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년병(6) 이젠 꼬마 아닌 우리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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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길도형

 

-소년보다 어려 보이는 적병들 땡볕에 그을리고 땀으로 범벅. 꾀죄죄한 얼굴로 두려움에 떨어

-소년의 승리, 7연대와 6사단의 승전. 국군이 개전 이래 처음 북괴군 선제 타격하여 거둔 승전

-대통령이 부대표창과 함께 7연대 전 장병의 일계급 특진 지시. 이제 길 이병으로 부르면 된다

 

 

적은 전날 병암리 부근 삼거리 도로상에서의 총격전 대치 끝에 3대대 병력이 철수하는 것을 보고 7연대가 음성 방어를 포기하고 전면 후퇴한 것으로 판단했다. 용원리 저수지 주변에서의 주간 휴식을 목표로 천천히 야간 이동을 하던 적 48연대 주력은 날이 밝은 무렵 동락리를 지나 경계를 소홀히 한 채 용원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적은 무방비 상태로 3대대의 정면과 측면 공격에 이어 2대대에 의한 후방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일대 혼란에 빠진 적병들이 차량과 각종 야포, 장비들을 버려둔 채 흩어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차량에서 뛰어내리는 적병들을 향해 M1 소총을 난사했다.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적병들을 조준 사격 대신 총구 끝으로 쫓으며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여덟 발들이 클립탄창이 갈아 끼우기 무섭게 튀어나갔다. 중대원들이 도주하는 적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소년도 병사들 속에 섞여 적들을 쫓아 달렸다.

 

무기를 팽개치고 달아나던 적병들이 총격을 받고 속절없이 쓰러졌다. 도주를 멈춘 적병들이 곳곳에서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 북괴군 연대 주력을 싣고 온 도로상의 차량들과 야포며 각종 장비들이 고스란히 7연대의 전리품이 되었다. 그 중 대부분의 무기와 장비들이 소련제란 사실이 밝혀졌다. 소련제 무기와 장비들이 대전을 거쳐 유엔으로 보내져 북괴의 남침은 소련의 사주와 지원 하에 이루어졌음을 증명했다.

 

6.25 당시 북한군의 모습.

 

중대원들이 항복한 적병들을 생포해 와 그들이 타고 온 차량들에 탑승시켰다. 소년은 적병들 중에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병사들이 땡볕에 그을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꾀죄죄한 얼굴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어린 포로는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북괴군 군관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이 종간나새끼, 괴뢰군 앞에서 눈물 보이지 말라고 했지? 남조선 해방전쟁에 나선 위대하신 수령님의 전사가 울면 쓰갔어?”

 

어린 포로가 울음을 그쳤다. 그 얼굴에는 포로가 된 두려움보다도 군관의 질책으로 인한 공포가 확실히 더해 보였다. 선임하사가 군관을 제지하며 소리쳤다.

 

“닥쳐! 당신은 지금부터 포로야. 포로면 포로답게 행동해. 코흘리개 어린애들까지 끌고 와 해방전쟁? 동포들 등골이나 빼먹던 김일성이 주구 주제에 저 어린애들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군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제야 자신이 포로 신분이라는 것을 확인한 듯 뭐라 항변할 것처럼 하더니 입을 닫았다. 소년은 중대 고참 병사의 ‘코흘리개 어린애’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따지고 보면 북괴군 소년 병사보다 키만 컸지 자신도 소년병이었다. 그것도 정식 군인이 아닌! 그런 한편으로 자신은 스스로 원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에 북괴군 어린 병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안 된다는 것이 소년 나름의 자부심이었다.

 

포로가 된 적병들이 그들이 가져 온 각종 야포며 장비들과 함께 임시수도인 대전으로 실려 갔다. 승리였다. 소년의 승리였고, 7연대의 승전이었다. 국군 제6사단의 승전이었고, 대한민국 국군이 개전 이래 처음 북괴군을 선제 타격하여 거둔 승전이었다.

 

소년은 춘천 116고지 전투에서 맛봤던 승리와는 다른 희열이 느껴졌다. 소년은 적병들이 자신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하던 순간, 그 낯선 상황에 멈칫했다. 같은 사람이어도 상황에 따라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총으로 적병을 쏘아 죽일 때는 몰랐거나 와 닿지 않았던 적이란 개념이 항복한 적병들을 통해서 비로소 소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튿날인 7월 7일, 연대장 임부택 대령이 작전지역을 방문했다. 연대장은 부대 승전을 자축하고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대전 임시수도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이 부대표창과 함께 7연대 전 장병의 일계급 특진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연대장의 훈시가 끝나자 7연대 장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쁨을 자축했다.

 

1개 연대를 잃은 북괴군 15사단의 대대적인 반격 또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훈시를 마친 연대장은 각 대대별 방어 진지로의 이동을 재촉했다. 3대대 부대원들이 생극 방면 모도원으로의 진출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도 일계급씩 특진한 병사들은 흰 페인트를 구해 와 철모와 전투복에 갈매기(∨) 한 줄씩 그려 넣으며 승전과 특별 진급의 기쁨을 만끽했다. 아군 사상자가 거의 없는 전투였던 만큼 7연대 장병들의 기쁨은 배가됐다.

 

소년은 중대가 사용할 실탄과 포탄을 수령해서 트럭에 싣고 있었다. 한 고참 병사가 소년을 불렀다.

 

“야 꼬마야, 이리 와 봐라.”

 

소년은 고참 병사에게 달려갔다. 고참 병사가 소년의 철모를 벗겨 들며 말했다.

 

“꼬마야, 너도 갈매기 하나 그려 넣어야지?”

 

그러자 다른 고참 병사가 말했다.

 

“그 애는 정식 군인이 아니잖습니까? 정식으로 입대해서 군번을 받아야 군인 아니겠습니까?”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였다. 중대 선임하사가 지나가다 끼어들었다.

 

“안타깝지만 이 아이는 아직 군인이 아니다. 병적에 올리고 싶어도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아 징병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선임하사님, 그래도 꼬마가 우리 중대에서 함께 생활한 지 3개월 됐습니다. 춘천에서부터 여기까지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 한 전우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어쩔 수 없다.”

 

그러더니 소년의 철모를 벗겨 들고 페인트 붓을 들고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그 붓 좀 이리 줘 봐라.”

 

선임하사는 병사가 건넨 붓에 페인트를 묻히더니 소년의 민무늬 알철모에 갈매기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자, 써 봐라.”

 

소년이 철모를 썼다. 병사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한 마디씩 했다.

 

“그럴 듯한데?”

 

“이젠 꼬마가 아니라 길 이병이라고 불러야겠군.”

 

선임하사가 한 마디 했다.

 

“너희들 다 일계급 특진을 축하한다. 그 동안 정말 잘 싸웠다. 이 아이도 훈련 한 번 받지 못하고 우리와 같이 적과 싸웠다. 그럼에도 일계급 특진 대상이 아니라고 하니 나도 무척 아쉽다.”

 

그리고는 더욱 커진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자, 정식이고 공식이고 뭐가 중요하냐. 우리가 이 아이를 길 이병으로 부르고 전우로 여기면 되지. 안 그런가?”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12중대 병사들에게 소년은 어느 새 중대의 하우스보이가 아니라 피로 맺은 전장의 전우가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소년병 연재 리스트>

(1) 부랑아에서 하우스보이로 (2) 춘천전투 포화 속으로
(3) “너는 지금부터 진짜 군인” (4) 새 M1소총과 철모, 탄띠
(5) 쓰러지는 적병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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