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문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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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저임금에 기반한 경제개발 정책으로 도시의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이 광범위하게 존재

-공공·대기업 정규직 등 공식부문과 중소하청기업·비정규직·외국인 등 비공식부문 격차

-‘인싸’와 ‘아싸’의 격차, 4차 산업혁명 따른 디지털 혁신으로 더욱 강화될 가능성 높아져

 

 

1.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의 신분제국가가 된 대한민국

 

근·현대 한국사회는 사회경제적으로 3번에 걸쳐 커다란 변곡점을 거쳤다. 첫 번째 변곡점은 1895~1960년까지 식민지 시대와 일제로부터의 해방,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나타났다. 이 시기는 명목적으로도 신분제가 폐지(1895년 갑오경장)되었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밑바닥 뿌리까지 봉건적 신분질서가 완전 해체되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은 봉건적 신분질서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완전히 파괴시켰다.

 

두 번째 변곡점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경제개발 정책이었다. 산업입국을 내세운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은 기존의 농촌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도시화를 가져왔으며, 도시에서 공식부문과 비공식 부문이라는 두 갈래의 길을 만들어냈다. 저임금에 기반한 경제개발 정책으로 도시의 공식부문과 함께 비공식부문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때까지 격차는 크지 않았다. 언제든 공식부문으로의 진출이 가능했으며, 안정성을 제외하면 공공분야와 대기업 노동자들,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도 크지 않았다.

 

문재인정권은 비정규직, 임시직, 다문화 외국인 노동자와 공식부문의 격차를 더 벌려놓았다.

 

세 번째 변곡점은 1997년에 갑작스레 불어 닥친 IMF구제금융 사태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권은 자본시장의 국제화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더욱 강화하였고, 그로 인해 박정희 시대에 배태된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의 격차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지금 청소년들의 최고 소망이 ‘공무원’인 것에서 드러나듯이 공공분야,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공식부문과 중소하청기업, 비정규직, 임시직, 외국인 노동자라는 비공식부문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금수저, 흙수저 논쟁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로 이야기되고, 그 격차는 해소가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의 격차가 좌파정권에서 더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서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더욱 더 커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 진행된 최저임금제 과속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폈지만, 그 혜택은 귀족노조로 조직화된 공식부문 노동자(공공부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아가, 비공식부문 노동자(비정규직, 임시직, 다문화 외국인 노동자)와의 격차를 더 벌려놓았다.

 

이러한 ‘인싸’와 ‘아싸’의 격차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디지털 혁신으로 더욱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사회적 ‘인싸’에 들어가냐, ‘아싸’에 남느냐는 것은 평생을 좌우하는 신분질서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청년들이 널려있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일자리를 마다하고 공무원과 공공부문 정규직, 대기업 취업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목숨을 걸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인천국제공항공사 하청 비정규직을 직접고용 정규직 편입을 특혜라고 하며 반발하는 이유도 이런 사회경제적 기반 때문이다. 즉, 공식부문으로의 진입이 좌절된 청년층의 반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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