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좌파가 결코 진보일 수 없는 이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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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주동식

 

-한국의 좌파, 진보에 포함할 수 없고 진보의 철학과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관념론자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이 세계가 운동하고 변화하는 불변의 법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

-쁘띠 출신 좌파지식인들 “우리가 청춘을 바친 대의명분이 잘못됐다? 결코 그럴 수 없어”

 

 

도시화가 미래의 문명화 열어가는 통로

 

제가 대깨문 좌파들의 농촌 동경, 조선 복귀 정서 등을 자주 비판했는데, 이 대목에서는 좀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제가 비판하는 현재의 좌파들 특히 한국의 좌파들은 오리지널 좌파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도저히 진보의 개념에 포함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그런 진보의 철학과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관념을 가진 자들입니다. 일단 논의의 편의를 위해 좌파=진보라는 단순한 등식에 근거해서 말하겠습니다. 좌파(진보)는 본질적으로 유물론자들입니다. 유물론이라는 건 이 세계를 과학으로 해석한다는 의미입니다.

 

관념의 세계에서는 과학의 법칙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순식간에 저 우주의 끝까지 갔다올 수도 있고,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습니다. 물질적 조건을 극복하는 것을 가장 선한 가치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리지널 진보는 저런 관념론의 세계를 극혐합니다. 마르크스가 일생에 걸쳐 공부하고 사색하고 모색한 것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절대적인 법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질과 과학의 세계였고, 결코 관념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관념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운동의 법칙이란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질의 세계는 다릅니다. 대기압에서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고, 만물에는 인력이 작용합니다. 높은 곳에서 점프하면 자연낙하합니다. 이 법칙을 벗어나는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NL주사파가 남한 좌파 운동권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관념론적 편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즉,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뉴튼 물리학처럼 이 세계가 변화하고 운동하는 그 철의 법칙, 불변의 법칙, 반드시 실현될 수밖에 없는 그 법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계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나아가 그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세계를 물질을 기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세계를 물질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곧바로 물리학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리학의 운동법칙은 인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역사의 법칙으로 전환합니다. 물질의 법칙, 물리학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 세계와 대립 투쟁하는 노동을 통해 인간은 집단을 만들고, 사회를 만들며 그런 집단과 사회의 변화 발전 과정이 바로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경제와 자본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도 물질로 이루어진 이 세계가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 메커니즘이 바로 먹고사는 경제의 문제이고,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자본의 논리를 구성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래 진보란 유물론자를 의미했고, 과학의 법칙을 믿는 자들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물질의 법칙이 세계와 인간세상에서 관철되는 법칙을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유물론이라는 이론으로 체계화한 마르크스가 바로 진보의 대표적 사상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 고전적 진보주의자들의 이론에서는 문명화가 가장 중요한 진보적 성과입니다.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문명화가 가장 중요한 진보의 성과이거나 그 증거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적 가치와 대비되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진보적 가치 즉 인권이나 복지, 노동, 환경, 여성 등도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저 생산력의 발전이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그것이 총체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로 귀결되는 것이 문명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를 뒤흔들었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실험은 결국 처절한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20세기 후반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그것입니다. 역사의 종언이 선포되고, 좌파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만 굴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3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째, 현실 사회주의 진영은 거의 무너졌지만, 이념과 이론 나아가 오랫동안 서구문명의 근저에 자라잡아온 정서적 좌파, 문화적 상징자산은 그렇게 간단히 정리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이 이념적 이론적 사회주의 자체의 정당성을 근저에서부터 부정하는 증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의 착오 정도로 치부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찾자는 움직임이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꾸준히 전개됐습니다.

 

이른바 PC주의가 이런 움직임의 가장 주요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PC주의가 오리지널 좌파,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배격했던 관념론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새로운 좌파의 흐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문화적 상징자산을 내세워 좌파 세력화에 나서는 움직임은 표면적으로 진보 좌파를 대표하지만 그 본질은 가장 반진보적인 반동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현실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들 좌파들이 사실상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좌파 진영의 지식인들은 부르주아 또는 쁘띠부르주아 계급 출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최소한 90% 이상의 비중일 것 같습니다. 이들은 도그마나 당위로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그냥 이해하거나 암기했을 뿐, 그 패러다임으로 자신의 세계관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도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말하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계급성에 기반을 둔 좌파 의식을 가진 쁘띠 인텔리겐차들은 현실 세계의 실천이 가져다주는 뼈아픈 반성(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제대로 접수하지 않고, 소지식인 특유의 아집에 사로잡힙니다.

 

“우리가 청춘을 바친 대의명분이 틀릴 리 없어. 우리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인정할 수는 없어.”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NL주사파가 좌파 운동권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더욱더 이런 편향이 강해졌습니다. 주체사상은 한마디로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그 철의 법칙 즉 물질적 과학성을 거부하는 사고체계입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죠. 여기서 사람이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조건에 대비되는, 그 조건과 구별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주관적인 의사 결정체를 말합니다. 이게 사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그렇게도 혐오했던 관념론이 좌파 사상이라는 사기성 외피를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겁니다.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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