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60주년의 회고와 전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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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영일 전 국회의원

 

-1960년대 중반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25년간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 급속하게 추진

-대학생들 대중흡인력 상실. 전문경영인과 첨단산업 리더들이 관료와 기업의 중추를 구성

-단임제 실현으로 시위 양상도 4.19형의 ‘폭력 수반 대중시위’에서 ‘비폭력적 시위’로 변화

 

 

4. 산업화의 발전과 갈등문제

 

1960년대 중반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거쳐 전두환 정권까지의 25년간 한국의 역사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이 웅변하듯 산업화가 신속히 추진되는 시기였다.

 

박정희는 국민들의 권리 신장보다는 국력배양을 더 앞세우면서 1인 장기집권을 추구했다. 3선개헌과 유신체제가 그것이다. 선거라는 절차와 형식은 유지했지만 국민의 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제약한 조치였다. 반대시위가 대학가에서 끊임없이 펼쳐졌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영향력은 1960년대 초기처럼 대중흡인력과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정을 주도하게 된 신군부는 1인 장기집권의 폐해를 단임제로 대치하고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움으로써 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대학생들은 4.19 성공의 후광을 업고 학내시위를 통해 정부 견제에 나섰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부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한 한국의 새로운 권력층과 중산층을 승복시키기에는 역량에서 한참 뒤졌다. 잘살겠다는 욕망이 민주시민으로 대접받자는 욕망을 압도했다. 산업화가 크게 진척되면서 대학생들은 더이상 국가발전을 견인할 시대의 선두주자가 아니었다. 전문경영인과 첨단산업의 리더들이 관료와 기업의 중추를 이루면서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러나 1인 장기집권에 따르는 독선과 독단은 결국 집권층 내부에서 불만을 야기, 10.26사태를 초래했다. 10.26 이후의 상황은 5.18 광주항쟁을 통해 제2의 4.19 방식을 통한 정권 장악이 시도되었지만 4.19처럼 국민궐기의 전국성(全國性), 호응의 전국성을 얻지 못함으로 해서 한지적(限地的) 투쟁으로 끝났다.

 

국정을 주도하게 된 신군부는 1인 장기집권의 폐해를 단임제로 대치하고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움으로써 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이 결과 민주화를 향한 정치발전은 1987년의 6.29선언과 함께 시작된 87년 체제(5년 단임제 개헌) 이후의 과제로 넘어갔다.

 

단임제 헌법이 통과된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씨 등이 차례로 집권하고 뒤이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면서 정권의 수평적 교체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단임제의 실천에 따라 민주정치가 공고화되면서 시위의 양상도 4.19형의 ‘폭력 수반 대중시위’로부터 ‘비폭력적 시위’로 투쟁방법도 변화했다.

 

•최장집, “한국민주주의의 공고화, 위기, 그리고 새정치질서를 위한 대안”, 헌정지(2020년 2월호) pp.38~40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의 사면 석방 등 폭넓은 포용 정치로 민주화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야스차 뭉크(Yatscha Mounk)는 촛불시위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킨 것은 비폭력시위가 얻어낸 성과의 하나로 예시하고 있다.

 

<4.19혁명 60주년의 회고와 전망 리스트>

4.19혁명 60주년의 회고와 전망(1)

4.19혁명 60주년의 회고와 전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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