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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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대호

 

-1987년 이후 진보, 평등, 노동, 시민, 인권, 복지와 대북 유화정책 주창한 세력들의 공세국면

-과거 정부의 인권유린·부정부패 등 고도 성장의 그늘과 역사에 대한 다른 해석이 공세의 근거

-조선 선비들이 조광조를 사표로 삼는 것과 국회의원들의 김구 숭배는 정신문화에서 일맥상통

 

 

3) 우리가 서 있는 정치 지형: 1987체제

 

체제란 사람이나 국가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고, 유인하고, 정형화하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고한 구조이다. 문서화된 강제적 규범인 헌법 및 법률과 그 해석(법원의 판결과 헌재의 결정),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핵확산금지조약 등 국제조약과 미중 갈등으로 대표되는 국제정치·경제질서가 대표적인 구조이다. 습속習俗은 문서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헌법, 법률, 국제조약과 정치지형(정치적 대립구도와 역관계)의 어머니로, 역사인식(집단기억), 감정반응, 정신문화, 종교와 이념과 생활양식의 총화이다.

 

한국의 거시 정치 지형을 살피려면 기본적으로 정신문화의 총체인 습속과 국가주권의 한계인 국제정치·경제질서와 인력기술의 한계인 지리, 풍토(자연환경)를 살펴야 한다. 그와 더불어 가치 배분의 3대 장場인 사회·국가·시장와 법률(권력구조, 선거제도, 정당체제, 국회운영방식 등)과 행정명령과 법해석 등을 살펴야 한다.

 

1987체제는 1987년 10월 29일자로 개정되고, 1988년 2월 25일자로 시행되어 2019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규율해 온 제10호 헌법에 의해 지지되는 정치체제이다. 하지만 1987년 헌법이 1987체제를 낳은 것이 아니라 1987체제가 1987년 헌법을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1987체제의 유전자 내지 핵심 특성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지배적인 정신문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지형, 즉 정치적 대립구도와 정치세력 간 역관계 등에 있다.

 

헌법 조문과 기본권(재산권, 자유권, 노동권 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대법원의 판례, 하위 법령과 정부의 유권해석, 정부조직과 예산 등은 1987체제의 유전자가 외화된 것이다. 1987체제의 특성은 1987년 헌법에서 새로이 삽입된 조항, 대표적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경제민주화 조항, 헌법재판소 관련 일부 조항이나 삭제된 조항의 영향만 분석하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87체제를 만든 역사·현실 인식을 포함한 정신문화와 정치지형이 오래 전부터 있었어도 사문화되었거나 다르게 해석하던 조항을 새롭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1987체제를 만든 정치지형은 각각 그 내부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보수(우파) 대 진보(좌파), 영남 지역주의 대 호남 지역주의, 주류 대 비주류가 기본 대립 구도이다. 보수(우파)와 진보(좌파) 혹은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기준은 대한민국 역사의 빛과 그늘에 대한 인식, 북한과 남북관계에 대한 태도, 노조와 노동권, 재벌과 경제규제에 대한 태도 등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승만이 아닌 김구를 존경하는 것은 정치에서 결과(책임) 윤리가 아니라 동기 윤리를 크게 치는 태도의 발현이다.

 

세계 보편적인 기준인 국가-시장-사회-개인•가족 간의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의 관계는 부차적이었다. 대체로 1987년 이후 30여 년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문익환, 김근태, 전태일 등으로 상징되는 민주, 민족, 자주, 진보, 평등, 노동, 시민, 인권, 복지와 대북 유화정책을 주창한 비주류 세력들의 정치적, 이념정책적, 도덕적 공세국면이었다.

 

공세의 근거는 고도 성장의 그늘(지역 계층 격차와 빈약한 복지)과 과거 정부의 헌법과 법률 위반(인권유린, 부정부패, 각종 절차 위반)과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이었다. 헌법에 명기한 개인의 자유, 권리와 국가의 책임, 의무와 야만적 고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민주적 절차 위반, 정경유착,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이 정치적, 이념정책적, 도덕적 공세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었다.

 

1987년 이후 30여 년은 민주·진보·노동·시민·민족·인권•복지의 기치를 든 운동(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변화와 개혁의 공세를 펼쳤고, 이전의 집권·주류보수 세력은 여기에 수세적으로 맞섰다. 예컨대 경제민주화-재벌개혁, 지역균형발전(행정수도이전 등), 복지국가-격차해소-최저임금 인상, 여권과 노동권 등 기본권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거사 진상규명과 5.18과 4.3 등 억울한 희생자 신원, 반일 마케팅 등은 민주, 진보가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주류, 보수는 단지 쟁점 없애기나 물타기 차원에서 이를 무분별하게, 때론 정치공학적으로 수용하였다.

