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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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동원

 

-‘주민투표’는 세계 각국의 경험상 결과가 수구적·이기적. 견제받는 대의정치가 훨씬 진보적

-다양한 이익집단이 결사 통해 이익 관철하는 게 민주주의. 다만 공론화 과정 거쳐 합의돼야

-惡한 존재를 없애는 게 전쟁. 원래 惡한 인간들이 견제와 균형으로 공존하자는 게 민주주의

 

 

<최근 접한 몇가지 오해와 이해>

 

1. 주민소환, 주민투표 확대는 직접민주주의의 강화인가?

 

김부겸 장관은 ‘주민소환’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주민투표 대상 확대, 주민소환 요건 완화, 종이 서명 외 전자 서명 허용 등 주민참여의 제도적 틀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라 보는 견해가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직접통치’가 핵심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시민 직접통치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대표가 되어야 한다.

 

역사상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한 사례는 고대 아테네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온전하게 직접민주주의라 하긴 힘들다. 여성과 노예, 타지 출신의 20만은 소외되었고, 대략 10만의 남자 시민 중 추첨으로 뽑힌 6000명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발언권도 없이 단순한 거수기 역할만 했다. 통치라기보단 공동책임 부여를 통한 공동체 유지라는 전쟁 시대의 독특한 정치방식이었다.

 

③ ‘주민소환’은 직접민주주의 강화라기보단 오히려 대의민주주의 강화책이다. 대의를 잘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주민의 견제장치다. ‘주민투표’는 세계 각국의 경험상 결과가 굉장히 수구적이고 이기적이다. 오히려 견제받는 대의정치가 훨씬 진보적이다. 더구나 주민투표는 정치의 책임 회피책이 될 우려가 깊다. 고통분담, 이익과 편의 양자택일 같은 것에만 제한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역사상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한 사례는 고대 아테네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온전하게 직접민주주의라 하긴 힘들다.

 

2.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의료보험 수가를 올리는 것이 이익충돌이다?

 

공사 개념 부재, 민주정치의 공적합의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문제 제기다. 민주주의는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체제다.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결사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게 민주주의다. 사적이익을 관철하는 건 나쁜 행위가 아니다. 다만 사적이익은 공론장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의돼야 한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임금인상과 노동 권리를 지키는것도 사적이익이지만, 이 역시 공론을 통해 타협되고 합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사의 의료수가 인상도 사적 이익이지만 공론장과 의회를 통해 합의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 이익집단의 이해와 요구는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 관철된다.

 

정당은 가치집단이 아니라 이해집단이며, 의회는 대의된 공론장이다. 공공성 대결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권력을 얻는 것이다. 손혜원 의원의 행위가 비록 선의라고 하나 ‘이익충돌’이 되는 것은, 공론의 과정이나 공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적 행위라서 그렇다. 그런 사적 행위에 공적자금이 연관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는것이다.

 

3. 정치적 상대를 완전히 밟아놓아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한다?

 

정치와 전쟁은 다르다. 전쟁은 힘을 통한 굴복이지만, 정치는 공존이 핵심이다. 정치를 승부로 보면 파괴만 남는다. 정치를 승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건 ‘선악의 이분법’이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었던 시기는 그게 맞을 수도 있지만, 정치와 민주주의는 공존의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인간이 악惡한 존재라는것을 인정하는 정치체제다. 惡한 존재를 없애는 게 전쟁이라면, 원래 惡하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으로 공존하자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선 어느 일방이 무한대의 권력을 누릴 수 없다. 밟아놔도 또 기어오른다. 인간은 惡이므로, 인간은 한계투성이이므로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권력은 바뀔 수밖에 없다. 언제든 기어오를 조건이 주어진다.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정치적 공백상태에 이른 나라들은 하나같이 밟고 밟히다 그렇게 됐다. 만약 한쪽이 한쪽을 완벽히 밟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제적 폭정으로만 가능하고, 20~30년 장기집권도 극악한 독재로서만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상대를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지 말고,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강화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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