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언은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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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손경모

 

-전쟁 목적은 적국의 전쟁 의지 제압. 포로는 전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학살로 최악의 결과 만들어내면 전쟁에 패해. 미국이 베트남에서 그랬고, 나찌도 일본도 그랬다

-역사의 종언은 과학기술 발달이나 자본 심화로 오는 게 아니라 잘못된 지식에 확신을 가질 때다

 

 

1.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전세계 지지를 얻었던 이유

 

사람들이 잘못된 패턴에 빠져 일을 그르치는 것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인데, 만족할 줄 모르는 이유는 그것에 관한 참 지식(眞知)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참인 줄 알면 그칠 줄 알고 나아갈 줄 안다. 정치나 전쟁에서는 나아가고 후퇴하는 기준이 되며, 경제에서는 사고 파는 것의 기준이 된다. 삶에서는 정리하는 기준, 즉 마디가 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미리 알고 정리하여 ‘마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디가 생긴 뒤에 지식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투자에서 강제청산을 당한 뒤 그것이 경계임을 깨닫는 것이나, 이별 뒤에야 그 일들이 이별의 징조임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이 나이를 먹어가며 지혜를 얻는 것은 이런 마디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보고 ‘철이 없다’고 할 때는 이런 마디에 대한 깨달음, 즉 참된 지식(眞知)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삼가고, 거리를 두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는 ‘때를 알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잘못된 지식에 대한 확신이 왔을 때 역사는 종언을 고한다. 인류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런 역사의 종언을 보아왔다. 인간의 대한 물음이 인(仁)이고 사랑이다. 

 

진지眞知란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보겠다. 전쟁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적군을 죽이는 것인가? 상대를 궤멸시키는 것인가?

 

전쟁을 하다 보면 왜 전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게 된다. 그래서 적을 계속 죽이고, 포로도 죽이고 적과 구분이 되지 않는 민간인도 죽이게 된다. 이유를 모르고 전쟁을 하다 보면 오류가 쌓이게 되고, 마침내는 오류때문에 전쟁에서 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그랬고, 나찌가 그랬으며, 일제가 그랬다.

 

전쟁의 목적은 적국의 전쟁 의지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 시작할 수도 또 끝날 수도 있는 것이며, 동시에 전쟁 당사국의 모든 국민이 다 죽어야만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 왜 비용을 들여가며 포로를 둘까? 또 왜 포로를 종전까지 붙잡아둘까? 전쟁을 적의 말살이라고 정의하면 포로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 중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제법이 전쟁 중 포로 개념을 갖고 있는 이유는 전쟁 중에 국제법을 지킬 것이라 보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전쟁의 목적을 잊고 학살을 통해 최악의 결과를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서주를 점령할 때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이유로 들어 서주에 살던 사람을 몰살시켰다. 그 일로 천하가 조조에게 원한을 갖고 조조는 천하를 통일할 명분을 잃었다.

 

조조가 제 아무리 강한들 세상 민심이 조조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조의 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뤄내지만 조조의 자손이 아닌 사마중달의 자손 사마진에 의해 진나라로 통일된다.

 

나찌도 마찬가지다. 아리아인의 위대함을 근거로 유대인을 학살하자 세상이 등을 돌린다. 그건 전쟁의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결국 공감대가 있어야 되는데, 학살은 일반적인 공감을 결코 얻을 수 없다.

 

일제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시대 초기의 일제는 서양의 식민지 수탈로 제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의 명분을 잃어버리고 약탈과 살육으로 나아간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전세계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적의 의지를 꺾는데 족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연연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그에 따른 영토를 취하지 않았기에 세상이 미국에게 리더라는 자리를 계속해서 허락했다.

 

물론 미국의 전쟁사에도 잘못된 전쟁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적의 의지를 꺾는데 실패하면서 불필요하게 전쟁이 길어졌다. 파르티잔에게 당하는 미군이 민간인과 베트콩을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전쟁을 위한 전쟁이 되어갔다.

 

무력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갖고 있으면서도 베트콩을 이길 수 없던 이유다. 적의를 꺾을 수도 없고, 베트남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도 못했기에 전쟁을 지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미국이 중동에서도 똑같이 실패한 이유다.

 

 

반공포로 석방으로 휴전협정에서 한국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 각인됐다. 그런 점이 미국이 한미상호 방위조약으로 나오게 하는데 크게 작용했고, 공산세력이 한국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2. 반공포로석방을 결단한 이승만 대통령의 참된 앎

 

반대로 훌륭한 사례도 있다. 반공포로석방사건이 그 사례다. 이런 것이 인문人問의 힘이고, 진지眞知의 힘이다. 반공포로 석방 당시 전쟁 당사국들은 정치적인 면만을 고려해서 반공포로 강제송환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를 원하는 포로를 어떻게 공산학정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반공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전략적인 고려가 완벽하게 된 상태에서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전략을 세웠지만 행하는 이는 하나님이라 보고 기도하였으리라.

 

이렇게 정말 인간적인 결정때문에 전쟁 당사국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반공포로 석방으로 휴전협정에서 한국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 각인됐다. 그런 점이 미국이 한미상호 방위조약으로 나오게 하는데 크게 작용했고, 공산세력이 한국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정말 외교적인 대승이었고, 문치文治가 왜 무치武治보다 더 상위에 있는지, 전략이 전술보다 더 위에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얘기하는 참된 앎(眞知)의 본질이다. 제대로 알면 제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 플로이드 씨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것도 똑같이 설명할 수 있다. 경찰의 진압이 범죄자를 제압하는 동시에 시민인 그를 존중하는 것으로 행해져야 했는데, 더 상위 규범인 인간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삶이 점점 더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이런 상위 규범을 잃어버린 채 눈앞에 보이는 가치에만 목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 탓이다. 특히 국가나 사회, 회사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변할수록 법과 정치는 사람들을 목조른다. 윤미향 사건의 본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것은 인문人文이 아니라, 인문人問이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모두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근본 상위 규범을 이해해야 하위 규범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인간에 관한 많은 물음을 얻었다. 거의 전부는 더 젊은 날의 고통으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여러분의 통찰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리고 그런 물음들은 내게 동시에 답의 근거를 주었고, 답으로 안내해주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를 갖고 있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고통이라고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이런 물음들을 인문人文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나름의 기획과 체계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물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물음이 사라지면 사회는 선동으로 가득 차고, 인간은 자라지 않고 역사는 잠든다.

 

역사의 종언은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자본의 심화로 오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지식에 대한 확신이 왔을 때 역사는 종언을 고한다. 그리고 인류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런 역사의 종언을 보아왔다. 인간의 대한 물음이 인(仁)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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