 

정치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언어들도 대체로 주도권을 쥔 전자의 방어, 대항 언어로 등장했다. 전자가 민주를 부르짖으니 후자는 자유를 내세웠다. 민주자유당 이후 주류 보수 정당의 명칭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이었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존재하였다. 민주는 물론 자유조차도 이승만과 박정희(유신)독재를 비판하는 프레임이었다.

 

•1951년 창당된 자유당에 합류한 이승만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만든 정당의 이름도 통일노농당이었다.

 

보수 역시 주동적으로 쓴 단어가 아니었다. 이 역시 1987년 이후 급진적 변화의 움직임에 대한 대항 단어로 많이 써였다. 1990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보수대연합시도로 언론에 회자되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진보는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낼 때 썼지만 그 이후부터는 민주당 계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언어가 되었다.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는 세력은 진보 내에서 극소수이지만, 스스로를 우파로 규정하는 세력은 자유, 보수 내에서 다수다. 우파와 애국은 자유, 보수 세력이 주도적으로 만든 단어인데, 민주, 진보 세력은 그에 대한 대항언어를 만들지 않고 외면, 무시 전략을 취해왔다. 그래서 그리 널리 쓰이지 않는다.

 

이렇듯 주류 보수 세력은 민주 진보의 공세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는데 급급했다. 담대하고 공세적인 국가 대개혁 방략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민주, 진보세력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주류 보수의 한 블록(집단)을 청산, 척결 하거나 거리 두기를 해왔다.

 

이승만은 박정희가(그래서 김구를 추앙하였다), 전두환은 노태우가,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이 적극적으로 청산하였다. 하지만 노무현은 김대중을 청산하지 않았다. 비록 대북송금특검을 하고,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긴 했지만…..그 결과 2007년 여의도통신이 국회의원 299명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답변 263명, 미답변 36명) 백범 김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데 반해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단 한명도 존경하는 인물로 선택하지 않았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87(2007. 5. 29) PD저널 기사

 

당시 김구를 1순위로 선택한 의원은 79명인데, 2, 3순위까지 합치면 89명이 선택하였다. 김구는 모든 정당, 성별, 지역, 연령의 지지(?)를 골고루 받았다. 이 조사에서 존경하는 인물 1순위 선택자는 이순신(31명), 정약용(16명), 세종대왕(10명), 아버지(8명), 링컨(7명), 간디(6명), 안창호, 전태일, 장준하, 안중근, 루즈벨트(이상 4명), 문익환, 박정희, 신채호, 김대중, 정조대왕, 만델라, 대처(이상 3명) 등 순이었다.

 

박정희(김성조, 김태환, 송영선)와 김대중(김현미, 이낙연, 정동채)은 각 3표를 얻었다. 박근혜 의원은 아버지를 선택했기에 박정희를 선택한 의원은 실제로는 총 4명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존경한다고 밝힌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은 1명(서갑원)이 선택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선비들의 사표가 (개국 공신이 아니라) 조광조가 된 것과 2007년 당시 의원들의 사표가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된 것은 정신문화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결과(책임) 윤리가 아니라 동기 윤리를 크게 치는 태도가 그 중의 하나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거의 견원지간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이전부터 친이와 친박은 서로 반목하고 배척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친이 핵심 정두언, 정태근 등을 친이 실세 이상득이 배척하고 탄압하는 양상을 보였다. 박근혜의 집중 탄압을 받은 김무성, 유승민 등은 박근혜 탄핵에 앞장 섰다. 박근혜라는 부도덕한 권력(집단)을 치거나 거리를 두어, 도덕적인 보수 내지 정통 보수의 대표 주자로 등극하려고 하였다. 주류 보수의 질긴 뺄셈 정치는 중도외연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광장 세력과 거리두기 등으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1987체제 30여년은 기본적으로 민주, 진보가 반독재 담론, 뒤틀린 역사 바로잡기 담론, 도덕(악당) 담론, 공정 담론을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주류 보수는 동네축구처럼 이슈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방어, 추수, 미봉, 자해, 분열 정치를 반복하면서 몰락해 왔다고 할 수있다.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정부 출범, 그리고 4.15 총선 결과는 짧게는 30년, 길게 보면 70년에 걸친 민주·진보·노동 세력의 승리의 축포이자 공세의 절정이다.

 

<연재 리스트>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1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3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4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5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6

자유책임 시민혁명 어떻게 이룰 것인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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