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근간으로 한 인문서를 쓰면서

<<광고>>



스피노자와 일상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글쓴이 : 홍대선

 

-스피노자의 철학을 근간으로 한 인문서 집필중. 쓰는 속도는 느려지고 분량은 점점 줄어들고

-왜 선물처럼 주어지는 행복을 당연한 소득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만남이 소중한 줄 몰랐을까

내가 실수하고 무지할 때 이걸 알았더라면. 이제 살아있음이 행운이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지

 

 

스피노자.

최애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철학을 근간으로 한 인문서를 쓰고 있다. 책의 줄기는 쓰는 중에 여러번 바뀌었다. 세 번이나 작품을 뒤집었다. 쓰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책의 전체 분량은 점점 줄어든다. 속도로만 보면 이렇게 힘들게 무언가를 써본 적은 없어서 당황스럽다.

 

옛날 학원강사를 했을 때, 내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빨리 늘 수가 없었다. 배워서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가르쳐서, 가르쳐야만 하기에 명확히 알아야 했던 것이다.

 

스피노자를 흠모하지만 이해와 설명은 다른가 보다. 하나하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자니 내가 명확히 안다는 확신을 구비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내 자신의 사례를 채굴하게 된다.

 

이해의 막연함이 설명으로 하나씩 구체화될 때마다 가슴에 덜그럭 소리가 들리며 시간이 멈춘다. 그래 이런 거였다. 이거였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때도 알았더라면…

 

왜 선물처럼 주어지는 행복을 당연한 소득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만남이 소중한 줄을 몰랐을까. 어째서 타인을 미워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가. 왜 호의의 시선으로 남들을 바라보지 못했는가. 어째서 다른 이들을 자의적으로 범주화하고 함부로 판단했는가.

왜 불행을 선선히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무슨 근거로 삶을 부정하기도 했던가. 왜 인연이 고마운 줄을 몰랐을까.

 

왜…

 

치졸한 연인, 무책임한 가족, 이기적인 친구, 모자란 개인이 되지 않을 기회를 왜 눈앞에 두고도 놓쳐왔을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일 때,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후회가 덜했을 것인데.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이미 현재를 만들었다. 미래는 현재가 만들 것이다. 지금 쓰는 원고를 더 빨리 썼다면 좋았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쓰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인간에게 남은 재산은 앞으로의 삶 밖에 없으니까.

 

‘이만큼’ 사랑받고 살아야 한다는 자의적인 관념 때문에 내게 주어지는 사랑을 가벼이 여겼다. 우주는 의지도 목적도 없다. 주어지는 것은 모두 우연이기에 선물이고 숙명이다. 이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에, 이 나이가 돼서야 확신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참 늦됐다.

 

그때, 내가 실수하고 무지할 때 이걸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참 좋았겠지. 이제는 내가 살아있음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모든 책은 명저와 졸저, 걸작과 괴작 사이에 있다. 결과는 그저 그런 한 사람분의 역량으로 결정될 일이다. 나의 그저 그러함은 나의 날숨이고 총체다.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지 알아야 마땅할 일이다.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