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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인철
-유권자들을 극단적인 대립으로 몰고가는 분열이나 편가름은 공화국의 지속 어렵게 한다
-개인의 우위 전제로, 유토피아의 헛된 이상보다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잘 유지해야
-특정 성향의 감별 기준으로 고립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 열어두고 멀리 보는 자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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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종편 채널에서 처음 등장한 정치 시사 프로그램의 인기는 유튜브 방송의 등장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원래 편가르기 싸움은 그게 픽션이건 넉픽션이건 관심있는 주제다. 시청자들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메시지만을 일방적으로 접하게 되어서 확실하게 편가르기에 가담하게 되고 이는 정치를 더욱 대립 상황으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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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여론으로 움직이는 민주정에서 정치적 편가르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극단적인 대립으로 몰고가는 분열이나 더욱 세분화된 편가름은 공화국의 지속을 어렵게 한다. 사회 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의해 갈려진 정치적 입장을 분파적 정체성의 본질로 삼는 정체성 정치는 정치적 편가름을 심화하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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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분열의 씨앗을 계속해서 만들면서 편가름의 현장을 중계하면서 즐기는 극장 정치는 사람들을 더욱 갈라서게 하며 각각의 유권자 그룹들을 그들만의 에코 챔버에 가두고 대립을 격화시킨다. ‘누구는 누구 편이냐’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편가름을 위한 감별의 기준이 제시된다. 그렇다면 보수라는 정치 성향은 무엇을 기준으로 가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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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적과 동지는 이념 지향성으로 구분되기 전에 실제 삶과 정치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적과 동지는 상대가 규정한다. 실제로 전장에 임해서 싸우고 있는 상대방이다. 이념 지향성을 내세우면서 내 편과 상대편으로 감별하는 경우란 대부분 후방에서 내 편끼리의 권력 투쟁인 경우이거나, 극장 정치의 관객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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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관객의 편가르기는 동호회의 구성원을 확보하거나 유튜브 시청자를 확보하는 그런 맥락이다. 이념에 의한 명쾌한 구분은 어렵기에 대부분은 사람 중심으로, 즉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편가르기할 수밖에 없다. 같은 지역 사람, 여러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의 구분이 오히려 분명하다. 명분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이념 지향성이 실제 구분의 기준이 되는 경우에도 그 구분의 진짜 기준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경험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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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보수주의는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다. 정치적 변화에 따라 형성된 라이벌에 대하여 그때그때의 대응 논리에 기초한 상대적인 입장이라는 설명이 적절하다. 프랑스 혁명을 반박한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는 이성의 한계에 대한 자각 그리고 영국 공화정의 헌정질서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에 초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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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남시욱 선생이 <한국진보세력연구>에서 전쟁의 경험을 한국 이념 갈등의 특징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반공주의는 침략과 전쟁이라는 현실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경험이 논리에 우선한다. 완벽한 시장주의는 이상이고 혼합경제체제라는 현실에서 시장우선의 원칙은 비개입의 자유에 대한 요청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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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애국주의는 공화정이라는 법적인 실체를 통해서 규범의 근거를 명확히 한다. 하지만 애국자는 많아도 애국주의는 찾기 어렵다. 프랑스공화국의 마리안느가 표상하는 낭만주의적 동기가 사라지고 신이 없으며 시민의 덕성을 기대할 수 없는 현대에서 애국주의는 찾기 어려운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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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자유주의는 보수의 가치라기보다 진보의 주장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는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로서 개인의 탄생에서 출발한다. 자유와 평등은 개인주의가 추구하는 지향인데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그것이 권리로서 주장되는 것이어서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는, 그래서 실천을 위한 절차가 필요하고 상대방 또는 국가에게 의무를 지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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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민주정의 위기의 이유로 지적되는 정체성 정치는 세분화된 권리와 인격의 결합으로 권리 주장의 해결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근대적인 개인은 보수와 진보라는 틀로써 자유민주정을 함께 운영하여 왔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라는 책은 자유민주정의 실패 현상을 통한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보면서 향후의 자유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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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개인을 공화국의 구성 단위로서 우위에 놓은 것을 전제로 하고, 유토피아의 헛된 이상을 꿈꾸기보다는 현실에서 겪는 경험에 비추어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장치를 잘 유지하여 권력을 제어하면서 현실에서의 자기 생활의 기반을 지켜나가는 것, 그리고 공통의 경험으로서는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 70년의 역사를 통해서 체험한 공화국의 경험 정치의 현장을 지켜나가는 것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보수주의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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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는 이런 기반을 지켜나갈 신뢰 여부가 기준이 된다. 특정 개인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그 사람을 오히려 배제하는 것이 견제와 균형의 측면에서 필요할 것이다. 짧은 과거의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한 찬반 논의에 의하기보다는 개인 및 공통의 긴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적 태도가 우선적이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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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스스로를 에코 챔버에 가두는 특정 성향의 몰입이나 감별 기준으로 자신을 고립시키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멀리 바라보는 그런 자세를 취해야겠다. 그러할 때에 관객으로서의 정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현재의 상황의 타개에 참여하는 작은 기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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