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최장집 교수를 존중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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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정석

 

-87년을 민주화 달성 원년으로 삼지만, 임정 헌법에도 역시 민주화 사상적 기저 발견할 수 있어

4.19, 유신반대, 87체제를 만든 넥타이 부대는 학원가와 노동계에 구축된 주사파 종북과 달라

-이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진보의 리베랄적 회복을 요구하는 것. 대표적인 학자가 최장집 교수 

 

 

우리는 87년을 민주화 달성의 원년으로 삼지만, 사실 민주화 운동은 4.19와 그 이전의 48년 해방공간에서도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1919년 3.1만세 운동의 이념, 그리고 임시정부의 헌법에서도 역시 민주화의 사상적 기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바탕에는 다름아닌 ‘자유주의’가 있다. 우리는 이런 자유주의를 해방 후 미군정의 영향이나 90년 이후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넥타이 부대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진보의 리베랄적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최장집 교수 같은 이들이다.

 

1919년 임시정부 헌법 기초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신생 독립국을 구상했는데, 민주정체로서의 독립국가 건설이 당시 이미 대세가 되어있었던 데는 19세기 말 이래 자유주의의 수용을 조선 근대화의 대안으로 추진하였던 독립협회 등, 개화 지식인들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48년 건국헌법은 1919년에 선포되어 5차 개정에서 공산주의 요소를 털어낸 임시정부 헌법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영향이 아니었다. 당시 건국헌법을 놓고 ‘대통령 책임제’에 상당한 논쟁이 벌어졌다. 반대 측의 주장은 ‘대통령제가 독재와 전제주의를 불러온다’였다. 이에 대해 헌법 심의 과정에 참가한 진헌식 의원은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책임제는 곧 독재를 초래한다는 오해가 있는 듯하나 헌법에 의하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입법기관이 엄존한 이상 대통령은 여하한 의미와 여하한 형태에서도 군주주의에서나 같은 전제 또 는 독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은 당시 제헌의회의 분위기에 민주화에 바탕이 되는 자유주의적 흐름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이런 자유주의는 나와 같은 우파에서 말하는 개인주의에 바탕한 ‘귀결주의적 자유주의’, 즉 리버테리어니즘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결합하고 있었고,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이승만을 비롯해 김구, 조소앙, 장준하같은 인물들이었다. 여기에는 공산주의에서 전향한 조봉암도 있다.

 

그러다가 1950년 6.25를 계기로 자유주의 이념이 아니라, 반공이념으로 결합된 극우적 성격의 민족주의자들이 이승만 세력의 중심을 형성하면서 여기에 저항한 ‘리베랄 내셔널리즘’이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 진보 이념을 형성해 온 것이다.

 

이들이 4.19의 주역이었고, 70년대 유신반대 투쟁의 주역들이었으며,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 이들이 87체제를 만든 넥타이 부대였다. 이들은 80년대 학원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구축된 주사파 종북들과는 다르다. 이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진보의 리베랄적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최장집 교수 같은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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