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60주년의 회고와 전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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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영일 전 국회의원

 

-1960년 당시에는 4.19혁명이 반독재 민주혁명이라는 평가에 이론의 여지 없었다

-4.19 이후 수립된 정권의 주역은 학생들이 아닌 야당 민주당. 의거(義擧)라고 불러

-민주화를 향한 변화의 과정이었을 뿐 민주화의 전부(全部)이거나 완성이 아니었다

 

 

이 글은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가 지난 6월 19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주최한 4.19혁명 60주년 기념포럼에서 4.19 주역의 한 사람인 이영일 전 국회의원이 발표한 기조연설문입니다. 이영일 전 의원의 허락을 받아 전문을 나누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1. 들어가면서

엊그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한 4.19혁명이 금년으로 어언 60주년을 지났다. 해마다 우이동 국립묘지에서 행해지던 정부주관 기념식도 올해는 중국발 바이러스 탓에 열리지 못한 체 60주년을 보내는 것이 몹시 서운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뜻있는 동문들이 중심이 되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대학 부설 한국정치연구소가 주관, 오늘과 같은 행사를 통해 4.19혁명 60주년의 의의를 다시 되새겨 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주최 측에 감사한다.

 

2. 회고적 관점-혁명이냐 의거냐

4.19혁명의 발발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해왔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 연해서 4.19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변천이 있었다.

 

1960년 4.19 당시에는 4.19혁명은 한마디로 반독재 민주혁명으로 정의(定義)되었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이 부정선거로 독재권력을 연장하려다가 대학생들의 유혈 궐기로 와해되었기 때문에 반독재 민주혁명이라는 평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필자도 당시 대학 3학년생으로서 여러 모임에서 4.19혁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민들이 주권자로서의 자기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게 된 전기가 되었다고 주장해왔다. 당시 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을 명시했지만 국민 스스로 자기가 주권자라는 정체성(正體性)을 갖게 된 것은 4.19혁명이 성공한 뒤부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4.19혁명으로 수립된 정권은 혁명의 주체였던 학생들이 아니고 야당이었던 민주당이었다.

 

그러나 4.19혁명으로 수립된 정권은 혁명의 주체였던 학생들이 아니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었다. 혁명의 주체와 정권의 주체가 달랐다. 이 때문에 당시 집권 민주당은 4.19는 혁명이 아닌 의거(義擧)라고 부르기를 선호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유혈시위로 정권이 교체된 만큼 4.19를 혁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이에 동조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역사에 나타난 혁명을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면서 각성된 지도자들이 위에서부터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von Oben)’과 하층민중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아래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von Unten)’이 있는데 4.19는 이런 선례들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주체가 사회적 계급집단(Social Class)이 아니고 사회적 신분 집단(Social Stand)으로서의 대학생들이 국민적 대의를 위해 궐기, 정권을 붕괴시킨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측면으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von Seiten)’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崔文煥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공개강연에서 측면으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기발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런 논의로 4.19가 혁명이냐 의거냐를 명확히 판가름짓지는 못했다. 오히려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기존 정권을 뒤엎고 집권한 5.16 군사쿠데타와 연계해서 4.19를 파악할 때 그 혁명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3. 시각의 변화

필자는 4.19 이후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때로는 주체의 1인으로서, 때로는 피해자로서 한국 정치의 흐름 속을 살아왔고 이제 80대의 초반에 들어섰다. 따라서 오늘 저는 1960년의 4.19에 발생했던 사건에 한정된 이야기보다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 현대사가 전개되어온 역사의 맥락을 되돌아보면서 4.19 혁명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맨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마디로 4.19혁명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향한 변화의 한 과정이었을 뿐 그것이 곧 민주화의 전부(全部)이거나 민주화의 완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정치학자들 가운데 민주주의의 이상향처럼 평가받는 미국 사회도 종교적, 인종적 차이를 넘어서서 민주주의 가치의 보편화가 실현된 것은 1965년 이후부터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필자도 여기에 공감한다.

 

•Steven Levitsky and Daniel Ziblatt, How Democracies Die, (BAROR INTERNATIONAL, Inc.,Armonk, New York, U.S.A., 2018)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출판그룹 2018), P.259

 

필자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 회부된 것을 포함, 두 차례 500 여일 이상 옥살이를 하고 출옥한 후 196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가의 입장을 탈피하고 대학연구실에 틀어박혀 신생국의 근대화나 비교정치에 관한 여러가지 글들을 읽으면서 4.19혁명에 대한 나의 부족한 소견들을 조금씩 보충해왔다.

 

우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들이 국가를 건설하는(Nation Building) 일이 얼마나 힘든 도정인가를 하나씩 깨달으면서 4.19혁명 당시에 가졌던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4.19 혁명의 타도대상이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4.19로 성립한 민주당 정부를 뒤엎고 정권을 거머쥔 박정희 대통령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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