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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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대호

 

-민주화를 ‘다수 지배 체제’ ‘대통령의 전횡방지’ ‘평화적 정권 교체’ 정도로 협소하게 해석

-억압적 국가·권력과 자본·재벌과 문화·관습에 억눌려있던, 욕구와 불만 거리낌 없이 발산

-조선의 화이질서와 사농공상 위계서열 체화. 외교·안보와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 무관심

 

 

4)1987체제의 유전자

 

1987체제의 빛과 그늘, 성과와 한계는 그 유전자(핵심가치) 속에 대부분 내재되어 있다. 1987체제의 그늘은 외부환경, 즉 국제정치지형이나 국제통상질서의 악화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어릴 때 입던 옷이 맞지 아니하듯이, 빛을 만든 주요 요인들이 주체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재구성, 재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7체제를 만든 첫 번째 핵심가치(유전자)는 민주화다. 이는 반독재(대통령의 전횡방지), 다수 지배, 부정선거 방지(공명선거), 장기집권 방지(평화적 정권교체)로 등치되었다. 1987체제 주도세력도, 그 견제·대항(주류 보수) 세력도 민주화를 ‘다수 지배 체제’ ‘대통령의 전횡방지’ ‘평화적 정권 교체’ 정도로 협소하게 해석하긴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1987체제를 관통한 민주화 개념은 ‘주권자 국민이 스스로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었다. 보충성 원칙에 따라 시장, 사회·공동체, 지방, 개인의 자유, 자조, 자치, 자율책임의 확대, 강화가 민주화라는 생각은 흐릿했다.

 

민주화를 협소하게 해석하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치가 통할하는 국가·권력 자체가 너무나 비대한 데서 연유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대통령만 제왕적인 것이 아니다. 국가 그 자체가 제왕적이다. 국가를 이루는 제도 단위인 대통령, 행정부(직업공무원과 지자체장), 국회(의원) 사법부(법관) 등이 다 제왕적이다. 하지만 보수나 진보를 초월하여 제왕적 국가 그 자체를 개혁하려는 시도 보다는—노무현은 그래도 노력이라도 하였다–선거에 승리하여 제왕적 국가의 주인이 되고자 하였다. 노무현의 대척점에는 문재인이 있다.

 

1987체제의 두 번째 유전자는 억압적 국가·권력과 자본·재벌과 문화·관습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욕구와 불만을 거리낌 없이 발산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내 자유(표현, 학문, 사상, 단체행동, 행복추구 등), 내 권리(노동권, 주거권, 재산권, 임차권 등), 내 몫(임금, 연금, 복리후생 등)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1987체제 주도세력에게 정의와 개혁은 억눌린 내 자유, 권리 찾기와 빼앗긴 내 몫 찾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식의 바탕에는 자신들이 부당하게 빼앗기고 억눌려 온 힘없는 약자·피해자요, 자명한 개혁파 또는 그 대변자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1987체제 주도세력은 민주화를 ‘다수 지배 체제’ ‘대통령의 전횡방지’ ‘평화적 정권 교체’ 정도로 협소하게 해석했다.

 

그러니 세계와 더불어 공존공영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번영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통합 가능하고, 환경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와 자원 분배 체계에 대한 고민이 있을리 없었다. 사회적 유인보상체계와 국가 지배운영구조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1987체제 주도세력은 새로운 발전체제에 대한 고민 없이, 세계가 경탄한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기존 체제에 대한 부정, 반대, 파괴로 일관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신테제Syn-these, 즉 새로운 발전체제=국가플랫폼 없이 안티테제만 있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발전체제 개념 없이 특정한 가치와 특수이익 집단의 권리, 이익을 확대, 강화하면, 부분적 개선(상향)이 전체적 퇴행으로 돌아오는 합성의 오류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과 손발이 맞지 않는 자승자박 말이다. 오른손으로는 일자리를 만들면서 왼손으로는 일자리를 파괴하고, 일자리가 생길 만한 산업생태계에는 제초제와 산성비를 퍼붓고는 한다. 한 손으로는 불평등을 완화한다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소득주도성장론이 대표적이다. 이로부터 청년과 성밖 사람들은 쫄아든 물에서 아귀다툼하는 물고기떼 신세가 되어 고통과 불만을 토해낸다. 대체로 불공정을 호소하는데, 이는 대체로 준법=반칙 엄단 요구이다. 좋은 자리(지대의 성채)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 잘만난 사람이 부당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국 아들과 딸의 입시 부정에 청년 대학생들이 분노한 이유이다.

 

1987체제의 세 번째 유전자는 조선의 화이질서와 사농공상의 위계서열을 체화한 조선 양반사대부 외에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외교안보와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정부는 대북, 대일, 대중 정책에서 동서고금의 외교안보 상식과 완전히 충돌하는 언행(설마주의, 온정주의 등)을 꺼리낌없이 하였다.

