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걷어차기 총선과 증오의 체취

<<광고>>



¶글쓴이 : 홍대선

 

-총선 앞두고 지난 보수정권을 성토하는 게시물 대량 살포는 여권의 내적동력 고갈을 반증

-그들은 블랙리스트를 숨기려고는 했다. 반면 칼럼 고소는 드러난 블랙리스트다, 퇴행이다

-조국수호 본질은 반대편을 더 증오하려는 매커니즘. 증오의 체취사회 조장하는 엘리트들

 

 

총선이 다가오면서 지난 보수정권의 악행을 성토하는 웹 게시물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 특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요 며칠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과 맞물려 살포되었다. 몹시 위험한 신호다. 여권이 현재를 변명하고 미래를 제시할 근거를 잃어버렸거나 잠정 포기했다는 반증이다.

 

보수정권을 무너뜨린 국민적 분노를 상기시키는 게 당장 선거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상대를 지목하며 저쪽이 더 나쁘다고 항변하는 건 긍정을 이야기할 내적 동력이 고갈되었음을 보여준다. ‘저쪽’의 우두머리들은 어차피 지금 감옥에 있거나 콩밥과 집밥을 번갈아 자시고 있다.총선이 다가오면서 지난 보수정권의 악행을 성토하는 웹 게시물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

 

상대의 나쁨만이 나의 좋음을 증명한다면, 우리는 거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정치인도 지지자들도 과거를 채굴해 물어뜯는다. 시체 걷어차기다. 정치는 상대의 과오라는 사골을 얼마나 오래 끓이는지 시험하는 착한 식당 인증대결이 됐다. 하지만 선거란 미래를 위한 회의다. 과거는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만 중요하다.

 

 

엘리트층의 염치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집단과 지식인들이 사회적 퇴행을 경고하기는커녕 이용하고 조장한다.

 

 

사골국을 끓이는 불의 에너지원은 상대에 대한 증오다. 이러면 주객이 전도된다. 사골을 잘 내기 위해 더 증오해야 하며, 증오의 내용을 진심으로 믿기까지 해야 한다.

 

적대적 피아구분은 우리 사회 퇴행의 불길한 징후다. 동물은 냄새로 피아를 구분한다. 고양이는 길 잃은 새끼가 돌아와 다른 냄새를 풍기면 본능적으로 배척한다. 때리고 쫒아내다가 이질적인 냄새 속에서 자기 젖내를 발견하면 그제야 다시 품에 받아준다. 우두머리 하이에나는 무리 전체에 자기 체취를 묻힌다.

 

사자와 하이에나는 서로 경쟁하며 진화했다. 숫사자는 달리기가 느려 사냥을 하지 못한다. 숫사자는 하이에나만 잘 죽이면 된다. 그래서 주력을 포기하는 대신 펀치력을 얻기 위해 앞다리와 어깨가 발달했다. 반면 머릿수와 깡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하이에나는 생산력을 가진 암컷이 우두머리가 되며, 암수 모두 테스토스테론이 과다분비되는 동물이다. 지더라도 매운 맛을 보여줘야 하니까.

 

경쟁 진화의 결과는 치열한 증오심이다. 우리는 언어 대신 후각을 발달시키고 있으며, 후각을 정당화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풍기는 냄새를 보아하니 너는 우리 과구나.’ 아니면 ‘너는 적이다’라고 간주하고 증오를 내뿜는다. 동료 시민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는가가 자신의 순수성과 열정을 보여주는 ‘운동’이 됐다. 진짜 운동의 바닥인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출산율 0%대에 진입했다. 이럴 때는 아니다.

 

여당이 한 교수의 칼럼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취하했지만 지지자들이 대신 나설 모양이다.

해당 칼럼이 법적 분쟁의 여지를 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시절 딴지일보에서 기자로 일할 때 우리는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위의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선거기간에는 아예 보수진영을 ‘저들’이라고 부르며 악마화했다. 법적 원칙으로 따지면 우리는 고소를 수백 번은 더 당했어야 했다. 하지만 적어도 고소당할 걸 두려워하며 기사를 쓰고 편집하진 않았다. 회사 사장님이 정권에 찍힌 건 알았지만 권력이 드러내고 우리를 쥐어박는 바보짓을 하진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보수정권 9년간 나라를 해드신 인간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고 해먹는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들은 블랙리스트를 숨기려고는 했다. 반면 칼럼 고소는 드러난 블랙리스트다. 여기엔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의지는 지지자들에게 전이된다. ‘물어뜯기 전에 냄새를 맡아보니 안철수 냄새가 난다, 피아구분이 완료되었으니 사자이거나 하이에나가 된 이들은 물어뜯겨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물어뜯기 위해 적의 체취를 찾아내야 한다.

 

정치의 결과로 증오가 남을 순 있지만, 순서가 뒤바뀌어 증오가 정치의 동력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사자나 하이에나가 됐다. ‘조국수호’의 본질은 조국이 아니다. 반대편을 더 증오할 감정적 근거를 위해 피해자인 조국, 정경심 부부가 되도록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매커니즘이다.

 

체취사회에서 언어는 후각의 시녀일 뿐이기에 더 이상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 무리의 결속이 중하다. 토왜, 한남, 찢묻, 친노종북, 틀딱과 같은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후각에 반응해 드러낸 이빨로 보아야 한다. 거시 정치에서 일상의 바닥에 내려온 미시 정치까지 우리는 집단적으로 퇴화하고 있다.

 

엘리트층의 염치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집단과 지식인들이 사회적 퇴행을 경고하기는커녕 이용하고 조장한다. 이번 여당의 행태처럼 “쟤는 하이에나다”라고 지목하며, “우리는 긍지 넘치는 사자다”라고 내부를 단속한다. 하지만 자연에서 사자와 하이에나 중 누가 옳은가?

 

둘 중 하나인 이상 그네들은 시민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동물일 뿐이다.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