들이 자지러지는 레전드도 유급을 하는 곳이 의대구나”

-병들 괴롭히는 데 이골이 난 간부가 싫었지만, 그래도 웃으며 ‘맞습니다’라고 맞장구쳤다

-남자는 능력? 단순히 수입이나 재산보다 수컷으로서 생존본능과 위기 대응 능력도 포함

 

 

1.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전교 1등으로도 유명했지만, 친형 덕분에 유명하기도 했다. 전국의 사교육 벨트에는 각 동네마다 ‘레전드’로 불리는 인물이 1년에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인데, 친구의 친형이 우리동네 레전드 중 하나였다. 별 관심이 없어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3년 내내 내신 전과목에서 2등급을 하나만 받고 카톨릭대 의대를 갔나 그랬다.

 

형제는 사이가 안 좋았다. 친구는 동네 네임드긴 했지만, 솔직히 레전드급까지는 아니었다. 집에서도 비교를 많이 당했고, 그걸 의식해서인지 친구는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친구는 전교 1등이었지만 수시 원서와 수능을 망해서 현역 정시로 연고대 중위과를 갔다. 친구는 결국 반수에 성공했지만, 서울대를 또 떨어지고 연고대 최상위과로 재입학을 했다. 미묘한 결말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나. 하루는 친구와 강남에서 술을 먹고 서초동에 있는 친구의 친형 자취방에 놀러가게 되었다. 통학으로는 도저히 학점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어서 부모님을 졸라 얻은 자취방이라고 했다. 본과생이었던 친형은 당시 본가에 가 있었다. 의대생의 작은 자취방은 놀라울만큼 단출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책장 뿐이었다.

 

의대에 가면 공부량이 장난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친구에게 니네 형은 하루에 공부를 얼마나 하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형 이야기라서 기분이 나쁘지만 내색을 안하는 티를 내며, 본가에서 지낼 때도 4시간 이상 자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걸 몇 년을 더 해야하는 거냐 물었고, 친구는 짜증을 내며 ‘한 10년 할 걸. 몰라 씨발.’이라고 말하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그 형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친구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재밌는 거 말해줄까?’라고 했다. 뭔데, 라고 물으니 친구는, ‘우리형 빠가라서 유급했다? 쪽팔려서 우리 엄마 모임 나가서 비밀로 하잖아. 븅신.’이라고 말했다. 아아. 우리 동네에서 이름 석자 대면 아줌마들이 자지러지는 레전드도 유급을 하는 곳이 의대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잔인하고 이기적인 세상의 로직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온실 속 화초로 산다면, 독사같은 인간들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2.

군대에서의 일이다. 하루는 ‘실권자’인 자신의 모습에 굉장히 쉽게 도취되는 습성이 있는 간부가 나 보고, ‘너는 공부 어느 정도 잘했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공부를 원래 잘한 건 아닙니다. 뒤늦게 해서 올렸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간부는, ‘나는 임마. 공부머리도 좋았어. 고등학교 때 밤새 공부해서 한자 중간고사 100점 맞은 적도 있어. 공부할 환경만 됐으면 연고대는 갔을 거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간부가 충청도 촌구석에 있는 상업고등학교, 다른 간부의 말을 빌리자면 ‘충주의 대표적인 깡패학교’를 나온 것을 졸업하고 뒤늦게 전문대에서 학사를 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단하십니다. 저는 내신을 잘 못해서 100점 한 번도 못 맞아봤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거짓은 아니었다.

 

간부는 당시 진급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공부가 어려워 괜스레 일반병에게 자기 확신을 얻고자 한 것 같았다. 간부는 씩 웃으며, ‘그래 임마. 형이 열심히 하면 못할 게 없다니까? 형 알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병들을 괴롭히는데 이골이 난 이 간부가 싫었지만, 그래도 웃으며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간부는 우리 조직에서 3명이 응시한 진급시험에서 떨어졌다. 진급의 영광은 국립대를 나온 다른 간부에게 돌아갔다.

 

3.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최근에 다룬 변호사 실종사건도 그렇고, 얼마 전 방영된 연구원 익사사건도 그렇고, 세상물정 모르면 결국엔 뜯기게 되어있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 다녀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 그 중에서도 험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인 세상의 로직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온실 속 화초로 산다면, 독사같은 인간들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듯.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가해자들이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알> 같은 곳에 방영이라도 되지, 사건이 이미 해결되었거나 단순히 돈 좀 뜯긴 정도로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는다.

 

‘남자는 능력이다’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여기서 ‘능력’이란 단순히 찍히는 수입이나 현재 재산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수컷으로서의 생존본능이나 위기 대응 능력을 함의하는 것이다.

 

그것조차 모른 채 저 말을 자신의 ‘이상한 상태’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쓰기 때문에 그런 사단이 나는 거라고 본다. 온실 속에서 살 거면 절대 온실 밖으로 안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나. 특히 연구원 익사사건의 경우는 40살 가까이 공부랑 일만 하다가 잠깐 옆길로 샜는데 거기서 독사 만난 경우인 것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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