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개발하는 40년 동안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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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진욱

 

-미국의회 연구연 “북한의 핵미사일 습득 시대 끝나고 사실상 영구적인 핵무기 국가로 바뀌어”

-북한의 핵개발 40년 동안 남한은 ‘방어용, 무용지물, 우리 것이니 위대한 성취’ 등 답답한 발언

-스위스는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경계용으로 막대한 비용 들여 핵 대피시설 만들고 유지하는데

 

 

美전문가 “北, 사실상 핵보유국…높은 기회비용 치러”

 

북한은 1979년 이래의 핵무장활동 끝에 40년째 되는 2019년 결국에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되었구나.

 

“북한의 핵미사일 습득 시대가 끝나고 사실상 영구적인 핵무기 국가로서의 북한의 시대로 바뀌었다는 결론이 정당해 보인다.”

 

 

미 의회 설립 교육연구조직인 이스트웨스트센터 소속 데니 로이 선임연구원의 주장인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인식이라고 보인다.

 

데니 로이는 북한이 핵보유에 성공한 요인으로 3가지를 들었다.

(1) 강력한 핵보유 의지
(2) 경제적 고립
(3) 북한과 가까운 서울의 위치

 

이 중에서 (3)번째로 지적된 요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곰곰 되앂어야 한다고 본다.

 

(3)번째 요인의 의미는, 북한의 핵개발 활동에 대하여 그 직접적 피해당사자인 대한민국이 적극적이고 유효한 저지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활동은 어떤 경과를 거쳐 왔는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활동을 인지한 것은 1989년 9월 15일부터이다. 프랑스 상업위성 SPOT 2호의 영변 핵시설 사진 공개가 계기로 되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습득 시대가 끝나고 사실상 영구적인 핵무기 국가로서의 북한의 시대로 바뀌었다는 결론이 정당해 보인다.”

 

영변 핵시설의 추적결과, 핵물질 재처리시설이 확인되고, 고폭실험을 한 사실이 발견되었으며, 원자로가 전기생산이 아닌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물질 확보용’이란 것이 밝혀졌는데 북한의 이런 핵무기 확보를 위한 활동의 출발점이 늦게 잡아도 1979년이었다고 추정되었다.

 

결국 북한의 핵무장 활동은 40년 전인 박정희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10년 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1989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北의 핵무장 활동을 알게 된 1989년 이래의 30년 동안  대한민국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기억나는 것은 주로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거나, 방어용일 뿐이라거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외에는 사용된 적이 없으니 무용지물일 뿐이라거나,심지어 ‘우리 것’이니 민족의 위대한 성취라며 찬양하는 언설들이다.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에 방문한 스위스에서 경험한 일이 반사적으로 기억에 떠오른다. 정치인, 군인, 공무원들을 접견하면서 그들의 핵대피시설과 이를 위한 막대한 비용지출의 경위를 묻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웃한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경계용이란 답변이었다.

 

2차 대전 때 침략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독일이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100% 신뢰할 수는 없으며, 현재 핵무장 국가이며, 많은 핵시설을 보유한 프랑스 역시 힘을 가졌다는 그 자체로서 경계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답이었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것은 견딜 수 있는 일이지만, 생사生死에 관한 문제는 절대 의심과 안전확보가 원칙이란 것이 스위스인들의 사고방식이란 첨부설명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스위스인들을 본받자고 하면 어떤 반응들이 있으려나? 

 

“지금 전쟁하자는 것이냐”라거나, “반평화, 반민족 발언”이라고 비난받으리라는 걱정이 과연 기우에 불과할까?

 

서울대학교 교수인 역사학자 박훈은 조선이 단지 가난한 지경을 넘어서서 이웃 국가의 식민지로까지 전락한 주요한 원인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에 대한 인지의 부족 즉, ‘위기의식의 부재’를 들었다. 위기의식의 부재. 역사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언제나 비극으로, 비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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