 

시장, 경제, 고용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1986~87년 민주화투쟁과 1987~88년 노동자 파업투쟁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가 저달러·저유가·저금리(3저)가 중첩되어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로 인해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한국경제는 정치가 무슨 짓을 해도 별 영향을 받지 않고 거침없이 성장한다는 관념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이후 경제위기를 부르짖은 사람들은 대체로 거짓말쟁이 늑대 소년처럼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부터 경제자유화가 아니라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시대정신으로 간주하게 된 것도, 외환위기 때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대체로 경제가 거침없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1987체제 주도세력 중 좀 개명된 지식인들도 시장(공정거래)질서를 바로잡고, 노동권을 강화하고, 복지를 확대하고, 재벌대기업의 갑질을 엄단하면 불평등과 양극화도 해소되고 경제도 자동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외교안보에 대한 무지는 1990년을 전후하여 소련과 동구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하고,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한국과 경제협력(대중국 투자와 중간재 공급 등)을 갈구하였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으로 인해 남북간 체제대결은 사실상 끝났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대한민국 땅에서 살면서 몸에 밴 논리와 감성을 투영시켜 이해하려다 보니, 대한민국을 부유한 형으로, 북한을 가난하고 깡마르고 존심 센 동생처럼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낌없이 퍼주고 안아주면 동생이 형의 품에 안길 것이라는 낭만적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1987체제의 네 번째 유전자이자 가장 파괴적인 유전자는 1980년대 초 ‘해전사’식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이다. 이 핵심은 식민체제, 분단·정전체제, 국가주도 발전체제 내지 건국과 산업화의 그늘을 해소하는 것과 그 주도 세력을 청산, 척결, 궤멸 시키는 것을 시대정신으로 잡은 것이다. 조선체제의 그늘도 안중에 없었고, 세계사적 기적(빛)을 낳은 구조, 동력과 리더십도 안중에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실사구시도 없었고, 세계사와 동아시아사 속에서 조선과 남북한 역사를 조망하지도 않았다. 근현대사를 반외세-반봉건-반독재투쟁의 역사로 보기에 기독교와 일본이 주역인 문명발전사를 파묻었다. 1987체제 주도세력은 대한민국 흑역사의 실상과 원인을 냉철하게 성찰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고, 상대는 불리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왔다. 그래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주류 보수세력을 정치적으로 탄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왜곡하여 주류,보수를 악마화 하였다.

 

1987체제 하에서 출범한 정부 7개 중에서 역사인식이 가장 (1980년대)운동권스런 문재인정부는 자신의 계보와 핵심가치를 동학(반외세 반봉건)-항일-민주-개혁-평화-진보-노동(민중)-약자/피해자로 놓고, 자유보수를 노론-친일-친미-분단-냉전-독재-기득권-자본(재벌)-강자-가해자로 놓는다. 어느 나라나 있는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차이를 국가-시장-개인·가족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 관계에 대한 이견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 정사, 도덕-부도덕, 비기득권-기득권, 개혁-적폐로 이해하기에 증오와 적대 혹은 대립과 갈등이 극심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1987체제 주도세력, 특히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주로 휘두르는 무기는 과거 흑역사에 근거한 도덕 담론이다. 불평등 양극화 등 많은 모순부조리를 힘센 악당, 즉 적폐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들에 의해 힘센 악당=원흉=적폐로 지목된 존재는 노론-친일-독재-분단·냉전의 맥을 잇는 부정부패-기득권(재벌, 보수언론, 보수 사법기관 등)의 대변자인 보수 정치집단, 즉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이다.

 

이들 청산, 척결, 궤멸을 위해 돌팔매질을 하면 자동으로 민주,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의 그늘을 침소봉대하고 민주화 과정과 보수 정권하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로 인한 희생자·피해자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한다. 이 작업은 현재 동학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여기에 대한 주류보수의 대항 담론은 좌빨·종북·연방제통일 담론과 위선, 독선, 무능 담론이다. 동시에 이승만, 박정희의 그늘에 대한 무시와 그 빛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다. 그런데 메신저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언론과 SNS 화력 차이로 인해, 무엇보다도 현실의 모순부조리(격차, 결핍, 불안, 불공정 등)의 원흉으로 집권 기간이 긴 주류 보수 세력을 지목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기에 좀체 먹혀 들지 않는다.

 

도덕 담론은 한마디로 악당(거악) 원흉론이다. 동시에 개인 완성(인격 도야) 만능론이다. 권력자 권력집단이 선하면 만사형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선 시비를 부를 수 밖에 없다. 도덕 담론은 인간을 규율하는 제도(유인보상 혹은 징벌 체계), 시스템, 구조애 대한 외면 혹은 무지에 뿌리를 박고 있기에 무능이 필연이다. .

 

<연재 리스트>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1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3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4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5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6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7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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