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잠수함 속 토끼’였던 적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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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주동식

 

-잠수함 속 산소 농도 알아내는 생체 측정기로 토끼 쓰여. 토끼 없을 땐 졸병이 그 역할 대신

-지식인은 공동체의 산소 부족 징후 가장 먼저 느끼고 고통으로 위험 신호 보내는 토끼 역할

-진중권의 메시지는 거대한 지식 소비자 집단 대상으로 한 것. 받아들일 준비가 된 메시지만

 

 

나는 진중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란 건 알지만, 그의 언행에 대해 분개했던 경험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진중권이 자신을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발언한 모양이다. 발언의 구체적인 워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언론에 소개된 것만 보면 진중권은 별다른 설명없이 그냥 그 표현 자체만 사용했을 뿐 특별히 그 표현의 배경을 언급한 것 같지는 않다.

 

‘잠수함 속의 토끼’라는 표현은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처음 사용한 것이다. <25시>는 소설 외에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저 ‘잠수함 속의 토끼’는 게오르규 작품에서 직접 나온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저 표현을 처음 접한 것은 국민학교 아니면 중학교 때 신문에 소개된 게으르규의 내한 강연의 발언이었다.

 

그 발언 내용이 너무 강렬하고 인상적이어서, 어렸을 때 읽은 것이지만 기억에 남았다. 그후 박범신이던가 우리나라 작가가 <토끼와 잠수함>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낸 것을 보면서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게오르규의 그 에피소드를 빌려왔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함내의 산소가 부족해지면 토끼가 죽는다. 인간보다 더 예민하고 약하기 때문이다. 토끼가 일종의 생체 측정기가 되는 셈이다.

 

게오르규는 2차대전 당시 잠수함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잠수함은 산소가 부족해지면 수면 위로 떠올라 산소를 ‘공급’하고 다시 잠수해야 했다. 문제는 당시 기술력으로는 함내의 산소량을 적절한 시점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원한 것이 토끼였다. 즉,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토끼를 몇마리 사서 잠수함 안에 두는 것이다. 함내의 산소가 부족해지면 토끼가 죽는다. 인간보다 더 예민하고 약하기 때문이다. 토끼가 일종의 생체 측정기가 되는 셈이다. 토끼가 죽으면 ‘아, 함내 산소가 위험수위에 이르렀구나’ 하는 판단을 내리고 잠수함이 수면 위로 떠올라 산소를 채우고 내려가는 것이다.

 

문제는 사정이 생겨서 토끼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거나 또는 준비한 토끼를 다 소진한 경우였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는 사람이 토끼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즉, 군대 위계구조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졸병이 토끼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그 졸병이 근무하는 위치이다. 즉, 잠수함의 가장 아랫층에 내려가야 한다. 물론, 평상시 생체 측정기용 토끼를 두는 위치도 바로 그곳이다. 그 이유는 함내 산소가 가장 먼저 사라지는 곳이 잠수함의 아랫층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부터 산소 농도가 옅어지기 시작해 점차 그 현상이 위로 확산되는 것이다.

 

게오르규는 잠수함의 가장 아랫층에서 근무하곤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게오르규가 괴로워하고 신체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잠수함 지휘관들은 산소가 부족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수면 위로 올라가 산소를 공급하곤 했다.

 

사실을 알고나서 게오르규는 충격을 받는다. 이 충격은 자신이 생체 측정기로 사용됐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 에피소드가 지닌 암시와 메시지 때문이었다.

 

즉, 이 사건을 통해 게오르규는 지식인의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잠수함의 토끼가 함내의 산소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느끼고 몸으로 그 위험신호를 알리는 것처럼, 지식인은 자신의 공동체에 다가오는 산소 부족 즉 위험 징후를 가장 먼저 느끼고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그 위험신호를 보내는 존재라는 각성이었다.

 

토끼가 놓이는 잠수함 내부의 위치가 가장 아랫층이란 점도 상징적이다. 지식인이 사회의 위험 징후를 가장 먼저 느끼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지점(그게 꼭 사회적인 빈곤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라도)에 가 있어야 한다는 상징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중권의 발언, 자신을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표현한 부분이 좀 가소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그것이다. 진중권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지점에 간 적이 있었나?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고? 그걸로 무슨 고통을 받았나? 그건 오히려 진중권에게 훌륭한 상징자산이 되어주지 않았나? 솔직히 진중권이 무슨 개인 희생 차원의 운동적 실천을 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중권이 이 사회가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위험의 징후를 단 하나라도 사전에 경고한 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진중권의 발언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부터 광우병 소신발언, 최근의 조국 발언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의 발언은 언제나 그 메시지를 정신적, 상업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거대한 지식소비자 집단을 대상으로 했다. 즉, 대중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메시지만을 발화했다는 얘기이다.

 

진중권의 발언이 잘못됐다거나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발언은 항상 시의적절했고, 적절한 표현과 수위를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대중적인 호응을 유도해낼 수 있었다. 다만, 그 대중이 상대적으로 소수인 경우는 있었지만 절대적인 소수인 적은 없었고, 실제로는 항상 명분상의 다수를 점하는 사실상의 다수파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진중권은 지식인 개인이었던 적이 없다. 항상 어느 진영의 일원이었다. 외로운 독꼬다이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항상 어느 진영의 독꼬타이(특공대)였지, 외로운 양치기 같은 역할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진중권의 발언은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신호는 아니었다. 잠수함의 토끼가 죽으면 그 사실을 고래고래 소리쳐 알리는, 목소리 큰 사병 역할이라면 모를까.

 

지식인마다 역할과 기능은 다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모두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식인이 자신의 역할과 포지션, 기능을 엉뚱하게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경우이다. 그 경우 그 지식인의 재능은 오히려 독소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진중권은 적절한 사회적 발언을 재치있게 만들어낼 줄 아는 재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사회적 위험신호를 드러내는 유형의 지식인은 아니다. 
요즘 진중권이 열심히 씹어대는 유시민이 자신을 규정했던 발언 ‘지식 소매상’의 범주에 사실은 진중권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진중권이 유시민에게 빚진 게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진중권의 지적작업 없이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지만, 진중권은 유시민 류의 지식 소매상의 작업이 없었다면 대중에게 다가갈 유통망 자체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하는 얘기이다.

 

그래서 나는 진중권의 ‘잠수함 속 토끼’ 발언이 좀 가소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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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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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2020.3.4 PM 15:20

    잠수함 속 토끼긴 하지요.
    대한민국이라는 잠수함 속 토끼가 아니라 일그러진 87체계 잠수함 속 토끼지요. 진중권이 이제와서 난리치는 이유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같은게 아니라 이러다가 진보진영과 87체계 패러다임까지 몰락하겠다는 위기의식에 기인한 겁니다. 이 인간은 지금은 아닌척 하지만 언제나 진영논리에 빠져 있었어요.
    그걸 자기네들 편들어준다고 환호하는 얼빠진 보수 수준도 참 골계가 따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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